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야당, 그리고 문재인 선장

야당의 가장 든든한 배후지였던 호남이 심상치 않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침몰하는 배를 떠나듯 호남 정치인들이 새정치를 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호남 시민들의 지지도 상당하다.

문재인 비판 호남

ⓒ 뉴시스

지난 7월, 박준영 전 전라남도 도지사가 “새정치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다”며 탈당을 선언하고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이후, 새정치 내부의 신당파와 비노 세력이 크게 동요했다. 이때라도 문재인 대표 예하 친노 지휘부가 정신을 차렸다면 좋았으련만, 전혀 개의치 않았던 건지, 아니면 본인들 밥그릇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던 건지 사태를 관망할 뿐이었다.

결국 지난 20일, 광주 서구의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신당 창당 의사를 밝혔고, 이틀 후인 22일, 광주 동구의 박주선 의원도 창당에 힘을 실으며 새정치에서 탈당했다. 천 의원은 5선을 한 인물이고, 박 의원은 3선을 한 인물이다. 지지층이 두꺼운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이 광주를 등에 업고 새정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야당으로서는 꼬일대로 꼬여가는 이 상황에, 문재인 대표는 최고위원들과 자택에서 만찬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원칙인 무기명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외치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을 퇴장시키고 거수 공개투표와 박수소리로 통과시킨 혁신안을 자축하는 모양새였다.

문재인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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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그간 최악의 모습을 보여왔다. 내부로는 친노, 비노 간의 집안싸움으로 조용할 날이 없고, 외부로는 무능함만 과시했다. 부정부패 건도 여럿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의 연패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 마당에, 야당의 텃밭인 호남 마저 잃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침몰하고 있는 배를 보는 기분이다. 관록있는 호남 출신 정치인들이 새정치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이 상황에서 내년 총선을 새정치가 제대로 치를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치닫게 된 원인은 다름 아닌 ‘계파갈등’이다. 친노와 비노의 역사는 생각보다 골이 깊다. 무려 2002년 16대 대선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경남 (PK) 출신의 인사들로 이루어졌던 노무현 당시 후보 세력은 ‘바보 노무현’ 돌풍을 일으키며 대선후보경선에서 승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호남 출신들이 민주당을 꽉 잡고 있었는데, 비주류 영남권 친노세력들이 득세하니 비노 입장에서는 못마땅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사태’가 터진다. 당시 노무현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낮으니 후보를 교체하자며 당내 비노 세력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친노 세력은 어렵사리 이를 막아냈고,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당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 그 이후 친노 세력은 민주당에서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비노 세력들에게 맹공을 퍼붓는다. 그것이 야권의 뿌리깊은 계파갈등의 시작이었다.

2007년 17대 대선 패배 이후 친노 세력은 사멸하는 듯 했으나,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극적으로 부활하며 다시 야권의 최대 기득권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친노세력의 왕좌에 오른 것이 문재인 현 야당대표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주춤하는 듯 했으나 친노 세력은 굳건하게 자신들의 입지를 지켜왔고, 야당 내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다.

친노 노무현 서거 3주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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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기득권 새누리당을 비판하면서, 뒤에서는 또 다른 기득권으로서 갖가지 추악한 일들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문재인 대표와 그 예하 친노 지휘부가 그들의 입장에 맞지 않는 소신있는 발언을 하는 젊은 혁신위원에게 재갈을 물리고 정치적 탄압을 넣는 모습을 보며, 문재인 대표가 맨날 외쳐대는 ‘혁신’이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 외침인지 깨달았다.

한편 몇년 전부터 “계파갈등을 청산하겠다”고 약속했던 문 대표가 변치않는 태도로 비노 세력을 적대하는 모습을 보며 친노, 비노의 집안싸움은 나날이 심해져갔고, 결국 신당 창당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이제 새정치는 호남을 잃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지긋지긋한 집안싸움은 야당을 불구로 만들어버렸다.

자기들 집안싸움, 밥그릇싸움 하느라 바빠서 야당으로서의 책임을 돌아보지 못했다. 국민들 밥그릇 챙기는 것이 뒷전이었던 것이다. 현실적인 정책, 대안, 비전 등은 제시하지 못하고 그저 민주주의를 죽였다 살렸다, 정의에 호소하며 허구한 날 감성팔이만 해대는 걸로 책무를 끝내려 하니 국민들로서는 피로와 짜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야당이 말하는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은 결국 80년대 운동권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비판하기 위한 비판, 대안이 없는 비난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현명한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러니, 새누리가 미워죽겠는 사람들조차 새정치에게 표를 못주는 것이다.

ⓒ 민중의소리

이쯤되면 문재인 대표가 사실은 새누리당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의도적으로 당을 파괴하고 있는 것 같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했다. 초등학생도 아는 말이다. 정부와 여당을 견제하는 제1야당으로서 일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집안이 시끄러운 원인, ‘계파갈등’부터 처리했어야 했다. 그런데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인지,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비노들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지, 말로만 “계파갈등 청산”을 외치며 실제로는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혁신’이라는 허울 좋은 말만 반복하며 구시대적인 투쟁정치 논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뇌물수수로 투옥된 한명숙 의원을 감싸며 사법체계를 비판하는 추한 모습마저 보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으로서 여당에 대한 견제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이로서 가장 큰 득을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새누리당이다. 친노니 비노니 하며 야당이 사분오열하면, 든든한 지지층이 있는 여당은 무슨 일을 벌려도 어쨌든 선거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차기 대선 주자를 놓고 여당과 청와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여당 대표의 가족사 때문에 노이즈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가 두려울 것이 없는 이유는 새정치가 너무 못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이 문재인 대표의 무능한 행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이유는, 문 대표 덕분에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로 가장 큰 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 기뻐하는 새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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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체제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 여러 정치집단이 서로를 견제하고, 또 경쟁할 때 발전이 이루어지고, 이로 말미암아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게 된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양당제와 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여당과 야당이 치고받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추인해왔다. 그런데 지금 한쪽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배가 침몰하면, 새누리당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다. 이는 결국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침몰로 이어진다.

침몰하고 있는 배의 선장, 문재인 대표. 그가 반성하지 않는다면, 지금 이 야당의 위기가 곧 대한민국 정치의 위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