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많은 장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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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 역할을 맡았던 임시완이 고용노동부 광고를 찍고 욕을 엄청 먹었다. 사람들은 “장그래가 어떻게 4년짜리 비정규직 만드는 슬로건에 동조할 수 있냐!”며 비난했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파악할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비정규직 4년 연장은 나쁜 정책이 아니다. 2년이면 경력으로 인정 받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다. 보통 4년에 한 번 승진을 하니 경력을 인정 받으려면 최소 4년 근무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이직을 하기 위해서도 4년간 안정적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 평균 근속년수가 5-6년이며 이에 근접한 기간을 근무 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경력 단절을 막겠다는 장그래법이 큰 전제를 놓쳤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사실 ‘급여’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2015년 기준 정규직 평균 월급은 271만 원, 비정규직은 146만 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직무를 담당한다면 비슷한 수준의 월급을 주는 게 먼저다. 정부는 4년으로 연장하자는 슬로건에 앞서 비정규적 급여를 정규직 수준으로 올릴 수 있는 보호 장치를 먼저 장착했어야 하는 게 맞다. 같은 회사, 비슷한 일을 하는데 경력 단절이 불 보듯 뻔한 위치에 급여까지 적으니 ‘불공정한 시스템’이란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뽑는 이유는 유연한 해고가 가능하단 장점 때문이다. 경영환경이 나빠지면 인건비를 줄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인데 비정규직은 간소한 과정으로 해고가 쉬워 빠른 인건비 절감이 가능하다. 만약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가 동시에 수월하다면 과연 기업은 해고 기준을 어디에 둘까? 바로 생산성이 낮은 직원이다. 기업 입장에선 비정규직 생산성이 정규직에 비해 높다면 굳이 비정규직을 해고할 이유가 없다.

 

24세 이하 근로자의 임금:생산성 비가 1:1이라 가정했을 때 42세 기점으로 생산성은 임금보다 낮아진다. 문제는 생산성이 낮아지는데 월급은 오르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바로 한국 사회다. 이런 기현상은 장기 근속자일수록 인건비를 많이 가져가는 호봉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 기업은 ‘평생 직장’을 떠들며 호봉제를 먼저 도입했고 한국도 이를 여과 없이 받아 들였다. 일본 잔재를 없애자고 매번 떠들면서 이 제도의 비효율성은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IMF 때 효율적인 구조로 개편될 여지가 있었다. 미국식 연봉제 도입이 확산됐으나 한국 기업은 연공서열식 연봉제란 제도를 만들어냈다. 호봉제와 큰 차이가 없으면 여전히 업계 70%를 차지한다. 상여금을 일 년에 여러 번 나눠서 주는 제도가 바로 이 어처구니 없는 형태의 정점이다. 상여금은 원래 ‘표준작업량 이상 성과를 올린 경우 지급되는 임금의 할증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본래의 뜻과 관계 없이 ‘연봉 책정 시 정해지는 금액’이 돼버렸다.

 

생산성과 상관 없이 장기 근속자에게 주는 인건비가 많아지니 비정규직에게 할당할 수 있는 급여 총량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장기 근속자 중 생산성이 낮은 부류의 사람들이 펑크 내는 업무량을 비정규직이 메우면서 급여는 더 적게 가져가는 구조가 현재 한국 사회다. 근본은 바로 낮은 생산성의 고연봉자다. 결국 제품의 원가 내 인건비와 생산성을 동시에 잡으려면 생산성 높은 저임금 노동자 고용이 필수다. 이런 연유로 계약직 채용 시 낮은 임금이 지급돼 고용 시장 내 갈등은 고조된다.

같은 직무의 정규직과 계약직 임금 차이는 엄연히 평등을 저해하는 행위다. 계약직이 자리 잡혀 고용 유연화를 일궈낸 네덜란드는 노사 협의에 따라 임금 차별을 없앴다. 하지만 이런 개선은 장기 근속자와 신입의 임금 격차가 적다는 사회적 구조가 든든히 버티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네덜란드를 비롯, 독일, 영국 등 서구 선진국의 경우, 초년생과 2-30년 근속자의 급여 차가 1.3~1.8배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한국은 세 배에 육박한다.

이 현상을 풀어가려면 임금피크제를 생산성과 임금비가 역전되는 시점으로 앞당겨야 한다. 물론 40세 이후에도 고도화 된 생산성을 보이는 이는 우대하여 임금은 능력제라는 연봉제 취지를 살리는 게 옳다. 능력주의 연봉제 도입은 필수다. 임금 피크제 앞당기기로 남는 인건비는 신규 계약직 임금에 추가해 임금 차별의 벽을 철폐하는 게 급선무다. 시간이 지나 호봉제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이 되면 계약직과 정규직 차이가 없는 고용유연화 달성이 가능해진다.

 

한국은 OECD 가입국 중 생산성은 바닥 수준이며 장기근로자와 신입 임금 격차는 최고 수준이다. 애초에 임금 시스템 자체가 불평등한 구조란 걸 의미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구조가 아닌 단기 계약직과 장기 계약직 구조로 받아 들여야 한다. 철저히 능력과 생산성으로 평가 받는 임금 시스템 도입이 ‘부정적인 비정규직’을 ‘긍적적인 계약직’으로 받아들일 열쇠다. 비정규직 고용 불안을 얘기할 게 아니라 평등한 근로 계약이 우선이다.

 

회사를 다니며 “저런 사람이 왜 아직 회사에 있지?” 란 생각을 자주 했다.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내가 몸담았던 조직, 거래처에서 존재 가치가 없는 사람이 꽤 있었다. 회사는 그 사람들을 자를 수 없다. 왜 불필요한 사람 때문에 씩씩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