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그리고 비뚤어진 페미니즘

나는 소수자 인권을 지지한다. 장애인, 아동, 외국인, 성소수자 등 다수주의로부터 자유와 권리를 침해받는 그 모든 상대적 약자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 물론 이 범주에는 여성도 포함된다. 여성은 더 이상 상대적 약자가 아니고, 우리 사회는 이미 성평등을 이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평균적으로 여성이 더 오랜 시간 노동을 하고 있음에도 소득은 남성의 3분의 2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고위직에 속한 여성 비율은 고작 11%다. 이는 OECD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놓고 봐도 최하위권에 머무르는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현저하게 낮은 점수의 성불평등지수(GII), 성격차지수(GGI), UNDP남녀등지수(GDI) 등도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는 아직 구조적인 차원에서의 성차별, 즉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우리 사회는 여성을 배려하는 사회 같은데, 도대체 왜 데이터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여자라서 업신여김 당하고, 무시 당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이러한 의문이 드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성차별’에 대해 생각할 때 단순히 표면적인 부분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 더 근원적인 부분에 대해 논할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 이미지_오마이

ⓒ 오마이뉴스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피터슨(V. Spike Peterson)은 이러한 사회구조적 성차별이 우리의 인식 기저에 깔린 ‘젠더(gender)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젠더 인식’이란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분하고, 여성성에 수동적, 의존적, 유약함, 유순함 등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것을 말한다. 페미니즘은 이 불평등한 구분을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즉 가부장제 탄생 이후 수십 세기에 걸쳐 이루어진 이 근원적인 차별을 비판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젠더’라는 개념에 의해 발생하는 모든 구조적, 개인적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운다.

모든 인간이 평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믿는다면, 단순히 성별로 인해 부당한 인식, 차별, 대우를 받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 바로 페미니즘이 있다. 그래서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 대부분의 대중들이 성차별에 대해 논의할 때에 이러한 근원적인 부분은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중대한 아젠다 세팅을 페미니스트들이 해줘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왜곡하여 사용하고 있을 뿐, 진짜 성평등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페미니즘을 본인들 취향에 맞게 독선적으로 왜곡하는 소위 ‘페미나치’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런 ‘페미나치’들은 정상적인 페미니즘 여론에 의해 정화된다. 반면 한국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여성여론의 중심에 있는 커뮤니티 <여성시대>의 스캔들에서 알 수 있듯, ‘페미나치’들이 한국 페미니즘 담론을 주도하고 있고, 대부분의 여성여론이 이 비뚤어진 페미니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성시대 로고

이미지 출처: 커뮤니티 <여성시대> 로고

겉으로는 성평등, 탈젠더를 주장하면서, 정작 성차별에 의해 발생하는 이익은 누리려 드는 것.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비뚤어진 페미니즘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성시대>의 군대 관련 여론을 떠올려보자. 군대는 육체적으로 강한 남자들만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여론이다. 이들은 “여성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남성들을 ‘페미니스트’로서 맹렬하게 비판한다. 심지어 “우리는 너네들 자식을 낳아주지 않느냐”, “생리를 하지 않느냐” 등의 궤변으로 맞서기까지 한다.

노르웨이는 2016년부터 여성 징병제를 실시한다. 양성평등 정책의 일환이다. 이 중심에는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남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여성들도 할 수 있다”며 징병대상에 포함될 권리를 주장했다. 이웃나라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작년 10월 말 스웨덴은 징병제 재도입을 검토하며, 징병제를 실시할 시 여성 역시 징집대상에 포함될 것이라 밝혔다. 마찬가지로 여성으로서의 자존심, 성평등, 탈젠더를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이 낳은 결과였다.

노르웨이여성징병제_KBS뉴스

이미지 출처: KBS 뉴스 화면 캡쳐

한국의 여성여론과 타국의 여성여론이 군대라는 같은 논제를 놓고 이렇게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여성의 권리를 챙기는 것, 여성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에 대한 양국 여성여론의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군대뿐만이 아니다. 결혼 비용, 데이트 비용 등, ‘여성의 의존성’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다른 나라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도 금전적인 능력이 있는데 왜 남성들이 우리 몫의 돈을 대신 내려고 하느냐”며 자존심을 치켜세우는 한편, 한국의 자칭 페미니스트들은 더치페이에 대해 논하는 남성들을 “남자라는 게 쪼잔해서는”이라며 비웃고 있다. ‘남자라는 게’라는 표현이 젠더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여성차별적 발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한국에는 ‘성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 여론이 꼭 필요하다.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문화는 여성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차별을 낳아왔고,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여성의 사회적 불이익을 일반화 해왔다. 단순히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남성과 차별된 대접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 그러나 <여성시대>의 다수 회원들, 즉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남성보다 더 많은 이익을 누리는 것 역시 부당한 일이다. 특히 그 ‘이익’이 여성을 나약하고 의존적인 성별로 일반화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라면 더더욱 차별적이고 부당한 일이다.

페미니즘은 젠더로 인해 발생하는 그 모든 차별적 대우와 인식을 거부하며, 이는 이익과 불이익을 막론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골라서 차별받기에는 여성, 아니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나 고귀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존심의 문제다.

아쉽게도 페미니즘을 거론하는 한국 여성 여론은 성평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특혜를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왜곡된 페미니즘은 결국 서로의 득실만 따지는 남녀 성대립을 낳게 된다. 여성들의 진정한 자유, 권리, 그리고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비뚤어진 페미니즘을 배척하는 올바른 여성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