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을 삼킨 정당,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_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니체의 명저 <선악의 피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갑자기 웬 철학 타령이냐고? 투쟁을 위해 열심히 단결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의 최근 행보를 바라보며 니체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니체는 강자의 힘을 악이라고 생각하는 유치한 선악개념을 “노예의 도덕”이라며 비웃었다. 기득권층은 악하다고 생각하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것이 아닌가?

오공육공 시절을 거쳐 문민정부에 이르기까지, 새정치의 선배세대들이 기득권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며 민주주의를 꽃피워내는 것에 이바지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만 이들의 후배세대가 이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다. 아직도 ‘기득권 층인 보수우익은 민주주의를 좀먹는 악이다’라는 시대착오적인 사고 속에 갇혀있다.

 

유권자들의 뜻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각 정당들은 지지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적 이익집단이다. 따라서 지지자들의 공통된 의지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철학을 보여줄 때, 이런 뜻을 공유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 법이다. 하다못해 반장선거에 나온 초등학생도 본인이 반을 위해 어떻게 봉사하겠다는 생각쯤은 가지고 있다.

현 제1야당 새정치는 새누리와 정치철학적 대립각을 세우는 정당이다. 따라서 새정치의 지지자들이 이 정당에게 원했던 것은, 우익과 보수로 대변되는 (요즘 정책은 딱히 그렇지도 않다만) 새누리가 보여주지 못하는 좌파적, 진보적 비전의 제시였다.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 내에서 정부의 역할 확대를 강조하는 좌파.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리버럴”. 이것이 새정치가 보여줬어야 할 정치철학의 기본 스탠스다. 체제전복을 주장하는 좌익 사회주의가 아니라.

새정치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새누리를 누르고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에만 혈안이 되어 정당의 철학적 중심을 잃어버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의 좌파가 아니라, 체제전복을 외치는 좌익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지난 대선의 ‘야권연대’였다. 투쟁의 대상인 새누리를 잡기 위해 NL계열 종북세력들까지 같은 진보노선이랍시고 죄다 삼켜버렸다. 스스로 ‘종북 숙주’라는 이름의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너무 왼쪽으로 치우친 탓에 새정치는 더 이상 합리적 진보나 중도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야권연대

지난 대선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헌정 사상 최초의 포괄적 야권연대를 형성했다. 보수 기득권에 맞서기 위한 취지였다. 통합진보당은 종북 정당으로써 2014년 강제해산 되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새정치가 극좌로 치우치며 만들어진 불균형

한편 새누리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진보와 보수, 즉 새정치와 새누리가 양쪽의 역할에 충실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새정치가 극좌로 치우치니 새누리는 자연스레 진보의 영역에까지 들어오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합리적 좌파나, 중립여론까지 포섭하게 되면서 새누리의 표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치적 적수가 사라진 새누리가 긴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무리 해이해져도 새정치는 새누리를 이길 수 없다.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종북세력보다야 차라리 썩은 정치인이 낫다고 생각하니까. 국민은 ‘차악’인 새누리에 표를 줄 수 밖에 없다.

새정치는 리정희 동무가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이 되었을 때 이러한 사실을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중대한 깨달음을 아직까지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반성은커녕 ‘그들만의 투쟁’에만 혈안이다. 2.8 전당대회로 당대표가 된 문재인 대표가 가장 먼저 한 말이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이었다. 이는 빈 말이 아니었다. 며칠 전 총리후보자 임명동의안 투표 결과, 124명의 새정치민주연합 참석의원 전원은 단 한 표의 이탈도 없이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전 인원 단결에 성공했다며 이걸 또 잘했다고 칭찬해 달랜다. 후보자의 총리 자질 여부를 놓고 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여당을 공격하고자 당파주의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한 것을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 떠벌리고 있다.

 

이제는 제자리로 돌아갈 때

지역감정과 진영논리로 엉망진창이 된 대한민국 정계에서 제대로 된 정치담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각 정당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왼쪽 저 끝에 가 있는 새정치가 원래 자리로 돌아와 합리적 진보의 중심이 되어줄 때, 왼쪽으로 영역을 넓힌 새누리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일관된 보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렇게 양쪽 축이 균형을 이룰 때, 서로를 견제하며 사회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는 민주주의의 동력이 나온다.

이미 사반세기 전 민주주의를 이룩한 우리나라에 투쟁해야 할 독재자는 더 이상 없다. 제1야당이라는 정당이 이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서는 곤란하다. 괴물로 착각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노망난 돈키호테처럼, 결국 광기의 끝으로 치닫다가 스스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새정치는 이제 그만 선과 악이라는 “노예 도덕”의 사고에서 벗어나, 진보의 대표 정당으로써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고, 진짜 정치를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 새누리와 싸우기 위해 삼킨 ‘종북’이라는 괴물을 더 늦기 전에 뱉어내고,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돌이켜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