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의 독재자들

학자들은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하려면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 수준의 경제 여건과 탄탄한 중산층의 형성이 필수 요건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1인당 국민소득 6000달러,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된 시기는 전두환 정부 말기였다. 바로 그 시기에 6·29 선언과, 6공화국 헌법이 제정되면서 명실상부한 민주화 시대가 열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제는 경제 여건과 중산층도 형성되었으니 민주 헌법만 제정하면 민주주의는 완벽하게 작동할 것으로 우리는 믿었다. 그래서 1987년 10월 29일 여야 합의 하에 6공 헌법을 제정했다.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권위주의 정부에 넌더리가 난 정치권과 국민들은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의 국회 해산권을 폐지하는 등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 대신 국회에는 대통령 탄핵권을 부여하는 등 입법부의 권한을 대대적으로 강화했다. 이것이 현행 6공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때부터 대통령과 국회 간에 상생(相生), 화합, 소통을 통한 바람직한 민주주의 모델이 작동할 것으로 기대가 컸다. 국회의 입법 권력이 강화된 만큼 국회가 국정의 동반자라는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의 국가 통치에 협조해야만 원활한 국정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른 법이다. 권력의 중심이 청와대에서 국회로 옮겨가면서 골치 아픈 문제들이 파생되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싶어도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관련법 제정에 협조해주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국회로의 권력 집중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최근에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탱크처럼 ‘제왕적 국회 독재’라는 폭주가 시작되었다.

 

대통령을 옭죄는 무소불위의 국회 권력

현행 헌법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제약하고 나섰다. 인사청문회가 최초로 도입된 것은 16대 국회 때인 2000년 6월이다.

인사청문회법 (미래한국)

▲ 현행 헌법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공무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국회는 인사청문회법이라는 희한한 법을 만들어 대통령의 공무원 임명권을 제약하고 나섰다. 헌법상 근거도 없는 국회 독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진은 지난 7월 3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는 이병기 비서실장(왼쪽 두 번째).

이때는 헌법상 대통령 임명권에 대하여 국회 동의를 얻도록 규정되어 있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관 13인 및 국회가 선출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3인에 대하여 청문회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막상 시행해 보니 이것이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권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국회는 슬그머니 국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및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6인과 중앙선관위 위원 6인, 국가정보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합동참모의장,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국은행 총재, KBS 이사장에 이어 행정 각 부의 장관에 이르기까지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하는 것으로 고쳐버렸다.

그 결과 국회의 협조 없이는 대통령이 사람 하나 쓰기 어려운 난국에 처했다. 국회법 단 한 줄을 고쳐 대통령 인사권에 족쇄를 채워버린 것이다. 이것은 헌법상 근거도 없는 국회 독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밖에도 국회 독재의 결과로 탄생된 위헌 소지가 있거나 소비적이며 낭비적인 부문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망국적인 포퓰리즘적 법률이 부지기수다.

박통 거부권 (미래한국)

▲ 지난 6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 발언을 하고 있다. 이로써 대통령과 국회의 대결이 표면화되고 있다.

국회 독재의 횡포에 휘둘리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라는 칼을 뽑아들었다. 특히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향한 날선 공격에 국회와 언론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봉건시대 여왕’, ‘악몽과 같은 독재정권’, ‘공안통치’ 등의 용어를 동원해 박 대통령을 공격했고, 추미애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대국민 쿠데타’이자 ‘실질적인 국회 해산 요구’”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경제는 6년 만에 최악, 권력 싸움에만 골몰하는 청(靑)·여당”(7월 1일), “청(靑)·비박, ‘나라 어려운데 무슨 권력 놀음이냐’ 소리 안 들리나”(6월 30일), “막장으로 치닫는 여(與) 내분, ‘실패한 정권’ 작정했나”(6월 29일) 등 연일 청와대와 새누리당을 싸잡아 비판하는 양비론을 펼쳤다.

대통령과 국회 권력의 충돌은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위험하다. 과연 국민들은 누구 편을 들어줄까를 타산하기에 앞서 이것은 민주주의의 심각한 위기다. 국회 독재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존재는 ‘대통령’과 여론을 일으키는 언론이다.

그런데 두 가지 다 하자가 발생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카드는 국회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가 찬성하여 재의결을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뉴미디어의 등장과 온라인의 폭발, 매체 다변화로 인해 경영 압박을 받으면서 ‘존재의 위기감’에 처한 언론의 최근 행보는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한’ 선동꾼으로 전락했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야당은 대통령이 꼭 처리해달라고 당부하는 민생 법안만을 골라서 훼방놓고 있다”고 질타했다. 국회는 사사건건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 일을 못하도록 옭아매고는 ‘무능 리더십’ 프레임을 뒤집어 씌워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대화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에 숨은 뜻은?

국회는 대통령 탄핵권과 개헌이라는 카드를 손에 주고 있다. 이미 국회는 개헌에 대한 속내를 여러 차례 드러낸 바 있다. 국회에서 개헌 드라이브가 걸리면 ‘대통령제의 무력화’로 향할 것이 분명하다. 국회 권력자들은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대통령제를 유지해봤자 덕 될 것이 없다고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현재 거론되는 차기 대선 후보의 면면은 여야를 막론하고 과거의 정치 지도자들과 비교하면 중량감이나 존재감이 확연히 비교된다. 누구도 국민들의 성에 차지 않는 동병상련(同病相憐) 입장이다 보니 탈출구는 내각제가 제격인데, ‘내각제’는 2공화국의 트라우마가 떠오른다. 고민하던 개헌론자들은 이원집정제라는 묘수를 꺼내들었다. 대통령제에 익숙해 있는 국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내각제에 당의를 입힌 것이 의미도 모호한 ‘분권형 대통령제’다.

개헌시 비교 (연합뉴스)

ⓒ 연합뉴스

 

대통령이 시퍼렇게 존재하고 있어도 거리낌 없이 입법 독재를 자행하는 국회이니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 국방 안보권만을 가진 허수아비 대통령과 실세 총리, 그 총리의 선출권을 가진 국회의 야합과 이전투구와 멱살잡이…. 그다지 상상력이 풍부하지 않아도 공중부양 국회, 해머 국회, 최루탄 국회 등 익숙한 장면들이 떠오른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이 이뤄지면 ‘슈퍼 갑(甲)질’의 최고 정점인 국회의원들의, 국회의원을 위한, 국회의원의 세상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따라서 국회는 국민들만 설득할 자신이 있다는 타산이 서면 박근혜 대통령의 동의 혹은 임기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개헌을 추진할 수도 있다.

국회의 입법 리더십이 대통령제의 리더십보다 더 뛰어나고 국리민복에 도움이 된다면 내각제든 분권형이든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작금의 국회법 개정안, 공무원 연금법 개악(改惡), 국회선진화법, 위헌 시비가 불거진 김영란법, 통과를 앞두고 있는 사회적 경제기본법 등등의 면면을 보면 국회 리더십의 본질이 포퓰리즘과 친(親)사회주의 지향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7월 17일은 헌법이 제정된 제헌절이다. 헌법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최고권력자 대통령을 국회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민심은 바보가 아니다. “리더십이 꽝인 불통의 여왕적 대통령도 문제지만, 포퓰리즘의 극치를 달리는 제왕적 국회 독재는 더더욱 문제”라고 믿는 국민이 다수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임을 보여줄 때다.

 

본 글은 “헌법과 대한민국, 그리고 국회 독재” <미래한국/김용삼>를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