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집착하는 황금시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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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거에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영화 ‘미드나잇인파리’의 등장인물인 애드리아나의 대사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다. 남자주인공인 ‘길’은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를 동경한다. 그는 파리에서 우연히 시간여행을 하게 되고, 자신이 원하던 과거의 20세기 초 파리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19세기 말을 동경하는 애드리아나를 만난다. 애드리아나 역시 우연한 기회를 통해 19세기 말로 가게 된다. 그녀는 정작 그곳에서 19세기 초를 꿈꾸는 사람들을 만난다. 과거에 대한 동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거가 좋았다는 착각을 한다. “예전에는 대학만 나와도 직장을 골라갔다던데!” 라고 말하는 청년들의 푸념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진학률이 30%도 되지 않던 시대의 이야기다. 당시엔 취직시즌이 오면 가난한 청년들은 재정보증인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종종 평균적 삶의 모습을 상회한다. 마치 과거는 지금처럼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행복한 사회였다는 환상이다.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점점 불평등해지고 있다는 루소적 역사관이 이를 대표한다. 이 역사관을 좇다보면 원시사회가 ‘순수’하다는 인식에 다다른다. SBS는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을 통해 이같은 인식을 표현했다.

고결한_야만인
과거가 더 좋은 사회냐는 논쟁은 구조주의자 레비스트로스와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의 연구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브라질 원시림의 원시부족을 1년 동안 관찰하며 연구 했고, 그 결과를 ‘슬픈열대’란 저작으로 남겼다. 그는 원시사회의 삶을 욕심 부리지 않고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평화롭고 ‘고결한’ 것으로 묘사했다. 문명과 대비되는 원시부족의 순수성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인류학자인 나폴리언 섀그넌은 같은 지역의 부족들을 두고 그들의 언어를 습득해 35년간 심층연구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가 내놓은 결과는 레비스트로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고결한 야만인’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35년간 직접 관찰한 야노마뫼족의 삶은 만성적인 폭력 그 자체였다. 그들은 다른 부족의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그들의 일상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과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레비스트로스가 심은 원시공동체에 대한 환상을 뿌리 뽑아 버렸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과거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예전엔 가난했지만 인정은 넘쳤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 속담에는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맹자는 “무항산무항심 [無恒産無恒心]” 이라고 말했다.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지킬 수 없단 뜻이다. 벤저민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경제성장과 미래’에서 “경제성장이 인간을 더 도덕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이를 입증했다. 먹고 살 만 해져야 인심도 생기고 도덕심도 발휘한다는 내용이다. 과거 소규모 공동체에서 이뤄지던 ‘인심’은 이제 다수가 세금을 내고 다수가 혜택을 받는 구조로 제도화됐다. 이를 두고 인심이 각박해졌으니 과거의 순수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면 이는 눈 뜬 장님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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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보다 현재 빈부격차가 심해졌다는 주장도 빠지지 않는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일명 ‘마태효과’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추측’과 실제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20세기 들어 절대빈곤자(하루 1.2달러 이하로 생활)는 급감했다. 인도와 중국의 수억 명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굶어죽는 아이들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프리스턴대 앵거스 디턴 교수는 그의 저서 ‘위대한 탈출’에서 “경제성장 덕에 인류는 비위생적이고 가난한 환경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위대한 탈출’을 해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사회 환경으로 인해 굶어죽는 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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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과거가 좋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카드는 ‘폭력성’이다. 세계대전, 핵무기, 학교 총격, 테러, 등을 근거로 현대가 더 폭력적인 사회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주장은 근대성이 인간을 편리하게 했을지라도 인간을 더 폭력적으로 만들었다는, 근대성 자체에 대한 혐오를 포함한다. 스티븐 핑거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우리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수많은 통계를 분석해 인류가 점점 폭력성을 줄여가고 있음을 입증해냈다. 창과 방패로 이뤄졌던 전쟁의 사망률은 현대 세계 대전의 사망률보다 높았다. 중세시대의 살해위험은 현 시대에 30배에 달했다. 추측과 실제 현실은 꽤 다르다. 폭력은 분명히 감소하고 있다.
인간은 문명의 발전을 통해 더 인간다운 삶을 추구해왔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과 투쟁할 필요도, 만성적 폭력에 노출될 이유도 없다. 앵거스 디턴의 말대로 인류는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인간적인 환경으로 ‘위대한 탈출’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낙관적인 미래가 아닌 불행했던 과거와 비교하곤 한다. 과거가 좋았다는 착각이야말로 전형적인 좌익들의 역사관이다. 그들은 이 역사관을 토대로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체제를 부정한다. 소규모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믿고 그것을 지향한다. 그들은 언제나 과거가 황금시대였을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황금시대는 지금 현재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시대는 고단했던 과거가 아닌 낙관적인 미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