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 ‘불평하는 자’와, ‘견디는 자’.

불평하는 자’들은 언제나 말이 많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을 쉴 새 없이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한다. 이 자기연민의 이면에는 나 대신 다른 누군가, 다른 무언가를 탓하는 편리한 사고가 숨어있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는 쉽게 전염된다. 그러나 그 울림은 공허하다. 대안 없는 투덜거림은 일시적인 위로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의미하다.

세상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은 바로 ‘견디는 자’들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절망에 취해있는 사람들을 등에 업고서, 냉혹한 현실에 꿋꿋이 맞서며 앞으로 나아가는 이들이 사회를 작동시키고, 또 발전시켜왔다. 그저 불평하는 것으로는 바뀌는 것이 없다. 주어진 조건과 냉엄한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이와 부딪치는 이들만이 세상을 바꿀 자격과 능력을 얻는다. 그런 이들이 가슴 속에 품은 것은 현실에 대한 패배주의적 절망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능동적인 낙관이다.

시지프스

쿠쉬, “시지프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단어가 유행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너도 나도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죄라며 처지를 한탄한다. 절망하는 것이 일종의 유머 코드가 되었다. 우리 모두 틀려먹었다며 아직 제대로 이룬 것도 없는 이들이 서로를 깎아내린다.

흙수저’라는 단어로 스스로에게 하층민의 계급을 부여한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동빛이나 흙빛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결코 금이나 은이 될 수 없다. 이미 스스로를 동과 흙의 운명 속에 가뒀기에. 그들 말대로 수저는 입에 물고서 태어나는 것이니까. 동수저와 흙수저의 설움이 동력이 되어, 자식에게는 은수저를 물려주겠다는 욕심이라도 생기면 좋으련만, 이들에게 ‘헬조선’이라는 가상의 나라는 주어진 계급에 따라 살아가는 곳이기에 그런 욕심을 품지도 못한다. 죽창을 들자며 우스갯소리를 해대지만, 정작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할 의지는 없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들의 능동성은 인터넷 댓글창에 배설되는 것이 고작이다.

흙수저 빙고게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고 있는 ‘흙수저 빙고게임’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환호한다. 암울한 경제전망, 높은 실업률 등 각박한 현실을 증명하는 수치와 데이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한편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는 통계에는 괜한 거부감을 느낀다. 이 나라가 헬조선이어야만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사실은 대한민국이 살기에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진국 반열에 드는 나라라는 사실은 불편한 진실이 된다.

2015년 기준 대한민국의 GDP는 세계 11위, 1인당 GDP는 2만 8천 달러로 세계 중상위권에 속한다. 제조업 경쟁력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프라, 성장동력, 환경 모두 세계 20위 안에 속하는 우수한 사회 제반을 갖춘 나라다. 선진 경제국(Advanced Economics)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세계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G20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조선일보

ⓒ 조선일보

도대체 멀쩡한 이 나라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언제나 낙관적인 부분보다는 비관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긍정적인 이야기보다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며 ‘불평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행복이란 주관적인 감정이다. 다 가졌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못 가졌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아니다.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 국가라는 세간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모두가 자꾸 불행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이 나라가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OECD 회원국 내 자살률 1위 국가. 5년간의 자살 사망자 수가 전쟁 사망자 수보다 많다는 이 나라 헬조선. 이 이면에는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하는 나라 대한민국이 있다. 전 세계 229개 국가 중 객관적으로 대한민국보다 더 잘 살고, 덜 지옥 같은 나라가 몇이나 될까.

흔히 행복지수가 제일 높다고 알려져있는 방글라데시의 기차역 사진 ⓒ KDI 경제정보센터

우리가 전쟁같은 삶을 살도록 만드는 것은 서로를 자꾸 전쟁터로 끌어내리려 하는 이 못된 습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