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는 한국 정치의 희생양이다.

밖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기도 한다.

상습적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참고 버티는 피해자가 그들이다. 폭력을 인내하는 것을 뜨거운 사랑의 징표인양 “내가 더 희생하고 사랑해야지.”라며 다짐한다.

진보진영을 향한 2030 세대의 뜨거운 사랑과 버림 받기의 무한 반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거 폭력이라는 주제로 가해자의 논리와 피해자의 심리를 심층적으로 분석해 봤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님(진보진영)이 나(2030)를 배신할 리가 없어!”라고 믿는 분에게는 좌파기득권과 88만원세대를 추천한다.

많은 청년들이 지지운동도 하고 표도 주는 등 선거 때마다 특정 정당 또는 특정 후보에 열과 성을 다해서 헌신했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마음도 주고 사랑도 줬지만”, 선거만 끝나면 버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선거만 끝나면 입을 싹 닦는 정치권 앞에서 미안해하고, 때로는 선거 패배의 책임으로 거론되어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더 많은 표를 주려고 애쓴다.

묘한 심리 상태다.

데이트 폭력과 달리 가해자인 진보진영이 ‘(가해자인) 나를 떠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피해자를 협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선거법 위반이다. 이런 경우를 자발적 노예상태라고 한다. 심리가 문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이를 가장 잘 설명한다.

수적으로 소수인 지배계급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고 피지배계급을 지배하는 비법이다.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의 입장을 알아서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생각을 공유하는 이념의 공동체, 신념의 동지여서 가능한 일이다.

2030의 반복적인 진보지지도 이 틀에서 설명될 수 있다.

가해자의 거짓말을 자신의 논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패배의 변명과 핑계 찾기다.

 

거짓말 1 – 너 때문에 내가 맨날 망한다니까!!!

지가 잘못해서 지고 나서 꼭 핑계를 지지자인 너 때문에 졌다고 한다. 폭력범들의 상투적 수법이다. 지가 못나서 밖에서 얻어 터지고 다니면서, 집에 있던 여자 친구 핑계를 댄다. 때리고 나서도 네가 원래 맞을 짓을 골라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대선에서의 패배다. 물론 2012년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2030 너네들이 투표하러 가지 않아서 내가 또 보수꼴통한테 깨진 거야!!!

사실이 아니다. 19세까지 포함하여 2012년 대선에서의 2030 투표율은 대략 70%를 약간 밑도는 정도다. 전체투표율 75.8%에 비해 6% 정도 낮다. 2030의 투표율이 낮아서 문재인이 패배하였다니, 도대체 투표율이 어느 정도 높아져야 문재인이 이길 수 있었을까?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의 실제 득표율 차이는 51.6對48, 3.6%, 표수로는 108만 표 차이였다. 대략 계산해도 2030 투표율이 최소 98% 이상이 되었어야 승부가 바뀌었을 것이다. 문재인이 이기기 어려운 선거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았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선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야! 너네들이 98%만 투표했어도 이긴 게임 아니야? 다른 어려운 것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100% 투표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단지 98%만 해달고 했는 데, 그것도 못해서 또 보수 꼴통들한테 정권을 넘겨줘?

2030 투표율이 5060과 같은 80%가 되면 40만 표, 90%가 되면 80만 표를 더 얻는다. 108만 표 진 게임에서 2030의 90% 투표율로도 승부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30 투표율이 낮아서 졌다는 주장은 투표율 98% 안했다고 뭐라고 하는 억지주장에 불과하다

 

거짓말 2 – 너는 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야!!!

데이트 폭행범들과 마초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실제로는 지가 별 볼일 없는 놈인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저보다 훨씬 나은 여자친구를 개무시한다.

너는 어디 나가면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아. 그나마 인간성 좋은 나나 되니까 너를 데리고 다니는 거야. 고마운 줄이나 알라고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들은 “2030은 정치적 영향력이 약하지. 숫자도 얼마 안되고, 그나마 투표율도 낮고…”를 입에 달고 다닌다. 투표율 괴담이 대표적이다. 무슨 여름마다 반복되는 납량특집도 아니고 선거만 하면 맨날 지는 진보진영이 젊은 층의 투표율이 낮아서 졌다는 얘기를 고장난 녹음기가 반복해서 돌아가듯 틀어댄다.

지난 대선으로 가보자. 전체 투표율 75%, 2030 투표율 70%, 2030이 전체 평균에 비해 5% 낮았다. 일단 투표율이 낮았던 것은 맞다.

그렇다고 뭐?

전체 유권자는 4천만,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총수는 3천만이었다. 2030 유권자 1천 5백만, 투표자 1천만. 2030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8%, 투표율이 평균보다는 낮아서 투표자 비중은 35%!

지난 대선 문재인 후보가 얻은 총 득표수 1,469만표 중 절반에 육박하는 670만표가 2030에서 나왔다. 반면 호남에서 얻은 표는 284백만 표로, 전체의 20%에 못미친다. 새정연이 선거때마다 목을 매는 호남보다도 2030은 두 배 이상의 기여를 한 것이다.

투표율이 낮아도 여전히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3천만명 중 1천만명, 즉 세 명 중 한 명이 2030 유권자다. 투표율이 낮다는 것 하고 이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것 하고는 전혀 다른 말이다. 세 명 중 한 명도 그렇지만, 이 1천만 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거대한 영향력을 의미한다. 전국에 국회의원 지역구 243개, 투표 참여자만 1천만 명인 2030을 균등하게 배분하면, 하나의 지역구 당 대략 4만 명이 넘는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030 투표율은 더 떨어진다. 하지만 투표율이 절반으로 준다고 해도 지역구 당 2만명이 넘는다. 이들은 특히 농촌 소도시보다는 수도권 등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다. 수도권 대도시의 경우 승패는 몇 천표 이내에서 갈린다. 단 3표로 국회의원 당락이 갈린 적도 있다.

극단적인 영호남을 제외한 전국 모든 선거구에서
2030의 표심이 승패를 가른다.

진보진영을 지지하는 2030의 영향력이 적어서도 아니고, 이들의 투표율이 낮아서도 아니라면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의 거듭된 패배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진보진영이 못나서 진 것이고,
2030이 아니라 40代 이상에서,
그것도 보수 꼴똥들이 아니라,
2002년에는 진보진영에게 투표한,
과거 지지자의 이탈 때문에 진 것이다.

여기서는 번거롭더라도 표를 그려야 한다. 결국 같은 말인데, 단어만 바꾸어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꼬리 잡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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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의 16代 대선과 지난 2012년의 18代 대선 사이에 발생한 진보진영 후보의 득표율 변화다. 2002년 진보진영은 노무현, 권영길 두 명의 후보가 나서 전체적으로 53%를 득표했다. 18代 대선에서는 보수진영의 박근혜 후보와 양자대결의 진검승부를 펼친 끝에 문재인 후보가 패배한다. 이 표는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을 연령대별로 정리한 것이다.

진영간 득표율 변화를 보기 위해 16代 대선 권영길 후보가 얻은 표를 진보진영 득표율로 포함시켰는데, 이를 빼도 전체적인 논의에는 변화가 없다. 2002년에 비해 진보진영 득표율은 53%에서 48%로 5% 감소한다. 진보진영이 줄어든 만큼, 보수진영 득표율은 상승한다.

위 표를 보면 2002년 20代였던 사람들은 2012년에 30代가 된다. 이들 연령대에서만 2002년과 2012년 10년 사이에 68%에서 67%로 진보진영 지지율이 변화가 없다. 그러나 다른 모든 연령대는 대략 평균 12% 정도의 진보진영 지지율 감소를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앞섰던 연령층은 20代, 30代, 40代, 이 세 연령층이다. 2012년 20代는 2002년 대선에서는 10代여서 투표권이 없었다. 당시 20代였던 30代는 진보진영에 대한 충성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2002년에는 30代여서 2012년에 40대代가 된 소위 386들에서는 문재인이 앞서기는 하지만 그 비율이 이전의 66%에서 56%로 크게 감소한다.

그 위 연령대로 가도 마찬가지다. 대략 2002년에 진보진영 후보에게 투표했던 유권자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박근혜 지지로 돌아선다. 이래서 문재인이 진 것이다.

20代의 보수화 때문에 진 것도 아니고,
30代의 충성심이 약해져서 진 것이 아니다.
막상 충성심이 약해진 것은 소위 왕년의 386과 그 윗 세대들이다.
그래서 문재인이 진 것이다.
제발!!! 청년 탓을 하고, 선거를 논하려면 표라도 보고 얘기해라!!!

2030의 투표율이 낮아서 진 것도 아니고, 2030의 보수화나 충성심이 약해져서 진 것이 아니다. 그러면 “야 너 때문에 맨날 지는 거야!”라거나 “너는 별 것도 아닌데 나나 되니까 데리고 다니는 거야!” 하는 상습 폭행범의 주장은, 한 마디로 “개소리”다.

그러면 이제 상습범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진보진영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당신한테 돌아올까? 순진한 바람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항상 당하고 사는 거다. 상습범들은 폭행의 이유가 사라져도 또 다른 이유를 찾는다. 지난 번에는 다리도 안 이쁜 것이 치마 입었다고 때리더니, 이번에는 숏다리 주제에 바지 입었다고 때리는 격이다.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이 찾아낸 또 다른 변명거리가 유권자의 고령화와 이로 인한 보수화다. 그래서 또 2030 너를 버려야겠다는 거다.

“내가 잘되면 너에게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줘. 내가 저 나이먹은 마흔 살도 더 먹은 보수꼴통 과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네가 더 잘 않잖아?”

“좋아서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은 과부가 돈이 많잖아. 내가 결혼해서 그 돈을 챙겨서 너에게 돌아 올테니 그때까지만 참고 기다려 줄수 있지?”

이것이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이 새로 찾아낸 2030을 버려야만 하는 핑계거리다. 2030 폄하라는 본질은 같지만 상호도 바꾸고 네온사인도 새로 달고 신장개업한 최신 버전이다.

 

최신 버전 거짓말. 나이 먹은 유권자의 보수화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개뿔이다.”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유권자가 보수화된다고? 일견 그럴듯 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선거이론을 조금만 아는 사람들은 이런 헛소리 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어디서 주어 들은 말로 시골서 막 올라온 어리숙한 사람들이나 사기쳐서 먹고 사는 서울역 근처 선무당들이나 할 소리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가면 개나리 봇짐 하나 달랑 들고 봄 바람에 서울로 올라 온 어리숙한 아가씨들의 노잣돈이 털릴 것이므로 다음 두 가지는 남기고 가야겠다.

첫째, 기존의 선거연구 결과다. 미국과 유럽의 선거연구에서 유권자들이 나이를 먹으면 보수정당 지지로 돌아선다고 보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보수화 가설보다는 나이가 먹을수록 원래 지지하던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더욱 강해진다는 공고화 가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단적인 증거가 영호남 유권자들이다. 양 지역의 고연령층에서 자기 정당에 대한 지지가 더욱 강력하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먹으면 보수정당 지지로 선회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은 나이가 먹으면서 발생하는 여타 사회, 문화적 영역에서의 보수화를 정치적 보수화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호남 사람이 나이가 먹어 보수화된다고 새누리당 지지로 가지 않는다.

둘째, 당시의 정치상황과 연관된 특정 시점의 보수화와 고령화로 인한 보수화를 혼동하면 안된다. 2002년 대선에서 60대 이상의 진보진영 지지율은 40%였다. 2012년에는 이 연령대에서의 진보지지율이 28%로 급감한다. 2002년에도 60대 이상이었던 이들은 이미 충분히 나이가 먹은 상태였다. 그때는 나이가 적어서 진보진영 지지율이 40%나 나왔다는 것인가? 고령화 때문이 아니라 2002년 이후의 정치적 경험이 이들을 보수진영 지지로 바꾼 것이다.

이 재미도 없는 “고령화 가설”이라는 선거이론을 길게 논의한 이유는 2012년 대선 이후 진보진영 2030 버리기를 정당화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이 고령화 가설이기 때문이다. 별 이론적 근거도 없고 실증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한국 정치판에서 특히 진보진영에서 이 이론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있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다른 데로 떠 넘기는 데 이 보다 더 좋은 이론이 없어서다.

“내 탓이 아니다. 나이 먹어가는 유권자 탓이다.”

진보진영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참 편하겠다. 모두가 유권자 탓이다. 자기 잘못은 어디에도 없다.

“젊은 놈들이 투표하지 않아서 우리가 지는 것이야!” 하다가 안되면 이제 늙은 유권자를 탓하면 되고… 이 처럼 편한 세상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늙은 유권자 탓을 하다 안되면 운동장이 기울어졌다고 운동장 탓을 하면 되고. 무슨 노래 가사같이 운율도 착착 감긴다.

그 핑계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
선거승리에 목을 매는 정치인들의
2030 버리기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아무리 고상한 명분을 앞세워도 정치인들의 지상과제는 다음 선거에서의 승리다. 미국의 정치학자 Mayhew는 국회의원을 “a single-minded reelection seeker”라고 규정하였다. “오로지 재선, 즉 다음 선거에서의 당선에만 정신이 팔린 자들”이라는 의미인데, 현역이 아닌 정치 지망생들은 물론 소위 대권주자들도 마찬가지다.

표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그것도 대선의 경우 투표 참여자만 천만 명 이상, 국회의원 선거의 경우에는 영호남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선거구에서 당락을 좌우할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2030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말 그대로 미스테리다. 그것도 여당이 무시하면 야당이 챙기고, 야당이 무시하면 여당이라도 챙기는 정치판에서 둘 다 약속이나 한듯 소위 “쌍으로 개무시”를 한다.

2030 버리기를 자행하는 정치권의 인식과 판단이 모두 이 거짓말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은 아니다. 양 진영 공히 신봉하는 이론이 하나 더 있다. 카사노바의 “잡은 물고기” 이론이다. 반전이다. 이 이론이 맞다면 이는 단순한 오해가 아니다. 더 심하게 말하면 2030이 버림 받는 이유, 맞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폭행범의 일방 과실이 아니라 피해자가 그런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쌍방과실이다.

카사노바의 “잡은 물고기 이론”은 최근에 붙은 이름이다. 70, 80년대에는 “묵은자 이론”, 또는 “굳은자 이론”이라고 불렸다. 고스톱을 쳐본 사람들은 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화투판에서 묵은자가 무엇이고 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만 알면, 설명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잡은 물고기 이론이 이해하기 쉽다면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한다. 묵은자가 편하다면 당신은 그냥 아저씨거나 아저씨의 여성 친구다.

진보의 “2030 버리기”는 이들을 화투판의 묵은자로 보기 때문이다.
세련되게는 집토끼론이라고도 불린다.
화투도 안쳐봤고, 집토끼론도 모르는 20대라고? 그래도 상관없다.
“잡은 고기에게는 떡밥을 주지 않는다.”는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진보진영은 2030을 자신들의 집토끼, 묵은자, 또는 잡은 물고기로 본다. 화투판에서 다른 먹을 것이 있는데, 묵은자를 먼저 먹는 놈은 바보다. 잡은 고기한테 떡밥을 주는 놈도 마찬가지다. 진보진영이 2030의 버리기, 더 심하게는 죽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버리고 버려도 어디가지 않고 항상 내 옆에 바싹 달라 붙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번씩 립서비스만 해준다면 충분하다.

보수진영의 “2030 생까기”는 왜?사실 이것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진보가 믿는 것을 보수도 믿기 때문이다. 단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정반대로 말이다. 맨날 싸우기만 하는 이들이 이럴 때는 하나의 믿음으로 일치단결한다. 역시 적대적 공생관계가 분명하고 믿음의 동지들이다. 여전히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아래의 질문을 보고 당신이 답을 찾으면 된다. 보고도 모르겠다고? 당신도 한국 정치인들과 같은 아몰랑 부족에 속한 것이 분명하다.

“남이 이미 잡은 고기에게 당신의 떡밥을 주나?”
“옆짚 토끼에게 당신 집 사료를 먹이나?”
“남은 한 장을 들고 있지 않다면, 묵은자는 당신 것이 아니다.”

결국 진보진영은 2030세대, 청년들을 이미 잡은 물고기로 생각해 더 이상 밥을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거짓말을 하고, 책임을 돌려도 제대로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계속 충성을 바치는 잡은 물고기에게 무슨 밥을 주겠는가. 보수진영 입장에서 2030세대, 청년들은 남의 집 물고기다. 뭘 해주려고 해도 옆집(진보진영)에서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절대 뛰쳐 나오지 않는 잡힌 물고기인데, 거기에 자기집 사료를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된다. 진보진영에게 잡은 물고기 취급을 당하는 것도, 보수진영에게 남의 집 물고기 취급을 당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2030세대, 청년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요구를 정치권에 주장 할 자격이 있다. 자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세력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계속 맞기만 하면서 가해자 편을 드는 선거폭력의 희생자 노릇을 자처한다면, 누구도 청년들의 미래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