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형제에 반대하는 이유

사형퍼포먼스

엠네스티에서 주관한 사형제 퍼포먼스 <매일신문>

​나는 사형 제도를 반대한다. 단순히 사형 제도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아주, 굉장히, 열정적으로 사형 선고라는 개념 그 자체를 반대한다. 그래서 비록 오랫동안 집행은 되지 않고 있으나, 아직 우리 나라의 형벌 집행 절차상 남아있는 사형 제도의 존재가 나를 몹시 거슬리게 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는 사형 제도가 없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 장관에 의해 집행되는 사형제도에 지난 17년 동안 집행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 현재 약 60명 이상의 사형수가 수감중이다. 가장 최근의 사형 집행일은 1997년 12월 30일로, 이날 남자 19명과 여자 4명, 총 23명이 법의 이름으로 생을 마감했다. 국제 엠네스티 기준에 의하면 10년 이상 사형 집행이 없을 경우 잠정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날 이후 10년이 지난 2007년부로 우리나라는 ‘잠정적’ 사형 폐지 국가에 속하게 된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45,000명의 죄수가 수감 생활을 하고있다. 이중 재판에 의해 평생의 자유를 빼앗긴 무기수가 약 1,000여명이고, 생명권을 박탈 당한 사형수가 60여명이다. 이들 60여명의 사형수는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언제든 사형대에 서게되는 것이다.

그간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제도의 존폐를 놓고 수많은 논쟁이 오고갔다. 1996년 11월 28일의 헌법재판소는 “국민감정이 존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사형제도는 필요하다”라는 사유로 사형 제도를 합헌이라 선언했다. 2010년 2월 25일에 사형제도와 관련하여 다시 한 번 헌법재판소가 재판을 가지는데, 당시 사형이 합헌이라 판단한 재판관 5명, 위헌이라 판단한 재판관 4명으로 근소한 차이로 사형제는 합헌 선언되었다. 15대 국회를 시작으로 매번 국회 때마다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표결에 이르지 못한 채 법안 폐기로 이어져왔다. UN이 제시한 국제인권기준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권 단체 및 사람들이 “오판의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인간의 재판을 통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형벌은 용인될 수 없다”라 주장하며 사형제의 타당성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사형제 폐지론은 비단 사형의 윤리적 측면 뿐만 아니라 기능적 측면에서도 그 목소리를 드높여왔다. 사형제가 형벌로서의 ‘예방적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는 여러 자료들이 주장의 골자였다. 그러나 사형제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여전히 재판에서는 사형이 선고된다.

본 논의에서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느냐, 집행되지 않느냐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물론 한 개인을 사형대에 올려 죽이는 것과,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은 하지 않는 행위에는 결과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사형제의 존폐여부에 관한 논의는 보다 핵심적인 사안을 다루는 것으로서, 재판이라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한 개인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사형 선고’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다. 사형제를 비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단순히 사형제를 통해 사람이 죽기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그 모든 오판의 가능성과 그들 판단력의 불확실성을 차치해두고서 감히 법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생명권을 박탈한다는 것 때문이다.

Death_Penalty_World_Map.svg

엔하위키 미러에서 제시한 자료. 사형제 존폐 국가별 현황으로서 ​파랑​은 사형완전폐지국가 (러시아 제외), ​연두​는 제한적 사형 유지 국가 (전시 등 특수 사항에 한해 실시), ​주황​은 법적으로는 존재하나 사실상 사형폐지국가, ​적갈​은 사형제 유지 및 시행국가를 의미한다. 선진국이라 일컬어지는 국가 중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은 국가는 대한민국, 미국, 일본 3개국에 그친다.

사형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드높다. 사형제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기구는 국제엠네스티로, 그들은 전 세계 사형 폐지국가를 140개국으로까지 늘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제엠네스티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2월 31일 기준 사형 폐지국과 유지국의 비율은 140개국 대 58개국으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이 98개국,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 폐지국이 7개국,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 35개국 (우리나라 포함) 그리고 사형 유지국 58개국으로 조사되었다.

국제엠네스티와 같은 다양한 국제 기구, 인권 단체, 개인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58개국에서 여전히 사형제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미국의 고집을 들 수 있다.  미국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세계의 모범 국가를 자처하고 있는 마당에, 사형제도를 강력히 지지하는 공화당의 보수 정치인들이 미국의 정체성을 강력한 사형 찬성 국가로 이끌어 가고있다. 미 대법원의 말을 빌려, “전 세계 국가들의 모범이 되는 미국의 정치적 행위들은 타 국가의 정치적 행위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불어 사형을 가장 많이 집행하는 상위 5개국에 해당한다. 특정 이슈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종종 국제적 가치 판단의 척도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세계의 경찰 국가이자 모범 국가를 자처하는 미국이 사형제에 내비치는 이러한 태도는 국제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많은 국가들이 사실상 미국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미국을 그 근거로서 사형제를 아직 유지하고 있다.

미국 학술지의 통계에 따르면 사형 제도가 없는 주에서의 살인율 및 범죄율이 사형 제도가 있는 주에서의 그것보다 더 낮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는 80년 이후 사형 제도를 폐지한 뒤 오히려 살인율이 40%나 감소했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함으로서 범죄자에 대한 법익 박탈을 할 때에 그 의미는 “예방”과 “응보”에 있는데, 명백하게도 사형은 “예방”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많은 이들이 범죄 예방을 그 근거로 든다는 사실을 떠올려 봤을 때,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사형집행율과살인율상관없음

위 자료는 법무부에서 제시한 것으로서, 사형 집행과 살인율 간의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사형 집행에는 심각한 위험성이 뒤따른다. 약물주사나 전기의자를 통한 사형 집행 중 종종 실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심지어는 실수 없이 진행되어도 사형을 당하는 죄수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법의학적 증거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위험성은 오판의 가능성일 것이다. 죄가 없는 이가 오판을 통해 사형대에 설 수도 있고, 사형 제도 자체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 정권 시절 실시된 수많은 사형집행이 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군사 정권 시절,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된 사형제가 법에 근거하여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윤리적 측면으로 볼 때에 큰 문제이다.

정권별 사형집행

정권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 사형집행 수는 사형제도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사람들은 죄수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언급하며 사회에 해가 되는 이들을 사형을 통해 제거함으로서 공리를 증진할 수 있다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주장을 한다. 미국 학술 자료에 따르면 매년 사형에는 수 억 달러가 소요된다. 이는 종신형 선고 이후 드는 비용보다 약 6배 이상의 금액이라고 한다. 설령 사형 집행이 비용상 더 저렴하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문제에 비용을 들이대는 그 잔혹함은 힐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리얼미터 사형존폐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 존속에 찬성하는 여론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모든 사형의 모순점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형제도는 아직 굳건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법은 여전히 사형제를 합헌이라 말하고 있다. 사형제가 합헌으로 유지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바로 “국민감정”이다. 1996년 헌법재판소의 “국민감정이 존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사형제도는 필요하다”라는 판결은 이후 사형제 존폐 여부 논의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며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사형제에 대한 찬성 여론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2008년 “조두순 사건”과 같은 흉악 범죄는 이러한 찬성 여론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앞서 밝힌 바, 사형제의 존폐 여부와 범죄율은 사실상 큰 연관성이 없다. 둘 사이의 연관성이 떨어짐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들이 있으며, 이를 인정하고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는 것이 국제적 추세다. 그러나 내가 사형제 폐지를 외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형제의 기능적 실패 때문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형벌의 목적으로는 ‘예방’과 ‘응보’가 있다. 그리고 현재 형벌의 이상은 ‘응보’ 보다는 ‘교화’와 ‘개선’으로 바뀌고 있다. 사형은 명백한 보복 차원의 형벌로서 범죄자에 대한 교화와 개선 가능성 자체를 모두 박탈해버린다. 즉 형벌의 본 목적보다는, 죄에 대한 복수에 보다 가까운 것이다. 죄에 대한 복수로서 죽음을 선고하는 방식의 정의 실현은 성숙한 사회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어떻게 감히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너는 네가 지은 죄로 인해 살 자격이 없다”라 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판단 행위를 통해 대상이 무죄일지도 모른다는 모든 의심을 초월하고서 이를 행할 수 있단 말인가. 또 그것을 법적 절차를 통해 구현함으로서 ‘정의 실현’이라 말하는 뻔뻔함은 뭐란 말인가. 나는 아마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사형 폐지를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