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링 – 악의적인 꼬리표 붙이기

레이블링(labeling) – 사람이나 행위, 사건 등에 부정적인 꼬리표를 붙임으로써 그 대상을 일탈화하는 의미부여 활동.

레이블링

이미지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jdhancock/3814523970/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복지병 환자’나 ‘빨갱이’로 레이블링 하는 거 촌스럽다. 마찬가지로 공공지출을 줄이고 복지에 선택과 집중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적자생존 주의자’나 ‘비인간적인 악마’로 레이블링 하는 것도 후지다.

탁 까놓고 말해서 세금을 어떻게 거둬서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다. 사람들이 핏대를 올리는 문제의 팔할은 ‘조세’와 ‘지출’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비롯된다. 더 많이 버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걷으려는 사람도 있고, 그만하면 많이 내고 있으니 중간 계층도 같이 내자는 사람도 있다. 혜택과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을 넓게 잡을 수도, 그 대상을 좁게 잡을 수도 있다. 결국 이 차이를 놓고 서로를 ‘무식한 포퓰리스트’나 ‘냉혈한 악마’로 레이블링 하는 것이다. 실익이 없는 무의미한 싸움이다.

개인적으로는 만 20살 이후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고 살았기에 집에서 대학 학비를 받아 공부하는 학생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한다. 대학 학비를 지원 받고도 본인을 피해자라 생각하는 루저 근성을 가진 애들이야 어디에나 있지만, 그런 애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쓰이는 걸 원하지 않는다. 대신 정말 집안이 어려워서 공부를 못 하는 친구들에게 세금이 쓰이는 거라면 얼마든지 찬성이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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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연금의 경우도 공무원 연금이나 국민 연금의 지급률을 국가가 무리하게 보조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차라리 그 돈을 노인들의 기초노령연금에 투자하겠다면 찬성할 수 있다. 국민 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고, 그들에 대한 구제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비인간적’이고 ‘적자생존’을 추구하며 ‘사회안전망’을 부정하는 걸로 느껴진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이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세금을 어떻게 거둬서 어떻게 쓰느냐에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좀 더 많은 세금을 거둬서 좀 더 넓은 계층에게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생각도 존중한다. 담론은 서로의 다른 의견을 확인하고 통계와 근거로 주장을 펼칠 때 의미를 획득한다.

마구잡이로 상대편에게 ‘악마’ 딱지를 붙이면 남는게 무엇일까. 정의감에 도취한 자기편끼리 똘똘 뭉쳐 옳은 일을 한다고 자위하는 것 외에 무슨 유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투표’를 통해 단기적, 장기적인 승부를 보게 된다. 설령 내가 지지하지 않는 이들이 선거에서 이기더라도 세상이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 세금이 조금 더 오르겠지만 군말없이 내면 되고, 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시민의 입장에서 관찰하고 감시하면 된다. 반대의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승리한 쪽에게 세금을 폭넓게 제대로 쓰라고 주장할 자유가 있다. 한 번의 선거는 많은 것을 바꾸는 승부지만, 이겼다고 해서 상대의 목을 자르고 언로를 막을 수는 없다.

세금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문제에 열의를 보이는 건 훌륭한 시민의 자세다. 하지만 반대 진영의 ‘극단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맞춰 자극적인 레이블링으로 서로를 ‘악마화’시키는 건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상속세 100%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좌파도 있고, 복지나 사회안전망 자체에 학을 떼는 극단적인 우파도 있다. 그러나 극단적인 사람들은 극소수고, 사회와 진영은 그들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중간 지점에서 약간 다른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의 논쟁을 통해 사회가 움직이는 것이다.

ⓒ Seeing Eye to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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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극단’으로 상정하고 손가락질하며 레이블링 하는 것, 과연 누구에게 유리할 것 같은가? 돈을 내는 계층, 주로 세금을 내야하는 계층을 ‘악마’로 만드는 게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일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화가 불가능한 극단에 서있는 사람들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중간 어딘가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 감정을 소모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수의 극단주의자들을 확대시키는 것,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빨갱이’나 ‘악마’ 같은 극단적 꼬리표를 붙이는 것, 선거와 정치를 마치 죽고 죽이는 싸움처럼 생각하는 것. 이렇게 분열을 만드는 태도에 가장 기뻐할 사람들이 누구일지 깊이 고민해보면, 섣부른 레이블링으로 상대를 모욕하고 감정 싸움을 유도하는 건 자제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