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의 생떼쓰기는 민주주의를 망친다

떼쓰는아이

<이미지 출처: 한겨레, 베이비트리>

​아시안컵이 끝났다. 결승까지 올라가서 주최국 호주와 고군분투한 대표팀은 연장전에서 1:2라는 아쉬운 스코어로 패배했다. 비록 이기지는 못했지만, 선수들의 투지에 감동받은 국민들은 잘 싸워줬다며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다.

사실 경기가 종료되고 대표팀의 패배가 확실시된 순간, 불현듯 노파심이 들었다. 트라우마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펼쳐지는 집단적 떼쓰기. 어쩌면 아시안컵의 주최국이 상대팀이었던 호주였기 때문에 부당한 판정이 있었다며 또 야단법석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명 높은 한국의 ‘생떼쓰기’

심판의 판정에 수긍하지 않는 네티즌들의 생떼쓰기 덕에, 한국은 이미 여러번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아주 작은 의혹거리라도 있으면 재경기 요청 서명운동은 물론이고, 해당 경기 심판에 대한 신상털기, 상대 선수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는 등 한국 네티즌은 이미 그 집단적 광기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오죽하면 행사 주최 공식 홈페이지에서 한국 아이피를 차단한 전례가 있겠는가? 스포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이런 부끄러운 일이 또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이런 광기의 원인은 “억울한 판정”이 아니라, 천민민주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의식 수준”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집단을 이루어 생떼를 쓰는 것이 정의구현이라는 착각 때문에 이러한 일들이 악몽처럼 반복되는 것이지, 우리나라 스포츠 선수들이 특별히 운이 없어서 매번 억울한 판정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네티즌 떼쓰기의 시발점

네티즌들이 집단적으로 경기결과에 불복한 것은 2002년 동계올림픽 때가 처음이었다. 이른바 ‘안톤 오노 사건’으로 유명한 쇼트트랙 경기 때문이다.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가 헐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이 확실시되던 김동성 선수를 실격패시키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네티즌들은 최초로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 뜻으로 규합했고, 대대적인 반미운동과 경기결과 불복 운동을 벌였다. 안톤 오노 선수, 부시 미 대통령, 올림픽 심판진 등을 비난하고 풍자하는 것이 당시 인터넷의 유행 컨텐츠였다.​

안톤오노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 올림픽에서 김동성 선수는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심판들은 김동성 선수가 미국의 안톤 오노 선수를 방해하였다고 판단하여 김동성 선수를 실격처리 했다. 오노 선수의 ‘헐리웃 액션’ 때문이었다.​ 이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네티즌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반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블로그>

 

안톤 오노 사건을 그 기점으로, 네티즌들은 논란이 있는 경기마다 불복의 목소리를 냈다. 한 많은 한국인들의 정서인지, 오공육공 시절 민주화 운동의 유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당한 일이 일어났다, 한국 네티즌들의 힘을 보여주자”라는 외침은 온 네티즌들을 불의에 맞서는 애국열사로 만들어내는 마술주문과 같았다.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경기 결과에는 승복하지 않고, 이에 맞서는 것이 정의구현이라는 착각 속에 네티즌들의 집단적 광기는 그 규모를 키워왔다.​

전 세계에 보여준 한국 네티즌의 문화수준

특히 지난 런던 올림픽은 한국 네티즌의 횡포를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다. 런던 올림픽 당시 각종 오심 논란이 들끓었는데, 논란은 단순 ‘오심 의혹’의 선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네티즌들의 ‘응징’으로 이어졌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상대였던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의 페이스북은 그녀의 과거 누드사진과 더불어 각종 욕설로 도배되었다. 축구 박주영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유도한 스위스 모르가넬라 선수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가넬라 선수는 분에 못 이겨 트위터에 “한국인을 때리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팀에서 퇴출당했다. 경기 심판들과 국제대회 공식 홈페이지 역시 공격의 대상이었다. 서명운동을 하면 재경기를 한다는 황당한 루머가 돌았고, 서명운동을 독려하는 글에는 “한국 네티즌의 힘을 보여줍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함께했다.​

London Olympics Fencing Women

펜싱 신아람 선수의 경우를 비롯해, 2012년 런던 올림픽은 각종 오심 논란으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들인가. 물론 오심이 있었다면 이를 비판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줄 아는 것도 스포츠 정신의 일부다. 경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뒤집자고 단체로 들고 일어서는 것은 한국 네티즌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국 네티즌의 성숙하지 못한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문화수준이 인터넷 기술만큼 성장하지 못해 일어나는 문화지체현상의 한 예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위하여

존 스튜어트 밀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군중의 독재”에 대해 걱정했다.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군중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군중심리에 휘둘리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상식이 사라진다. 질서, 인권, 자유 등을 군중심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법과 규칙이다.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감성에 호소하며 생떼를 쓰는 것은 기존의 정의와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다.​

스포츠의 공간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곧 법이 된다. 따라서 심판의 미숙한 판단을 비판할지언정, 결과 자체에는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다. 단체로 떼를 쓰며 이에 불복한다면, 이것이 바로 군중독재가 아닐까? 떼쓰는 군중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너무나 쉽게 만들어진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국가 대한민국은 천민민주주의 국가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부디 이러한 낯 부끄러운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떼쓰는 군중에게 이성의 목소리를 외치는 개인이 늘어나 대한민국이 성숙한 민주주의로 한 걸음 다가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