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나라 그리스는 어떻게 몰락했는가?

 

12년 전에 그리스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하느라 각종 공사가 한창이었고, 올림픽에 대한 기대 심리로 도시 곳곳에 활기찬 분위기가 넘쳐났었다.

그리스 사람들의 일상은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였으며 여행자의 입장에서 불편함을 느낄 구석도 거의 없었다. 히오스(Chios, 키오스) 섬에서도, 또 아테네 시내에서도 아주 느린 페이스의 일상이 진행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 가이드가 들려주는 그리스인들의 일상은 이러했다. 직장인들은 아침 8시에 출근했다가 12시가 되면 퇴근해서 점심을 먹은 다음 4시까지 시에스타(낮잠)를 갖고, 다시 출근하여 오후 8시까지 일한다. 그리고 밤늦게 저녁식사를 하고 여가시간을 보내면서 하루를 마친다. 학생들은 오전에만 정규 수업을 받고 시에스타 후에는 국가가 비용을 보조하는 각종 예체능수업을 수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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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거의 전 과정이 무상교육이다. 교육뿐만 아니라 보육, 의료, 방송, 전기, 광업, 항만, 항공 등 많은 영역을 국가가 관장하고 운영한다.

심지어 전국 곳곳의 식당들 중에서도 국영 식당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국영 식당은 전체 식당들 중 60% 정도에 이르며, 메뉴와 가격은 어느 지점에서나 모두 똑같이 정해져 있다. 민간 식당은 메뉴와 가격을 자유로이 정할 수 있지만, 대신 적지 않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 사람들은 정부가 거의 모든 영역을 조절하는 이런 시스템에 별다른 불만이 없다고 한다.

공적 영역이 워낙 넓다보니 민간 영역에서 그리스 경제의 기반이 될만한 산업은 세 가지밖에 없다. 바로 농업, 관광업, 해운업이다.

이 외에는 공무원들과 국영 기업 노동자들, 그리고 위의 세 가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여 장사하는 영세 자영업자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위의 세 가지 산업 중 영세업자 중심이 아니라 비교적 큰 규모의 기업들이 포진해 있는 산업은 해운업뿐이다. 전설적인 해운재벌 오나시스를 비롯한 100여 가문이 그리스의 해운업계를 이끌며 상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그동안 그리스의 경제는 주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공공부문이 이끌어 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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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

2007년 글로벌 경제위기 전까지 60%에 가까운 그리스 국민들이 정부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다.

은퇴자들에게 돌아가는 연금 혜택도 상당했다. 농민들은 정부와 EU로부터 적지 않은 보조금을 받아 왔고, 관광업 역시 문화유산 보호의 필요 때문에 정부, EU, 유네스코 등으로부터 상당한 보호와 재정보조를 받아온 영역이다.

문제는 정부 재정과 국영 기업의 회계가 상당히 방만하게 운영되었고, 정치가들과 공무원들 및 각종 이해집단이 얽힌 부패로 인해 많은 재정이 낭비되었다는 것이다.

국영 부문이 커지면 그만큼 관리가 철저해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공무원들과 국영 기업 노동자들은 무사안일의 태도에 빠져 업무의 비효율성이 증가했다.

과거 현실사회주의권에서 나타났던 일이 그리스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돈과 권한이 정부로 집중되다 보니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하기보다는 어떻게 정부의 돈을 끌어올까 하는 꼼수를 연구하는데 몰두했다.

농민단체, 노동조합, 그 외 시민사회단체 등은 사실상 대정부 로비단체가 되어버렸고 수많은 뒷거래들이 오갔다. 관광업과 해운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 섹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힘은 막강했지만 내부적으로 그 힘은 간부들이나 몇몇 목소리 큰 숙련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고, 경력이 짧은 젊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 AP

ⓒ AP

그러다 보니 노조의 고위층은 민주적 절차에 따른 운영보다는 사측과의 밀실협상을 통한 적당한 타협에 익숙해졌다. 사측도 피곤하게 정정당당한 노사협상에 임하기보다는 몇몇 노조 간부를 매수하는 것으로 일을 처리하였다.

해운재벌들을 비롯한 부유층들의 탈세와 재산 해외 도피도 만연했지만 방만한 운영과 부패로 물든 정부는 부유층의 탈세를 잡아낼 여력이 없었다.

이렇게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았던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오자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관광업과 해운업은 국제 경기에 매우 민감한 업종이고, 이들을 중심으로 한 민간 섹터의 실적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빚을 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그리스 정부의 재정은 수많은 분식 회계와 곳곳의 구멍에서 새어나간 돈으로 인해 바짝 말라가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리스 정부는 골드만 삭스의 도움을 받아 회계를 조작하여 유로존 가입 기준을 충족시킨 적도 있었다. 계속된 글로벌 경제 위기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국채를 조달하기 위한 비용은 늘어만 갔고, 국채 원금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2010년에는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IMF, 유럽 위원회)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다.

물론 이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그리스는 아주 고통스러운 재정긴축을 강요받게 됐다. 안 그래도 경제에서 정부지출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었는데, 민간 섹터까지 부진한 상황에서 긴축을 실행하게 되니 그리스의 경제가 붕괴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2007년 이후 그리스는 GDP의 25% 가량을 잃었다. 그나마 2012년부터 더 이상의 하락 추세가 멈추고 미미하게나마 성장세로 돌아섰지만 그동안의 상실을 만회하기에는 매우 역부족이다.

그러다 보니 긴축에 반대하는 급진좌파 시리자와 네오나치들의 모임인 황금새벽당의 지지세가 늘어나고, 범죄와 사회적 동요가 심각해졌다. 외국인 혐오 역시 늘어났다.

최악의 경제 여건 속에서 극좌와 극우의 지지율이 동반 상승한다는 점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대중은 언제나 극단적이고 확실한 해결책을 원하지만, 곪은 상처가 터진 현실에서 극좌나 극우가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여러 해 동안의 정치적 불안 끝에 그리스는 다시 총선을 치렀고, 예상했던 대로 시리자가 승리하여 집권하게 되었다.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시리자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 AP 뉴스

 

그러나 과연 시리자가 승리와 집권이 그리스인들의 삶을 구원하게 되는 길이 될까? 희망적인 뉴스를 내보냈던 좌파 언론과 달리 대부분의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의문을 품고 있었다.

시리자는 “트로이카”들과의 구제금융 조건을 재협상하여 정부재정 지출을 다소 늘리고 폐쇄된 국영 사업장들의 재개장을 공약하고 있지만, 이것은 그동안 그리스를 망쳐 왔던 옛 방식으로의 회귀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리스인들의 물적 토대(하부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영역에서의 자생적인 경제활동이 활발해져야 하고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져야 한다.

거대한 정부가 가졌던 막강한 힘을 좀 빼줘야만 그동안 그리스 사회를 지배해 온 부정 부패의 고리가 끊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세계의 좌파들이 희망하고 낙관하는 것과는 달리 시리자의 집권은 그리스의 물적 토대를 변화시키거나 그리스인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하게 될 공산이 크다.

오히려 시리자는 지금까지의 그리스나 과거 현실사회주의권이 범했던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계획경제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그것을 섣불리 시도하면 안 되는 이유를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그리스의 사례다.

ⓒ istockpho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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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리스의 경제 위기는 유로화라는 EU 공통의 통화의 사용으로 독자적인 통화 정책을 펼칠 수 없게 됐다는 점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그리스 사태의 책임을 유로화에게 물을 수만은 없다.

비대하고 부패해진 정부가 주관하는 정실 자본주의의 폐해이자 반 자유적이고 반 시장적인 공공정책이 낳은 실패라고 보는 시각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한편 그리스의 정실 자본주의는 한국에게도 다소의 시사점을 준다. 점점 거대해지는 정부,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인 현실, 부패한 관료 집단과 사기업 간의 보이지 않은 거래와 결탁, 진짜 도움이 필요한 극빈층이 아닌 중위 계층과 중산층을 향한 공공 지출 증가.

여러 현상을 돌아보면 우리가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스의 경제 위기를 단순히 ‘게으른 국민성 때문’으로 치부하거나 반대로 ‘모든 게 EU와 유로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것 모두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반 자유적, 반 시장적 정책을 꾸준히 밀어붙여 오늘의 위기를 겪게 된 그리스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한국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냉정한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