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롤러코스터

메르스가 터지고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에 양평을 찾았다. 펜션에서의 가족여행이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소문의 맛집에 가보기 위해 양평을 다시 찾았다. 메르스 사태 일주일이 지났을 때에는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펜션에도, 식당에도, 심지어는 도로에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이 지나니 이제는 도로 입구에서부터 차가 막혔다. 식당은 꽤 규모가 큰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동안 기다려야 자리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가만히 앉아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만 실소가 터져나왔다. 메르스에 의해 격리된 사람들은 줄고 있었지만, 확진자들은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혼잡한 식당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볼 수 없었다. “준전시상황”이니 뭐니 하면서 하루 아침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포장된 메르스의 공포는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주말 화창한 날씨 속에 묻혀버렸다.

의협_연합뉴스

ⓒ 연합뉴스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똑 같은 패턴이다. 이슈가 하나 터지면 언론에서 앞장서서 문제를 부풀린다. 실제로 그 이슈가 중대한 사항인가 아닌가는 중요치 않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노이즈를 만들어 낸다. 이슈의 신선도가 떨어져 대중이 지루해하기 시작하면 금세 다른 이슈를 만들어내서 그리로 갈아탄다. 참으로 소모적이다.

이렇게 이슈를 하나 던져주면 이걸 가지고 편을 나눠 서로 물고 뜯고 난리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반박을 위한 반박의 무한 반복이다. 이런 바닥에서 정신력을 소모하다 보니 이제는 이슈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넘어서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싸움을 만들어내는 정치꾼들은 정작 주목해야 할 문제에는 입을 닫고 있다.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는 ‘먹고 사는 문제들’이 나오면 이쪽 저쪽 할 것 없이 외면하며 은근슬쩍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다.  물타기를 위해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지만 항상 소모적인 ‘개싸움’으로 이어지는 진부한 주제들이 나온다.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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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언제나 뻔하다. 노무현이나 박정희를 죽였다 살리고, 일본이나 미국을 상대로 쉐도우복싱을 한다. 같은 문제를 두고 종북이 싫은 사람들과 종북몰이가 싫은 사람들을 싸우게 한다.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그 어떤 이득도 주지 않는 증오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정치 문제의 본질로부터 돌림으로써 기득권을 유지한다.

이렇게 의미 없는 노이즈들이 쌓여가며 사회의 관심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줄 에너지를 빨아먹는다. ‘해고는 살인’이니 뭐니 배부른 소리하는 좌우 기득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자기네들 밥그릇을 챙길 때, 해고 당할 수 있는 기회라도 달라는 청년세대들은 ‘다 의미 없다’는 식의 정치혐오를 동반한 반쪽짜리 달관을 한다. 한편 진정 관심이 필요한 저소득층은 말이 없다. 생존을 위한 그들의 삶은 목소리를 낼 여유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나라에 이들을 위한 대변자는 없다.

ⓒ 패션좌파

ⓒ 패션좌파

아이러니하게도, 그럭저럭 잘 교육받고, 적당히 먹고 살고 있는 중산층들이 입만 살아서 계급사회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실제로는 얼마 존재하지도 않는, ‘금수저’라는 가상의 계급을 만들어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사는 자신들의 삶들과 비교한다. 그리고 전혀 불쌍하지 않은 자신들의 인생스토리를 신파적으로 주절대며 불쌍한 척 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이 사람들 목소리가 제일 크다보니, 정치담론은 자신을 드라마 속 선한 주인공으로 착각하는 이 사람들 자기연민의 감성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것들로 생산된다.

적당한 이슈로 분노하게 해주고, 계층이니 뭐니 하면서 너도 나도 피해자로 만들고, 가끔 독도니 K-pop이니 하면서 소위 ‘국뽕’으로 쾌감도 선사한다. 결국 메르스도 이런 소모적인 이슈의 하나였다. 메르스 발생 이후 2주간 경험했던 호들갑, 그리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무관심. 이 롤러코스터 같은 이슈 소비는 이제 전 국민이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레저가 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대중적 놀이에 의해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서가 피폐해지고, 경제가 침체되고, 살만한 나라가 마치 지옥처럼 느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극심한 피로감이 바로 ‘헬조선’을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며 이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이 나라에서 살기 싫어지는 건 복지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경제가 어려워서도 아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절망을 파는 미디어, 언제나 ‘최선’보다 ‘최악’을 선호하는 새디스트 국민들, 그 앞에서 쇼를 하는 정치인들 이 삼중주가 이 나라를 답이 없는 지옥처럼 느껴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