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 인사이트 당신들은 재판관이 아니에요

어제자 기사로 “상대방의 아이폰을 먹통으로 만드는 버그 메시지”에 관한 내용이 <허핑턴포스트>와 <인사이트>에 올라왔다. 특정 문자들로 구성된 메시지를 상대방 아이폰에 보내면 버그에 의해 기기에 문제가 생기는 현상에 관한 보도였다. 놀랍게도 허핑턴과 인사이트는 문제를 일으키는 버그메시지를 기사 내용에 첨부했다. 허핑턴의 경우 해당 메시지를 복사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기사 전반부에 강조처리까지 해놨다. 이 덕분에 해당 기사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 메시지를 이용하여 특정 대상에게 악의적인 장난을 칠 수 있게 되었다.

허핑턴 문제보도

이미지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기사 캡쳐 및 편집

미국 타임지를 비롯한 대다수의 언론이 자신들의 기사로 인해 추가적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버그메시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의 윤리적인 태도와 비교했을 때, 한국 뉴 미디어를 대표하는 두 매체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현 온라인 언론매체 중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허핑턴과 인사이트가 공익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론의 대원칙을 버리고, 온라인 상에서의 바이럴을 위해 비윤리적 보도를 한 것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다양한 문제적 보도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심각한 경우가 바로 “언론재판”이다. 두 매체 모두 언론재판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끈 바 있다. 살인, 폭행, 강간 등의 범죄사건이 발생하면, 사법절차를 통해 용의자에 대한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두 매체는 적극적으로 용의자에 관해 보도하기 시작한다. 용의자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기사를 내는 것이다. 정황상의 증거를 비롯해 객관적 증거로서의 신뢰성이 부족한 사실들을 기사보도하여 용의자가 사건의 범인임을 암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에 대한 편향을 가지게 한다.

기사를 쓴 기자는 판사가 재판을 통해 용의자의 죄를 판단하기도 전에 사건을 예단하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사건을 그려낸다. 이러한 기사는 자연스럽게 독자들의 공분을 자아낸다. 정작 용의자는 아직 죄가 있는지 없는지 판결도 내려지지 않은 상황인데 말이다. 분노한 독자들이 기사내용을 바탕으로 용의자의 신상털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죄에 대한 판결은 기자가 아니라 판사가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기자가 유죄를 선고하고,  대중이 처벌을 내리고 있다.

리갈하이, 판결을내리는건

이미지 출처: 드라마 리갈하이 방송 캡쳐 ⓒ 일본 후지 TV

최근 이슈와 관련한 예를 살펴보자. 지난 25일 인사이트는 “우리 누나 암매장한 살인범 처벌 받게 도와주세요”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뒤 자살소동을 벌인 “범인”이 강력한 처벌을 받게 도와달라고 피해자의 남동생이 제보했다며 기사를 써냈다. 해당 사건은 당시 경찰 수사가 채 끝나지도 않은 사건이었으며, 당연히 재판을 거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인사이트는 ‘용의자’가 아니라 ‘범인’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사건정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했다.

인사이트 보도

이미지 출처: 인사이트 기사 목록 캡쳐

더군다나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이었다. 해당 기자가 직접 사건조사를 벌인 것도 아니고, 사법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를 참고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유족의 일방적 주장만 듣고 기사를 쓴 것이다. 더군다나 사건과 관계가 없는 제3자의 주장도 아니었다. 피해자의 남동생으로서 해당 사건에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람의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이트 기자는 언론재판을 실시하였고, 용의자를 범인으로 지목하였으며, 독자들의 편향을 유도하고, 나아가 재판을 통해 강력한 처벌이 나오도록 사법적 판단을 본인의 뜻대로 유도하고 있다. 물론 인사이트 기자가 보도한 것처럼 현재 수사를 받고있는 “용의자”가 실제 범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사법이 하는 것이지, 기자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이트 기자에게 도대체 무슨 권리가 있어서 용의자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 27조는 대한민국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언론재판의 사례는 언론기관이 “언론 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 21조를 가지고서 헌법 제 27조를 침해하는 행위다. 이러한 언론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을 보호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다. 사법권의 독립성이 대중과 언론에 의해 침범되는 순간,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가 침해받게 된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용의자가 혐의 사실을 자백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한다거나, 혐의 관련 증거를 공개하여 그 신빙성이 언론에 의해 평가되는 경우, 사건에 대한 예단적 여론이 형성된다. 대중들이 먼저 범인을 정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여론은 사법기관을 압박하게 된다. 정당하게 실시되어야 할 수사와 재판이, 여론의 판단을 따르는 수준으로 격하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 사법의 신성성을 언론재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항들이 마련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영연방의 법정모욕법(The contempt of law)이 있다. 사법절차를 통해 판단이 내려지기 전에 특정 여론을 형성하여 사법권을 압박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만일 위 인사이트 기자가 영연방 국가에서 저러한 기사를 보도했다면, 지금쯤 재판장에 서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는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법조항이 없다. 사법권의 독립성과 재판의 공정성을 보호하기 위해 형법 제 126조에서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 피의사실공표죄는 명예훼손죄의 특칙 정도로 치부되고 있는 수준이다. 언론재판과 같이 사법권을 침해하는 비윤리적인 보도행위를 처벌하는 것에 특화되지 않은 것이다. 윤리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언론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비윤리적 언론으로부터 사회의 공익을 보호하고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할 법 제정에 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기레기는 필요없다 정락ㅇ니닷컴

ⓒ 정락인닷컴

언론의 공공적 기능은 보장받아야 마땅하나, 언론은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아니다. 판결이 끝나기도 전에 언론이 예단적 여론을 형성하여 사법절차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해하는 것은 공익을 저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핑턴과 인사이트는 본인들의 보도행위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들에게는 공익보다 ‘좋아요’나 ‘리트윗’ 숫자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