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보수주의가 없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의한 통진당의 해산 결정과 이석기의 내란음모 관련 공판을 목도하면서 한국 정치권 내에 종북좌파 세력이 깊숙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해산된 통진당 당원들은 무소속으로 다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 통진당 해산의 실질적 효과에 대하여 의문이 든다.

진보세력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확대 정책이 지난 대선에서 인기 영합적으로 채택되었고, 그 재원 부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향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이 시사하는 점은 만약 우리 사회 내부의 종북 세력이 그 영향력을 확장한다면, 한미동맹에 근거한 한국의 국가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북 세력의 극렬한 반미 저항이 확대 재생산된다면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은 수정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혼란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좌우 이념 대립의 격랑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향후 한국 사회를 바람직한 길로 인도하기 위해 보수주의자들은 어떤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 과정과 그 전략을 고찰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 보수주의는 학자 집단, 경제 집단, 시민사회, 언론계 등 다양한 세력들이 체계적으로 정책적 방향을 탐구하고 실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 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뉴딜 정책 반대 위해 ‘미국자유연맹’ 결성 

미국의 보수정당인 공화당 정치인들이 보수주의적 여론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보수세력들이 연구소를 설립하여 정책 개발에 매진하고,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제시했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정치계에서 형성된 보수주의 흐름은 풀뿌리 운동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 과정은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 미국 보수주의의 등장은 세계 대공황의 극복 과정과 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에서부터 출발했다. 1929년 시작된 세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연방정부는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시장경제에 적극 개입했다. 이런 정부정책에 대응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New Deal) 정책을 통해 대기업의 임금과 고용에 규제를 가했고 실직자들에게 실업수당을 제공했다. 부실기업에 보조금, 가격보조, 진입장벽 정책을 통해 보호막을 쳐 줬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와, 그에 따른 개인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침해로 인식되었다.

“민주 시민에게 필요한 자유와 독립심을 발휘하기 위해 재산권은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중앙집권화 된 정부가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것은 자유와 재산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이는 파시즘이나 사회주의 정부로 향하는 첫 걸음이다”. 이러한 논리 하에 보수주의 운동은 사회 각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발흥했다.

미래한국 레이건

미국은 진보세력이 맹위를 떨치자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보수 성향의 연구소와 재단을 설립하여 정책개발, 전문가 양성, 미디어 홍보 등을 통해 보수정권인 레이건 정권을 탄생시켰다. ⓒ 미래한국

1934년 보수주의 성향의 정치가들은 뉴딜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미국자유연맹’(American Liberty League)을 결성했다. 보수주의 성향의 민주당 의원 존 데이비스가 이 조직을 이끌었고, 듀퐁 등 여러 기업이 이를 후원했다.

1936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알프 랜든도 뉴딜 정책을 비난했다. 중소기업 사용자 이익집단인 전국제조업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은 기업가들을 독려하여 노동조합 반대 운동을 전개하고 사용자의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뉴딜 정책 반대 운동은 보수적 지식인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계획경제 반대론자인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루드비히 폰 미제스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그 선봉장이었다.

기업가인 윌리엄 볼커는 그의 이름을 딴 기금을 마련하여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학술적으로 지원했다. 또 지식인들과 기업가의 모임인 몽 페르랭 협회를 조직하여 후원했다.

이 모임은 계획경제에 반대하여 자유시장 원리를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일군의 경제인들은 자유시장 경제교육을 위해 ‘경제교육을 위한 자유지상주의회’(Libertarian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를 결성하고 지원했다. 이곳에서는 보수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월간지 ‘자유인’(The Freeman)을 발행했다.

이처럼 보수주의 운동은 정치권뿐 아니라 재계, 학계, 언론계를 망라한 광범위한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보다 정교한 이론적 개발이 가능했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수주의 주장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홍보 노력도 강화했다. 따라서 보다 효율적으로 보수주의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적극적인 언론 홍보 활동 전개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노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적극적인 언론 홍보활동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전개되었다. 언론인 윌리엄 버클리는 1950년대 중반 보수주의 잡지인 ‘내셔널 리뷰’(National Review)를 발간하여 미국이 국제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의 도발과 뉴딜 정책을 국민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다. “진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공산주의와의 평화공존 정책과 보편적 복지정책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적 가치관을 해하고, 국가의존적인 무책임한 국민들을 양성한다”.

윌리엄 버클리는 ‘내셔널 리뷰’ 잡지와 그 밖의 언론 기고문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피력했다. 또 그는 1966년부터 1999년까지 텔레비전에서 보수주의 시사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았다. 버클리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수주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즉, 미국 사회 각계의 보수주의자들은 적극적인 저술활동, 연구활동을 하고, 보수언론계는 이들의 목소리를 열심히 홍보함으로써 미국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기업 후원으로 보수적 연구소 대대적으로 설립 

미국의 보수주의적 정치가, 지식인, 언론인들의 노력은 풀뿌리 보수주의 운동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대 말부터 수많은 보수주의 시민단체가 등장했다.

대표적인 단체들을 몇 개 살펴보자. 공화당 대통령 후보 골드워터가 1964년 대선에서 낙선한 후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패배를 교훈으로 삼고 진보세력과 맞설 수 있는 최선의 조직과 기구를 창안했다. 진보세력 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주의를 위한 전국대학생회’(Intercollegiate Society of Individualist), ‘자유를 위한 미국청년회’(Young Americans for Freedom)를 창설하여 보수주의 가치관을 젊은이들에게 전수했다. 이 단체 출신의 젊은이들이 향후 미국 보수주의 세력의 주축이 되었다.

미래한국 해리티지 홈피

헤리티지 재단의 홈페이지. 미국은 이러한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들이 보수적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실행할 전문가를 양성하여 보수정권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 미래한국

진보세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에 대응하여 보수적 연구소인 미국기업연구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후버연구소(Hoover Institution),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 등이 설립되었다.

이러한 연구소는 정책개발, 전문가 양성, 미디어 홍보, 정치적 로비 활동에 주력했다. 이들의 뒤에는 제너럴 모터스, 유에스 철강, 모빌 정유 등의 기업들이 있었다. 이러한 보수 기업들은 각종 연구소와 단체를 후원함으로써 진보적인 포드 재단(Ford Foundation)에 대응하는 존 올린 재단(John Olin Foundation)을 만들었다

미국기업연구소 관계자는 닉슨 대통령 정부에 참여했고, 이 연구소는 기업체뿐만 아니라 올린 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진보적인 ‘뉴욕 타임스’에 대응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은 보수주의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대선 패배를 극복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경주했다. 이는 1980년대 공화당 후보 레이건 대통령의 당선과 이후 보수세력 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대한민국 보수가 가야할 길

이러한 미국 보수주의의 전략은 한국 정치에도 하나의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보수주의 정치를 통해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들로 하여금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동조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정당, 기업체, 학계, 언론계가 연계하여 정책 개발, 전문가 양성, 국민홍보에 매진하는 전략을 폈다. 이를 통해 지지기반을 마련함은 물론, 집권 후의 국정운영능력도 향상시킬 수 있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보수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 신경을 쓸 뿐, 보수주의적 가치 그 자체를 홍보할 의지가 없다. ‘보수’라는 이름이 진보진영에 의해 오명을 뒤집어쓰고, 시민들로 하여금 공격당하도록 만든 데에 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다.

동일한 이념과 사상을 공유하는 집단들을 양성하고, 이들과의 공통된 노력을 통해 이론, 정책 개발에 힘쓰고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즉 정당의 정책개발 노력을 강화하고, 보다 정교한 이론 개발을 위한 재정적 지원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한 정책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홍보하여 사회에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한국 정치 상황이 지역주의를 악용하는 감정 대립의 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단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수주의적 철학을 버리고, 포퓰리즘의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 보수 정당은 정치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국가의 미래를 망친다.

※본 글은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링크)” <미래한국/양진석>를 재가공,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