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도대체 어쩌라고?

필자는 최근 두 번의 강도 높은 ‘다구리’를 경험했다. 민중의 소리의 선동을 비판했을 때 한 번,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의 부도덕성을 지적했을 때 또 한 번. 성향이 매우 다른 두 매체이건만, 본인들에 대한 비판을 못 견뎌 한다는 점은 매우 비슷했다.

소년다구리

​▲ 한 남성이 개새끼들에게 다구리를 맞고 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미지 출처: ArcticLegends.com>

 

그들은 열정적으로 분노했고, 그 분노를 키보드를 통해 각종 창의적인 형태의 욕설로 빚어냄으로써 표현했다. 생전 처음 보는 신선한 욕설들은 초등학교 운동회 날 박을 향해 날아드는 수많은 콩주머니처럼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쏟아지는 화살비 앞에 굳건히 서 있는 장수처럼 당당하고 싶었건만, 쿠크다스 마냥 여리디 여린 필자의 멘탈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필자는 동굴 속에 웅크려 상처를 핥고 있는 짐승 마냥, 어두운 방구석에 처박혀 밤새 모니터를 바라보며 홉스의 성악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점은, 이들이 나를 매우 다른 두 종류의 호칭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민중의 소리에서는 극우 보수 일베충 소리를, 일베에서는 좌좀 종북 소리를 듣는 상황이다. 어쩌면 필자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몰아붙이기 위해 두 집단이 연합하여 짜낸 고도의 술수인지도 모른다.

​▲ 아이들이 박을 향해 콩주머니를 날리고 있다. 박을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열정이 느껴진다.

​▲ 아이들이 박을 향해 콩주머니를 날리고 있다. 박을 파괴하고야 말겠다는 열정이 느껴진다. <이미지 출처: 뉴시스>

가만 생각해보면 일베를 비판한다고 해서 좌좀 소리를 듣고, 민중의 소리를 비판한다고 해서 일베충 소리를 듣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분명 보수주의를 표방하며 일베 특유의 방만함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진보주의를 지지하며 일부 진보 매체의 선동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자기 집단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상대 진영의 공격이라 치부하고 적대시하는 이 편집증적인 증세는 영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우리 편 욕하면 쟤네 편’이라는 사고방식은 집단 내 자기반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부모님께 야단 한 번 안 맞고 자란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기 마련이다. 자신의 테두리 내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니, 누가 뭐라고 한 마디 하면 불공대천할 원수지간이 된다. 정치색이 뚜렷한 집단도 마찬가지다. 집단 내에서 스스로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 결과, 다수의 합의된 견해에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이를 적대시하게 된다.

매스커뮤니케이션에 관한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침묵의 나선 (Spiral of Silence)” 이론은 “사람들은 아무리 타당한 의견이라도 주위 사람 대부분이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경향은 온라인에서 더욱 강하다고 한다. 이는 민중의 소리나 일베와 같은 정치색이 뚜렷한 매체가 폐쇄적이게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비슷한 견해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여론을 형성하게 되면, 이와 다른 목소리들은 침묵한다. 이는 집단의 자기 반성과 비판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집단의 정치색은 점점 더 뚜렷해지게 된다. 나선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악순환인 셈이다.

​▲ 집단과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의 침묵을 설명하는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

​▲ 집단과 다른 의견을 가진 개인의 침묵을 설명하는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 <이미지 출처: ecoroko.com>

특정 정치색을 띈 집단들이 이렇게 폐쇄적으로 변해가며 점점 더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초래한다. 여론의 양극화와 그로 인한 집단적 갈등은 물론이거니와, 정치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토론’을 패싸움 수준으로 끌어내려버린다. 다같이 모여 학급회의를 하라고 했는데, 청군 백군으로 나눠 운동회를 하고 있는 꼴이다.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없는 집단은 반드시 몰락한다. 진보와 보수의 축이 되는 커뮤니티들은 모두 이러한 길을 걷고 있다. 여론의 양극화를 멈추고, 진영논리를 타파하며, 정치적 토론의 장을 건설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자기 집단, 자기 진영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며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의 조성이다.

​▲ 올바른 방법의 야단은 비뚤어진 아이를 바로잡는다는 사실을 활짝 웃으며 알려주시는 신동엽 씨. 아이가 달라져서 기쁜 모양이다.

​▲ 올바른 방법의 야단은 비뚤어진 아이를 바로잡는다는 사실을 활짝 웃으며 알려주시는 신동엽 씨. 아이가 달라져서 기쁜 모양이다. <이미지 출처: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우리는 너무나 피곤한 사회에 살고 있다. 자칭 보수세력은 정전 때문에 켜둔 촛불 하나만 봐도 이를 드러내고 있고, 자칭 진보세력은 동물원에서 코알라랑 노는 아이들을 보며 일베충을 걱정한다. 만물을 좌좀 혹은 일베충으로 바라보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진보 취급 당하기 일쑤고, 정치에 개입되는 감성코드를 비판하면 보수 취급 당하기 일쑤다. 진영논리가 이쯤되면 집착이다. 이런 사회에서 필자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호칭이 바뀐다. 부디, 자기 진영에 대한 건전한 ‘야단’을 치는 이들이 늘어나서, 모든 것을 좌와 우의 잣대에 놓고 바라보는 이 광기가 멈추기를 바란다. 국가적인 규모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리고 필자 다구리 좀 그만쳤으면 좋겠다. 보수 진보 취급을 동시에 당하니 어디에서 편 들어줄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