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표께 드리는 편지

<이미지 출처: SBS 뉴스>

문 대표께

먼저 축하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로 선출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간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친노니 비노니 하면서 같은 당 의원끼리 치열한 진흙탕 싸움을 벌이지 않으셨습니까. 특히 TV 뉴스토론에 나오셔서 박지원 의원과 말장난 같은 “토론”을 하실 때에는, 그 민망함에 차마 계속 보기가 힘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기도 했습니다. 박 의원이 친노에 당한 것들이 오죽 많았으면 저럴꼬 싶어서 약간의 안쓰러움을 느끼며, 새삼 친노의 그 권모술수와 업적을 돌이켜보기도 했습니다. 뭐, 이건 논외의 문제니 이쯤에서 넘어가지요.

지난 대선 때 문 대표께서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로 많은 사람들을 움직였습니다. 정치에 쥐뿔도 관심이 없는 여대생이었던 제 동생이 어느 날 문 대표의 인자한 눈빛이 담겨있는 전단을 들고와서, “문 대표가 뽑히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라더군요. 생각해보면 사람 낚는 어부 수준의 대국민 어장관리를 자랑하던 안철수 씨와 마찬가지로 케릭터 하나는 확실하셨습니다. 인물 좋으시지, 방송에서 케릭터 잘 잡으셨겠다, 무엇보다 북유럽 국가들한테 거드름 피울 수 있는 수준의 빵빵한 복지를 약속해서, 경제학적 지식이 없는 순진한 국민들의 든든한 지지를 받기도 하셨었지요. 어쩌면 대선토론에서 리정희 동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설픈 극딜만 시전하지 않았었어도, 지금 청와대에서 총리후보를 가지고 미니마니모를 하고 있는 사람은 문 대표님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선에서는 패배하셨지만 그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지요. 상처 입은 마린 따라다니는 메딕 마냥 우리 문 대표님 뒤에는 천군만마 같은 친노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국정원 개입이니 뭐니하며 대선 불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서 나라가 많이 시끄러웠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 행보겠네요. 사실 그 동안 이어져온 삽질의 연속은 훗날 가히 흑역사라 불릴만합니다. 오죽하면 야당의 지지율이 역대최저치까지 떨어졌을까요. 세월호라는 안타까운 사고를 정치적 소재로 잘 활용해서 반정부 여론이 그렇게 들끓었었는데도, 재보궐에서는 또 대패했었습니다. 그렇게 후퇴의 후퇴를 반복하다, 다시 기회를 잡으셨네요. 당대표로서.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당대표 된 것 까지는 좋은데,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시려 하는군요. 취임사와 동시에 나온 말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벌이겠다”라니요?

아 물론 야당이라는 존재가 당연히 여당과 맞설 수 밖에 없다지만, 그간 새정치민주연합이 왜 그렇게 털렸는지 모르십니까? 제1야당으로서의 정치적 책임은 뒤로하고, 투쟁정치만 계속해왔기 때문 아닙니까? 예로 재보궐을 들어보지요. 당시 새누리당이 세월호로 그렇게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도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삽질이건 아니건 간에 어쨌든 “정치”를 했기 때문입니다. 나름 비전을 제시하고, 공약을 짜내서 국민들에게 그들이 그리려는 미래를 보여줬지요.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뭘 했습니까? 뒤집어진 배가 아이콘화 되어서 거대풍선으로 떠있는 광화문 앞에 가가지고 노란리본 달고 박근혜 욕한 것 말고 뭘 했습니까? 재보궐 선거 바로 직전까지도 후보자 홈페이지의 공약란에는 ‘준비중’이라는 말이 떠있더군요.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된 진보/보수 담론이 이루어지려면 이런 것들부터 좀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제 그 지긋지긋한 투쟁정당의 이미지를 좀 버리고, 새정치가 추구하는 가치관으로, 정치에 대한 비전을 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정운영 능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허구한날 반정부만 외치면 뭐합니까. 할 줄 아는 게 돌 던지는 것 밖에 없는데, 국민들이 뭘 믿고 정치를 맡기겠습니까? 사람들이 맨날 새누리당 욕하면서도 새정치에 표를 줄래야 줄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패싸움에서 이기려는 사람들로 밖에 안 보이니까요.

특히 “박근혜 정부는 복지 공약 무조건 이행하라”고 떼쓰던 야당의원들 보면서 지독한 환멸을 느꼈습니다. 문 대표께서도 잘 알듯이, 문제의 ‘복지공약’은 애초에 문 캠프 쪽에서 내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거대복지 공약들을 따라가려다 나온 것들입니다. 결국 그 공약들은 (비록 문 캠프 1/2 수준이었지만) 박 대통령의 자승자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분명 박 대통령의 잘못이었죠. 하지만 그 문제와 별개로 야당의 태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제 공약을 지켜야 할 책임이 없다’라는 건지, 이러한 보편적 복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드는 지속불가능한 복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야당정치인들은 그저 청와대를 압박하기 위해 “공약 이행하라!”고 언성을 높이더군요. 결국 국가의 미래보다, 당장 눈 앞의 권세싸움에 집중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분노했습니다.

요새 말 많은 ‘인사참사’도 같은 맥락에서 화가 납니다. 박근혜 정부가 유난히 멍청해서 이상한 사람들만 인사 지명하겠습니까? 인사청문회에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노이즈를 내고, 언론을 통해 부풀리니까 자꾸 인사참사가 나는 것이지요. 청와대의 힘이 얼마나 약해졌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감투를 씌워주자는 게 아닙니다. 단 인사청문회도 좀 상식적인 선에서 하자는 거죠. 어떻게든 공격하려고 눈에 불 켜고 꼬투리 잡지 좀 말고. 또 꼬투리 하나 잡으면 어떻게든 부풀려서 낙마시키려 들지 좀 말고. 우리 툭 까놓고 말해봅시다. 솔직히 지난 정부들과 비교했을 때, 박근혜 정부의 인사 처리가 지금 여론에 비춰지는 것만큼 “심각한” 수준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사태가 진짜 청와대가 천하의 불한당들만 후보자로 지명해서 벌어졌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야당의 네거티브 공격 때문이지요.

이슈만 있으면 어떻게든 노이즈를 만들어내서 반정부 투쟁으로 몰아가는 제1야당의 그 행동들은 보고있기가 참 불편합니다. 뭐, 밥그릇 싸움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제대로 된 알맹이, 즉 정치에 대한 비전은 전혀 없이 그저 세력다툼만 하는 것은 국민의 삶을 피곤하게 합니다. 자꾸 국정에 엄청난 문제가 있는 양 부풀려서 말하고 다니니까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온 국민들이 다 불행해지지 않습니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듯, 현재 야당은 “깔 대상”인 여당에 기생하고 있는 꼴입니다. 문 대표께서는 “사람이 먼저다”라고 하셨습니다. 정치권력싸움보다 국민을 더 생각하겠다는 뜻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하는 말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펼치겠다”라니요? 뭐, 정부의 문제점을 파고드는 거까지는 좋은데, 어째 ‘전면전’이라는 단어가 참 듣기가 그렇습니다. 승리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모든 방면에서 현 정부와 투쟁하겠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 전면전의 결과로 세상은 더욱 시끄러워지고,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곤해지겠지요. 사람이 먼저라면서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충분한 교훈을 얻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하십니까?

국민을 위하는 정치인이라면, 이 혼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제1야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 올바른 진보/보수 담론이 자리잡혀 당리당략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진짜 정치를 논하는 대한민국 정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실 수 있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꿈꾸는 한 국민으로서 간곡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