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세월호 참사] 이 편지 볼 수 있겠지?

ⓒ 뉴스 1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가자. 세월호 침몰 사고. 참으로 안타까운 사고였다. 무려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이 충격적인 참사에 그 누가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사고 희생자 대부분이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변을 당한 어린 학생들이라는 사실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누구나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굳이 이런 당연한 말로 글을 여는 이유가 있다. ‘세월호’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성역 속에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세월호에 관한 대다수의 견해에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단번에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코패스로 매도 당하기 일쑤다. 세월호 사고가 슬프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가 정치로 연장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차이를 도덕적 둔감으로 치부해버린다. 국민들의 슬픔을 정부에 대한 분노로 끌고가는 그 못난 정치꾼들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이제는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학생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그 부도덕하기 짝이 없는 프로파간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너는 세월호 사고가 슬프지도 않냐” 따위의 반론은 정중히 거절한다. 누구보다도 슬프다. 떼 묻지 않은 아이들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착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슬프다. 그리고 노엽다. 국민들의 순수한 슬픔을 오도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잇속을 챙기려 드는 그 못난 정치꾼들 때문에 너무나 노엽다.

추모제에서 봤던 시민들의 슬픈 흐느낌, 가족대책위 인터뷰를 하다 만난 유가족들의 처진 어깨들, 그리고 영정사진 속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들. 이를 되새기며, 모종의 의무감으로 이 글을 쓴다.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는 분들의 거센 비난이 예상된다. 신경 쓰지 않는다. 원래 자기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이를 틀린 생각으로 매도해버리는 것이 더 간편한 법이다. 이들은 그저 사고의 나태에 젖어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책임이 된 세월호 사고

세월호 사고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낯을 봤다. 정부의 상황대처능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것을 실감했고, 기관 간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론은 또 어땠는가? 오보의 연속이었다.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적절한 내용을 서슴지 않고 방송하기도 했다. 이 참사를 가지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새였다. 구조작업에도 노이즈가 많았다. 혼란의 현장에서 침착하게 일처리를 했어야 했건만, 우왕좌왕하는 관료들에 휘둘리랴, 소리치고 분노하는 시민들에게 휘둘리랴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민간잠수사들이 나섰을까. 그렇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줬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들이 발생했었고, 재앙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동의한다.

세월호 반정부_뉴데일리

ⓒ 뉴데일리

 

그런데 여기서 왜 갑자기 대통령을 걸고 넘어질까?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탓이니 사퇴하란다. 참 웃기는 소리다. 대통령이 박근혜여서 일어난 사고란 말인가? 그러니까, 문재인이 당선되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란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2년 했다고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세월호 침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과적’으로 알려져있다. 노후된 선박에 허용치 이상의 짐과 승객을 실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뺐다. 매번 그래왔으니 또 별 생각 없이 그랬던 거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삶 속에 습관처럼 쌓여온 안전불감증이다. 이는 국민의식의 문제였다.

조금 더 세련된 논리로 정부를 비판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단어가 있다. “컨트럴타워”. 일련의 사태에서 컨트럴타워 역할을 했어야 할 청와대가 없었단다. 누가 들으면 현장경험이 전무한 박근혜 대통령이 스타크래프트하듯 모든 기관을 일일이 조종하는 줄 알겠다. 정부기관들의 상황대처능력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매뉴얼에 따라 수없이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 그 시점에 현장은 물론이고 모든 기관들이 혼란에 빠졌다. 각 기관들이 침착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자신들의 군부대를 떠올려보면 된다. 미리 짜맞추고 하는 훈련도 그렇게 우왕좌왕하는데, 실제 상황이 터지면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까? 상황대처능력은 기계적인 훈련의 반복으로 체득하는 수 밖에 없다. 각 기관들이 매뉴얼에 따라 정확하고 침착하게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따라서 이를 두고 청와대라는 컨트럴타워가 없어서 이 사단이 났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본 대한민국의 민낯은 바로 우리들의 민낯이었다. 대통령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이었다.

세월호 대통령이 책임져라_민중의소리

ⓒ 민중의소리

 

슬픔팔이, 그 반복

세월호 사고는 정부의 잘못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우리가 쌓아온 폐단들에 대한 죄를 세월호라는 가혹한 대가로 치른 것이다.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자꾸만 “박근혜 사퇴” 이야기가 나온다. 모든 게 정부 책임이란다.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정부 책임이 아닌 것이 어디있나? 길 가다 넘어져서 팔이 부러지면 길을 제대로 닦지 않은 정부 책임이라고 우길 수 있다. 이런 부족한 논리에도, 세월호 사고가 반정부시위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정치꾼들의 프로파간다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의 비극은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늘 그랬듯 이 슬픔은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로 오도되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라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것이다. 신효순 양과 심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비극적인 사고다. 도로가 곡각지와 협곡으로 둘러싸여 시야가 제한되어있던 미군 장갑차가 맞은편 도로에서 다가오는 차량을 피하려다 갓길 위의 두 소녀를 보지 못해서 생긴 사고였다. 이 불의의 교통사고는 국민들을 슬픔에 젖게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소녀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꾼들에 의해 미국에 대한 분노로 변질되어, 수많은 국민들이 미군철수를 외치게 되었다.

효순미선반미시위_피플파워21

ⓒ 참여연대

 

세월호 참사가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는 과정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 놀라우리만큼 흡사하다. 먼저 사고 희생자들의 죽음을 기리는 촛불추모제가 개최되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슬픔을 공유한다. 여기까지는 참 바람직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속이 시꺼먼 사람들이 “비극의 원인”을 지목한다. 효순이 미선이 때는 “미국 제국주의”였다. 세월호 때는 “박근혜 정부”였다. 촛불추모제에 시위 슬로건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제 사람들은 분노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너무나 쉽게 분노로 전이된다. 슬픔은 수동적이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비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생기는 감정이 슬픔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 원인만 지목해주면, 무기력하게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맞서 싸울 대상을 가지게 된다. 분노를 통해 슬픔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 때의 분노는 반미의 촛불이 되어 타올랐고, 세월호 때의 분노는 반정부의 촛불이 되어 타올랐다.

 

희생자의 존엄을 위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역겨운 짓이다. 국민들의 순수한 슬픔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짓이고,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팔아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파렴치한 짓이다. 가증스럽게도 이는 철저한 위선 속에서 행해진다. 마치 자신들만이 희생자에 대해 슬퍼하고, 약자에 연민을 느끼며, 도덕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양. 자신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몰아세운다. 슬픔을 모르는 냉혈한으로.

세월호 정치선동꾼 척결운동_데일리안

ⓒ 데일리안

 

이런 이들은 항상 존재해왔고, 항상 존재할 것이다. 똑같은 패턴으로. 효순 양과 미선 양의 아버지는 미군들을 용서한다고 했다. 단순사고였을 뿐, 그들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며 해당 사고가해자들이 이제 그만 마음의 짐을 덜고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또 딸들을 더 이상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두 소녀의 죽음을 이용하는 이들은 끊임없이 효순이와 미선이의 이름을 외치며 슬픔을 팔았다. 두 소녀는 광우병 촛불시위를 포함한 각종 반미시위의 현장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들의 어린 영혼이 이제 그만 안식을 얻도록, 부디 그만했으면 좋겠다.

4월 16일. 이제 곧 세월호 1주기다. 1주기 추모제에는 틀림없이 또 반정부 시위가 등장할 것이다. 국민 모두의 슬픔을 다시 한 번 이용할 것이다. 악몽 같은 그 기억을 끌어내기 위해 갖가지 수단들이 동원될 것이다. 침몰하고 있는 모습의 세월호를 풍선으로 제작해 띄울 것이고, 각종 영상물들로 우리들의 눈물을 끌어낼 것이며, 이 슬픔의 원인으로 정부를 지목할 것이다. 어린 영혼들의 죽음을 착취하려는 못된 정치꾼들과, 그들의 슬픔팔이에 이용당하는 순수한 시민들과, 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로 대한민국은 또 한 번 시끄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존엄을 위해 이 비열한 프로파간다에 맞설 것이다.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