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있냐는 사람들에게

“빨갱이”. 빨치산 (Partisan)에서 나온 말로,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배후에서 비정규전을 실시하는 유격대원들을 말한다. 분단 직후와 6.25 전쟁 당시에는 총칼을 들고 국군을 살해했던 공산 게릴라였고, 휴전 이후에는 선동, 시위 등을 통해 사상전을 실시한 이들이다. 빨갱이라는 단어의 이면에는 군사독재시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다.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운 단어다. 그래서인지 이 말을 사용하는 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 단어의 사용빈도가 줄어들면 그만큼 현실감도 줄게 된다. 요즘 세대에게 빨갱이라는 존재는 오공육공 시절에나 나오는 역사 속의 인물들이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요해지고, 더 치밀해졌다.

종북좌파국회입성안돼_동아일보

ⓒ 동아일보

요즘 세대가 빨갱이의 존재를 잊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다. 이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8~90년대에 태어난 이 세대는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완벽히 이룩한 이후에 철이 들었다.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는 이미 종결되었고, 300만을 굶겨죽였다는 북한의 실체는 오래 전에 드러났다. 이 세대에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실현불가능한, 책에서나 등장하는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이것이 시대정신인 만큼, 여전히 혁명을 꿈꾸는 빨갱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혹자는 이를 두고 비로소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공산권의 몰락으로 자유진영이 이념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들은 역사를 통해 공산권의 실패를 학습하며, 사상적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다시 말해, 마침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안정시기에 돌입했다는 주장이다. 유감스럽지만 이 예측은 빗나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블루투데이 종북좌파분파 수정본

ⓒ 블루투데이

시간을 거슬러 80년대로 가보자. 386세대 운동권의 투쟁이 절정에 다다랐던 이 시기에는 NL계열 (National Liberation의 약어이지만, 사실상 North Love에 가깝다) 혁명전사들이 지금에 비해 많이 순박(?)했다. 대학가에서 운동권 동지들을 포섭하여 골방에 틀어박혀 주체사상을 공부했으며, 남몰래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약어)을 외치곤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시위는 직업이었고, 혁명은 삶의 목표였다. 물론 마음의 고향은 북한이었고. 이런 사상은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곤 했다. 주변 친구들 앞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미제를 증오했으며, 대놓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신봉하곤 했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런 부류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저 친구 위험한 친구구나, 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민들은 빨갱이의 존재를 대학 캠퍼스에서 실감했고, 대한민국이 이데올로기적 내전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체제전복을 꿈꾸는 이들은 폐쇄적인 운동권, 즉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90년대부터 이 구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소련이 몰락하고, 북한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났다. 게다가 민주화를 이룩하여 투쟁할 대상도 사라졌다. 주사파 젊은이들 상당수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들은 전향한다. 문제는 전향하지 않은 골수 주사파들이다. 여전히 혁명전사로 남아있기를 고집한 이들은, 문민정부 때부터 참여정부 때까지, 정부의 비호 아래 크게 성장했다. 빨갱이라고 잡아가는 일이 더 이상 없었으니 활동영역을 더욱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80년대 운동권 학생이었던 그들은 사회로 진출해 각계각층에 또아리를 틀었다.

소련몰락_엠비씨방송캡쳐

<이미지 출처: MBC 뉴스 화면>

시민사회 활동가부터 시작해서, 교사, 변호사, 기업가, 언론인은 물론이고 심지어 국회의원과 청와대 관료까지. 그들의 마수가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들은 주요 사건이나 이슈마다 반미친북의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했으며, 사회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영향력을 이용하여 여론을 선동했다. 개중에는 북한으로부터 직접 지령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간첩들도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사건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일심회 사건’. 한마음으로 김정일을 모시겠다고 만들어진 단체다. 이들은 무려 A4용지 100만 쪽 분량의 국가기밀을 북한에 넘겼다. 일심회의 수장이었던 장민호는 89년 입북해 북한으로부터 주체사상에 대해 집중교육을 받았고, 93년 재입북해 노동당원이 되었다. 이때 북한으로부터 “386 운동권을 중심으로 지하조직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는다. 그는 NL계열 운동권 동지들을 포섭했고, 간첩단을 조직한다. 당시 100여명에 달하는 운동권 출신의 인사들이 정당, 국회,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었다. 운동권 출신 인물들로 구성된 대규모 간첩단인 일심회는 정계인사와 청와대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행히도 일심회의 존재는 국정원에 의해 발각되었다. 그러나 국정원의 수사는 청와대에 의해 무마되었다. 엄청난 스캔들이 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기에 이를 우려한 청와대가 국정원에 압력을 넣은 것이다. 2006년 가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승규 전 국정원장에게 한 명대사가 있다. “이제 그만하시라고요”. 김 원장은 이틀 뒤 사퇴했다.

일심회사건_오마이

ⓒ 오마이뉴스

2011년에 화제가 되었던 ‘왕재산 사건’도 있다. 왕재산 간첩단은 북한 노동국 225국의 지령을 받아 NL계열 좌익인사들이 조직한 단체다. 발각되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렸다. 특전사 훈련 일정, 대북 공격무기 제원 등 군사기밀 자료를 수집하여 북한에 넘겨온 것은 물론이고, 정계 최근 동향까지 세세히 보고해왔다. 북한으로부터 “남한 사회에서 혁명이 발생하면 제17보병사단 102연대, 공병대대, 제9공수특전여단 등 군시설을 타격하라”고 구체적인 공격 지침을 하달받기도 했다. 왕재산 간첩단에 대한 공안 당국의 수사는 민주노동당(통진당의 전신), 민주노총 그리고 군대에까지 확대되었다. 시민단체, 정당, 군 등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간첩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것이다. 물론 수사는 엄청난 반발 속에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곳곳에 계신 운동권 동지들이 왕재산 간첩단 수사를 “종북몰이”라 비판하며 간첩단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우리민족끼리_블루투데이

ⓒ 블루투데이

이 말고도 ‘실천연대 사건’, ‘이석기 RO 사건’ 등 빨갱이 간첩들이 벌인 만행들은 2000년대 이후에도 종종 발각되었다. 빨갱이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며, 호시탐탐 체제전복 노리고 있다. 불과 2년 전 이석기 RO사건을 보라.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130여명의 지하조직원을 모아놓고 무기제조법을 공유하며 국가전복을 논하고 있었다. 혈기 넘치는 80년대 주체사상 혁명전사들은 이제 사회를 이끄는 기성세대가 되어, 학교로, 언론사로, 정치계로, 청와대로 진출했다. 이제 빨갱이와 간첩은 어둠 속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사회인의 가면 속에 숨어있다. 실제로 위 언급된 간첩단들의 경우 간첩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벤처기업까지 차려서 돈을 벌고 있었으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는 북한이 직접 내린 지령이기도 하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반미친북 운동을 전개하라”. 충성스러운 빨갱이들은 “대중을 동원해 광우병 사태처럼 선전전을 실시하라” 등과 같은 북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열심히 여론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조선일보 헤드라인 이석기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헤드라인 캡쳐>

요즘 대부분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현실인식이 부족하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대중의 무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빨갱이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정의를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위에 참가하여 촛불을 흔드는 젊은 세대들은 그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위의 배후에 반국가 세력이 있으며, 이를 이용해 본인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이런 사실에 대해 설명해주면 오히려 극우주의자의 헛소리로 매도하기 일쑤다. 자신들의 촛불은 진정 순수하기 때문이다. 나라를 위한 애국심과 정의감으로 참가한 시위인데, 어떻게 이 배후에 빨갱이들이 개입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이들이 무슨 잘못이겠는가. 반국가 세력이 사회 속에 이렇게 깊숙이 스며들도록 내버려둔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순진한 사람들의 선의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이 선의를 악용하려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이념적 내전 상태, 그 전장 한 가운데에 있다. 대학가 골방에서 주체사상을 공부하며 혁명가요를 부르는 청춘들은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다. 기성세대가 된 주사파가 대중을 선동하고,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딨냐”며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시위에 참가한 군중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는 지금 이 시기가. 반정부 시위가 ‘그들만의 리그’였던 과거와는 달리, 대중적 유행이 된 바로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 대중에게 현실을 깨우쳐주는 목소리들이 절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