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의의 심판자인가

<이미지 출처: 일간스포츠>

 

대한민국 사회에는 ‘신상털기’라는 무서운 형벌이 존재한다.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이 어떤 행위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그들의 판단 하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추적하여 그의 신상 정보를 인터넷 상에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 네티즌들의 이런 왜곡된 정의감은 너무 지나친 경향이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의 약 67%가 신상털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중 95% 이상이 인터넷을 통해 대상의 신상정보를 찾아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상털기는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잡혔다.

신상털기를 통해 공개된 신상 정보는 주소, 연락처는 물론 직업, 학력, 주변 관계인, 병원 기록 등 아주 개인적인 것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대상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짓밟아버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개인 신상 정보를 이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현실 공간에서 희생자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장난전화 같은 가벼운 괴롭힘부터 시작해서, 인신공격, 협박, 위협, 주변인 모욕 등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로 집요하게 괴롭힌다. 신상털기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사람이 결국 자살로 그 비참한 생을 마감한 일도 있다. 이 현대판 인민재판은 이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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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경찰청 폴인러브>신상털기2

신상털기는 2005년, ‘개똥녀 사건’ 때 처음으로 이슈화 됐다. 한 여성이 지하철에 애완견을 데리고 탑승했는데, 이 애완견이 객실 내에 변을 본 것이다. 여성은 이를 치우지 않고 도망치듯 지하철에서 내려버렸고, 누군가가 이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여성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은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퍼져나갔고,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여성의 미니홈피를 추적한다며 소위 ‘싸이 추적대’를 만들었다. 결국 여성의 신상 정보가 공개되었다.

인터넷에 퍼진 '개똥녀 사건'의 사진. 이 사건은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인터넷에 퍼진 ‘개똥녀 사건’의 사진. 이 사건은 외신의 주목을 받으며 사회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조선일보>

여성의 미니홈피는 물론, 여성의 학교 홈페이지 마저 비난의 글로 마비되었으며, 그녀는 온라인 상의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혔다. 그녀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며 그녀의 사적인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녀가 사는 곳을 찾아가 그녀를 괴롭히려는 사람도 있었다. 이 사회적 광기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의 주목을 끌 정도로 거대했다.

신상털기의 또 다른 대표적 사건으로 2009년 ‘루저녀 사건’이 있다. KBS의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 방송 중에 “키가 180cm 이하의 남자는 곧 루저”라는 실언을 해버린 여대생이 그 사건의 중심에 있다. 방송 이후, 그녀에게는 “루저녀”라는 낙인이 찍히며 온갖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다. 그녀의 실언은 키에 대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수많은 남성들을 자극했고, 그녀는 물질주의, 황금만능주의, 외모지상주의에 물들어있는 특정 여성들을 대변하여 욕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방송 대본에 따른 발언이었다며 경위를 설명하며 공개적 사과를 했으나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각종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도경씨의 발언 장면. 실언에 대한 대가가 너무나 컸다.

각종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이도경씨의 발언 장면. 실언에 대한 대가가 너무나 컸다. <이미지 출처: ​KBS 미녀들의 수다​>

이런 신상털기는 종종 잘못과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을 매장하기도 한다. 2008년 12월에 발생한 여아 성폭행 사건인 ‘조두순 사건’은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패륜 범죄였다. 2009년, 인터넷에서 범인 조두순의 얼굴이라며 사진 한 장이 떠돌아다녔다. 흉악범 조두순의 신상을 공개한다며 어느 네티즌이 올린 사진이었다. 문제는 이 사진은 사건과는 전혀 관계 없는 한 시민이 2007년 인터넷 산악회 카페에 올린 증명사진이었다는 점이다. 사진의 주인은 각종 인신공격에 의해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사진을 올린 네티즌에게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신상털기는 비단 국내 인물에 대해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한국 네티즌의 집단적 광기는 2012년 7월 런던 올림픽을 그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런던 올림픽 당시 각종 오심 논란이 들끓었는데, 논란은 단순 ‘오심 의혹’의 선에서 그치지 않고 한국 네티즌들의 ‘응징’으로 이어졌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상대였던 독일 브리타 하이데만 선수의 페이스북은 과거 누드사진과 더불어 각종 욕설로 도배되었다. 축구 박주영 선수에게 옐로카드를 유도한 스위스 모르가넬라 선수의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모르가넬라 선수는 분노에 못 이겨 트위터에 “한국인을 때리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팀에서 퇴출당했다. 경기 심판들과 국제대회 공식 홈페이지 역시 공격의 대상이었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경우를 비롯해, 2012년 런던 올림픽은 각종 오심 논란으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펜싱 신아람 선수의 경우를 비롯해, 2012년 런던 올림픽은 각종 오심 논란으로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이미지 출처: ​세계일보​>

언급된 사건들은 그간 행해져 왔던 신상털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수많은 신상털기가 있었고, 수많은 동참자들이 있었으며,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다. 신상털기에 열광하는 네티즌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초중고생 시절 어디를 가나 이러한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자기들 멋대로 누군가를 증오의 대상으로 만들고, 각종 이유로 그 증오를 합리화 한 후, 갖가지 창의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폭력의 대상이 된 아이들을 괴롭힌다. 우리는 이런 저열한 방식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특정 대상에게 푸는 아이들을 ‘양아치’라고 불렀다. 그런 양아치들은 그들이 특정 인물을 괴롭히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쉬쉬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억지스레 만들어 낸 이유는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도 그것이 그들의 잔혹한 괴롭힘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필요한 명분이었다. 억눌려있던 폭력성과, 각종 스트레스와, 가학적인 본성을 배설해 낼 명분만 있으면, 마치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 떼처럼 우르르 몰려들어 희생양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신상털기를 주도하는 인터넷의 ‘양아치’들은, 보다 더 역겨운 방식으로 누군가를 괴롭히려 한다.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 “억지스레 만들어낸 이유”를 철없는 초중고생들이 내세우는 것보다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내세운다. 바로 사람들의 정의감에 호소하는 것이다. 괴롭힘의 대상이 사회의 악이라 규정하며, 그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는 것이 곧 옳은 행동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럴싸해 보인다. 자기들이 직접 나서서 정의를 구도하고 악을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 생각이 정말 옳은 것일까?

신상털기가 자주 행해지는 포털 싸이트에서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문장까지 만들어 당당하게 이를 행하고 있다.

신상털기가 자주 행해지는 포털 싸이트에서는 자신들을 대표하는 문장까지 만들어 당당하게 이를 행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경찰청 폴인러브>

신상털기라는 징벌적 행위는 법 체계를 무너뜨리고 개인의 인권을 해치는 행위다. 영아 강간이나 왕따 집단 폭행과 같은 특정 패륜 범죄는 응당 대중의 분노를 사기 마련이다. 신상털기는 이런 범죄의 용의자들에게 자주 행해지는데, 문제는 사법 체계가 용의자들의 죄를 판단하기도 전에, 성난 대중들이 신상털기를 통해 죄에 대한 확신도 없이 용의자들을 심판하려 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형을 선고 받고, 법이 할당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난 사람에 대해서도 심판의 칼날은 망설임이 없다. 용의자나 범죄자가 신상털기의 희생자가 된 이상, 그들에게 ‘새로운 출발’은 존재할 수 없다.

법률에 따르면 법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그들의 군중심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법원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한 사람이 죄가 있다는 전제 하에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무죄라는 전제 하에 검사 측에 “피고가 범죄자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요구한다. 또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따라 동일한 범죄에 대해 두 번 처벌받지 않게끔 죄인을 보호하기도 한다. 이 원칙들은 군중심리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데 성난 네티즌들은 이러한 법률의 기본적인 원칙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스스로 심판관이 되어 정의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합리성’이 아닌 ‘감정’으로 치우친 이 정의의 칼날은 단 한 번의 말실수, 단 한 번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회적 매장이라는 무시무시한 형벌을 선고하고 있다.

언급된 원칙들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민주주의 국가에도 적용되는 사법체계의 핵심이다. 이것이 없이는 우리는 독재자의 변덕에 따라 마음대로 사람을 투옥하고, 고문하고, 사형하는 전체주의 국가에 사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여기서 독재자는, ‘군중’일 것이다. 우리의 인권을 폭력과 복수에 눈이 먼 성난 군중에게 맡기고 싶은가?

인권이라는 개념은 인류의 발명품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누구나 동등한 인권을 보장받는다. 미국의 전설적 정치인 애들라이 스티븐슨Adlai Stevenson은 “원칙을 위해 싸우는 것보다,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이 훨씬 어렵다”라고 말했다. 특정 가치를 그 명분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쉽다. 특히나 그것이 극악무도한 패륜 범죄와 맞물려있다면 오히려 범죄자를 힐난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려 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원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실언을 한 여인이건, 극악무도한 패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건, 형을 선고 받고 출소한 전과자건 간에 우리 모두는 인권을 가지고 있고, 그 인권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쳐 잘못에 대한 처벌을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감히 누군가의 죄의 무게를 멋대로 평가할 권리는 없다. 그 사람을 처벌할 권리도 없으며, 그 사람의 인권을 멋대로 박탈할 권리는 더욱이 없다.

신상털기는 인권을 탄압하는 인민재판이자, 마녀사냥이다.

신상털기는 인권을 탄압하는 인민재판이자, 마녀사냥이다. <이미지 출처: 중국 문화혁명 참고자료>

신상털기는 이제 인터넷의 한 문화가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감정에 따라 멋대로 한 사람의 죄를 판단하고 평가하고 처벌까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권은 이렇게 군중의 폭력성에 의해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이제 누군가가 이에 맞설 때라고 생각한다. 반이성이라는 이 인터넷 문화의 고질적인 문제를 고쳐나가자고 외칠 사람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하고,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위해 소리칠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인터넷에서 양아치들이 벌이는 ‘축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한 마디를 외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타인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을 정의의 심판이라 착각하는 이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