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직 노벨상을 타서는 안 된다

연구에 몰두하는 패러데이(‘전기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화학자/물리학자)에게 한 관료가 대체 전기가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갓 태어난 아기가 어디에 쓸모가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박준우 교수는 위 사례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끔은 새 원소를 발견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유용성이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는데, 갓 태어난 아이가 장차 성장하여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인류와 국가에 기여할 것인가를 미리 알 수 없듯이, 갓 발견된 과학적 내용이나 발견 과정에서 개발된 기술이 장래에 어디에 어떻게 이용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의 상당 부분은 유용성을 따지지 않고 수행한 과학적 탐구의 결과에서 파생되었음이 분명할진대, 새로운 원소 발견에 대한 도전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노벨상 수상 시즌이 되니 언론과 여론은 관성적으로 한국은 왜 노벨상을 타지 못하냐며 한탄한다. 이런 반응 자체가 한국이 왜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아일보 노벨상비교

ⓒ 동아일보

한국은 아직 노벨상을 타서는 안 되는 나라다. 부모는 거실에서 TV드라마를 보면서 자식은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는 집안이 있다. 실용서조차 한글자 읽지 않으면서 자식에게는 온갖 고전명작을 독파하라고 강요하는 부모가 있다. 이런 집안환경에서 자식이 꿋꿋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부모는 자신의 양육이 올바른 것인줄 알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이다. 주변에 권장할 것이다. 이런 부모가 한국의 정치인이 되면 자기 임기후에 사라질 ‘노벨상 태스크포스팀’를 만든다.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한국의 김연아에게 한참 뒤쳐지지만,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는 빙상은 일본이 한국보다 인구대비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것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확신할 수 있다. 일본은 박태환은 없어도 학교마다 수영장이 있는 나라다. 메달은 없어도 전국민이 수영을 즐긴다. 한국은 선박 침몰사고가 난 후에야 수영 교육을 고려하고 있다. 사고가 났을 때 죽지 않기 위해서라는 단적이고도 노골적인 목표가 생겨서다. 한편 북유럽 국가들은 동계올림픽에 강하다. 메달 숫자에 집착한 결과가 아니라, 그 국민들이 평소에 동계스포츠를 즐길 환경이 되기에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선수도 한두명씩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국민이 여가를 스포츠로 즐겁게 보내는 환경이 부러울 따름이지, 그들의 기록이 부럽지는 않다.

힐링캠프 방송 캡쳐

이미지 출처: SBS 힐링캠프 방송 캡쳐

한국이 아직도 올림픽 메달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후진국이나 올림픽에서 자기 나라의 이름을 알리려고 필사적이지, 한국은 이제는 메달 개수에 집착할 수준의 나라가 아니다. 양궁장 하나 찾기 어려운 환경에서 우리나라 양궁 선수가 금메달을 몇개 딴들 일반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해질까? 그런데 실제로도 선수가 메달을 따면 국민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안쓰럽다. 누리지 못하니 진짜 행복을 모른다.

노벨상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연구환경을 반영하는 지표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동네마다 빙상장을 만들게 된다면 그것은 제2의 김연아 발굴이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여가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여야 한다. 노벨상이 도저히 나올만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쩌다 극악의 환경을 극복한 천재가 상을 탄들, 외국 용병을 고용해 성적을 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노벨상 노벨상 노래를 부르려면 차라리 외국 박사에게 많은 돈을 주고 귀화를 시키는 것이 낫다. 한국은 목표를 너무 크게 착각하고 있다.

JTBC 뉴스룸 노벨상

이미지 출처: JTBC 뉴스룸 방송 캡쳐

한국은 아직 노벨상을 타서는 안되는 나라다. ‘왜 우리가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가’라는 근시안적인 한탄이 그친 후에야 최소한의 준비가 된 듯하다. 천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항상 태어나고 있다. 이곳에 없다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탓이다. 천재를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말고, 평범한 과학자의 역량을 살려주는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싹을 틔운 천재를 발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