갑과 을로 나뉘어진 세상

매일경제 갑을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며칠 전, 세계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이 JTBC 뉴스룸에 나와 인터뷰를 가졌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 하던 중 ‘땅콩회항’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뉴스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특정 인물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즉시 나누는 것이라며, 모든 매체들이 악인으로 묘사하는 조현아 씨를 “비극적 인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은 조현아 씨가 많은 부분에서 끔찍한 인물이었던 것은 맞지만, 그녀는 여전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문학을 하는 작가로서 재앙이 되어버린 그녀의 인생을 바라보며, 선악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조현아의 또 다른 측면들이 빠진 채 완전한 악인으로 몰아세워지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모든 ‘갑질’의 대표이자, 온 국민의 적이 된 상황에서, 이러한 발언은 자칫 대중에게 반감을 살 만한 것이었기에 인터뷰를 진행하던 손석희 앵커는 급히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필자는 이에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알랭 드 보통의 ‘땅콩회항’에 대한 견해가 ‘갑’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한국 여론에게 던지는 좋은 메세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땅콩회항이 이토록 큰 이슈가 된 이유는 조현아 씨가 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갑’으로서 권력을 남용하여 부당한 행세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본 적이 있을 ‘갑질’에, 사람들은 ‘당하는 을’의 입장으로 분노했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대중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나는 갑질에 주목하게 되었고, 이는 모든 갑들을 경계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한 주가 멀다하고 매번 새로이 등장하는 갑질 사건들로 SNS는 언제나 시끌벅적하다.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을 리는 없는데, 갑질이라며 논란이 되는 사건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사실 이러한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갑질의 대명사가 된 땅콩회항부터 시작해서, 열정페이를 위시한 임금착취, 모 기업의 갑질채용 논란 등 그동안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갑들의 부당한 대우를 참고 견뎌야 했던 모든 ‘을’들의 설움이 오죽했겠는가? 이러한 울분들이 땅콩회항을 그 계기로 터져나온 것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세상을 갑과 을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갑질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어느샌가 사회의 모든 약자는 “우리”가 되었고, 모든 권력자는 갑이라는 이름의 “악인”이 되었다.

권력을 악용하는 갑질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사실에는 십분 동의한다. 이슈가 된 땅콩회항 사건과 그 이후 이어진 대한항공 측의 갑질들은 도의적으로 보나, 법적으로 보나 비판받아 마땅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적인 “악”이 존재하는 경우는 드물다. 갑질로 악명을 떨치게 된 갑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정과 변명이 있기 나름이다. 그런데 대중은 이러한 갑들의 목소리에는 귀기울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아니니까. 오로지 억울한 을의 목소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을은 언제나 옳은 대상이 되고, 갑은 언제나 나쁜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과연 이러한 사회가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을’이 ‘우리’가 되고, 약자를 무조건 편드는 것이 정의구현이 되는 세상은 지독한 ‘언더도그마’에 빠진 세상이다. 을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대중을 기만하고, 갑을 공격한 사례는 많다. 최근 연예인 클라라와 소속사 대표 간의 스캔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메신저 대화기록이 공개되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갑’인 소속사 대표는 ‘을’인 클라라 씨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정도로 ‘갑질’을 한 악인이었다. 을이었던 클라라 씨의 주장만 듣고 네티즌들은 인민재판이 행했고, 갑이었던 소속사 대표는 온갖 비난에 상처받았다.

사회를 갑과 을로 나누고, 억압하는 소수와 억압받는 다수로 나누는 사고방식은 계급투쟁이라는 이름의 낡은 생각이다. 이 세상에 딱 정해진 갑과 을은 없다. 회사에서 을이었던 말단 직원은,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고객이라는 이름의 갑이 된다. 일방적인 요구를 하며 파업을 일삼는 몇몇 노조는 을의 가면을 쓴 또 다른 갑이다. 땅콩회항에 분노하여 조현아 씨에게 도가 지나친 인신공격을 퍼붓는 이들도 결국 약자가 된 상대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갑과 을, 두 부류의 사람들로 나눠질 만큼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논의에서 갑과 을이라는 구분은 사라져야 할 허상이다. 특히 갑과 을이 단순히 가진 자와 덜 가진 자로 받아들여지는 이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허상은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자는 불쌍하다’라는 감성적 접근을 통해 우리의 이성적 판단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사회적 약자”라는 을의 가면을 쓰고서 부당한 행세를 하는 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사그라질 기색이 없는 조현아 씨에 대한 대중적 분노가 걱정스럽다. 조 씨와 같은 일부 권력자들의 부당한 행동들이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켰고, 이 분노는 세상을 두 계급으로 나눠버렸다. ‘갑은 악하고, 을은 무조건 옳다’는 착각 속에서 우리 사회는 병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