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에 대한 소고

3학년 수험생들이 모의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다.

3학년 수험생들이 모의평가 시험을 치르고 있다. <국제신문>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를 거친 이들은 진로 선택에 있어 시련을 경험한다. 그 시련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찾아온다. 초,중,고등학교의 천편일률적인 교육 시스템을 거쳐 개인의 개성이 사라지고 특기와 재능이 무뎌지는 것이다. 본래 초중고 기초교육은 학생이 본인의 진로를 잘 찾을 수 있게끔 다양한 기회와 경험을 부여하고자 만들어졌다. 또한 피교육자가 한 가지 분야의 지식 습득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있어 기본적인 소양을 갖출 수 있게끔 교육하는 것이 기초 교육의 주요 목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교육 제도는 그 본 의의를 상실하고 붕괴되기 시작한지 오래다. 학생들은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한다. 본인이 정말로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과목은 제쳐두고 본인이 싫어하는 과목의 점수를 올리고자 발버둥친다. 마치 모든 과목들에서 ‘평균’을 맞추지 못하면 지진아라도 되는 양, 미래의 문학가가 수학과 씨름하고, 미래의 과학자가 사회 과목과 씨름하며, 미래의 예술가가 영어와 씨름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라는 것 그 자체로부터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객관적 수치를 살펴보자. 한국의 학업 성취도는 OECD 가입 34개 회원국 중 1위를 하고 있으나, OECD에서 조사한 “학업에 대한 흥미나 만족도” 부분에서는 65개국 가운데 58위로 상당히 낮은 수치를 보인다. “특정 학문에 대한 필요성 인식” 측면에서도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 조사에서 한국은 OECD국가 중 34위, 즉 꼴찌를 하고 있다. 2012년에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와 한국방정환재단이 공동으로 전국 학생 표본 집단 5,43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적 있는데, “삶에 만족하는가”라는 질문에 오직 53.9%만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같은 질문에 네덜란드 학생 94.2%가 만족한다라고 대답한 것에 비교하면 압도적인 차이가 있으며, OECD회원국의 평균인 84.8%와 비교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의 74.1%가 합업으로 인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전체 청소년의 20% 가량이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겪고있다고 한다. 관심이 있고 흥미가 있는 분야, 재능이 있는 분야, 꿈과 열정이 있는 분야에 대한 적절한 교육과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학생들은 늘 욕구불만과 같은 상태에 머물러있다. 반대로 전혀 흥미가 없는 과목에서조차 좋은 점수를 받아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순위가 매겨져 남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점수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하나의 ‘평가 수단’ 내지는 ‘경쟁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본질을 놓쳐버린 교육에 의해 하루 열 몇 시간씩 조련되고 있다.​

청소년의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2명 중 1명 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OECD 가입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청소년의 삶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 2명 중 1명 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OECD 가입국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처럼 규격에 맞춰 ‘다듬어진’ 학생들은 성적에 맞춰 줄 세워지는데, 여기서 ‘대학 진학’이라는 또다른 시련을 경험하게 된다. 대한민국은 무려 82%라는 (2011년 9월 기준) 경이로운 대학 진학률을 지닌 기이한 국가다. 흔히 선진국이라고 일컬어지는 OECD 회원국들 사이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대학 진학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등록금은 OECD 회원국들 중 2위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대학 졸업장을 가진 이의 비율이 차라리 운전 면허증을 지닌 이들의 수치와 비슷하다보니, 이제 대학 진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이 넓은 시장 덕분에 대학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사업’으로서 대학 간의 경쟁이 치열해져가며, 정부는 그 경쟁의 잣대로서 ‘취업률’을 들이댄다. 한때는 지성의 산실이라 일컬어지며 상아탑으로 묘사되던 대학이, ‘소비자’인 학생들을 유혹하기 위해 각종 광고 전략을 사용하고, 또 대학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취업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교가 아니라 차라리 거대한 취업 학원과 같은 모습이다. 대학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강요에 맞춰가기 위해 수많은 부모들이 비싼 대학 등록금에 고통받으며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진학 선택이 주로 ‘성적과의 타협’ 그리고 ‘취직률’ 등에 의해 결정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초중고의 주입식 교육 덕분에 자신의 흥미가 무엇인지, 자신의 특기가 무엇인지,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잃어버린 학생들은 그저 자신의 성적에 맞춰, 혹은 취직률이 높은, 남들이 많이 가는 학과를 선택해 자신의 전공을 정한다. 혹 방향성과 정체성이 뚜렷한 학생이 있다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라고 칭해지는 사회적 장애물들에 의해 자신의 뜻을 펼쳐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타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타 국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게 힘겨이 대학에 들어가고나면, 초중고 시절의 한을 풀기 위해서인지 망가지기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다. “대학만 가면 마음껏 놀 수 있다”라는 말이 고등학생들에게 건네는 흔한 위로라는 사실이 불편하다. 매일 같이 학교나 학원에 처박혀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에 들어와 처음 자유 시간을 접하고는 이를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허둥거린다. 많은 대학생들이 그 시간을 유흥에 빠져 보내고, 뒤늦게 깨우친 ‘노는 즐거움’에 할애한다. 그러나 공부 방식 만큼은 여전해서, 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이해보다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한다. 시험 전날 밤샘 같은 것들은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단순 암기로 대학 공부를 하다보니 시험을 치고 나면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그 모든 정보는 술잔 비우듯 깨끗하게 지워져버린다. 학문에 대한 이해, 그것을 응용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 결국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선택된 자신의 전공과 대학 초기 그 특유의 노는 문화 덕에 학생들의 진로 탐색 혹은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시기, 상당수의 학생들이 여전히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 마음 한 편으로 불안해한다.​

서울여대학보 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과반수 이상의 대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서울여대학보 <찐언>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과반수 이상의 대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대학 생활 말기로 가도 상황이 그리 달라지지는 않는다.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를 시작하는 이 시기까지도 꽤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한다. 특히 대학 명성을 보고서 자신과 거리가 있는 비주류 전공을 선택했던 학생들이나, 성적과 타협하여 전공을 정한 학생들, 내지는 타의에 의해 자신의 전공을 선택한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에, 각종 자격증이나 어학 성적 등에 매달려 바쁘게 살고,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라는 것에 매진한다. 단순히 바쁘게, 열심히, 치열하게 산다는 것으로부터 그 불안함을 위로받고자 애쓴다. 그러나 방향성을 잃고서 열심히 산다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애처로운 자위 행위일 뿐이다.

진로라는 것이 반드시 대학과, 그리고 그 전공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대학을 포함한 ‘교육 기관’의 목적은 교육이지, 취업을 시켜준다거나 진로를 찾게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본연의 목적인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시야를 넓혀준다면 그것으로 그 역할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교육을 거친 학생들은 응당 다양한 분야의 깊이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진로는 자연스레 설계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은, 본질을 놓친 교육이 오히려 학생의 진로 탐색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이 오히려 학생들로 하여금 그 방향성을 잃게 한다.​

물론 이 글은 일반화를 내포하고 있다. 필자가 경험한 바, 아직 한국 사회에는 진짜 교육을 하고자 하는 열정적인 교육자들이 많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진짜 학문에 뜻이 있어 대학에 진학하는 수많은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심해봐야할 문제는, 이러한 소수의 ‘희망’들이 아니라, 이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교육 제도’가 생산해내는 ‘일반적인 학생’들의 모습이 아닐까. 이 안타까운 사회 구조 속에서 양산되는 피해자들은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다음 세대 학생들을 위해 선배 세대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