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애국법이 남기는 교훈

테러당시모습

▲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9.11 테러 당시 뉴욕시 맨해튼의 모습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5분, 92명의 승객을 태운 항공기 AA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한다. 이후 오전 9시 3분, 승객 65명을 태운 UA175편이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건물과 충돌하며 미국의 상징이었던 뉴욕의 중심부 맨해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어서 오전 9시 40분, 승객 64명을 태운 AA77편이 워싱턴 DC의 국방부 건물과 충돌하였다.

오전 9시 59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은 완전 붕괴되었고, 오전 10시 3분, 알 카에다에 의해 피랍된 4대의 항공기중 마지막인 UA93편이 승객 45명을 태운 채 피츠버그 동남쪽에 추락한다. 오전 10시 30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 마저 완전 붕괴되버린다.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던 미국에서 약 두 시간 동안 벌어진 이 처참한 사건은 4대의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266명 전원 사망, DC의 국방부 청사에서 125명, 세계무역센터에서 약 2,500~3,000여 명의 사망 또는 실종이라는 끔찍한 인명피해로 종결된다.

인명 피해 뿐만 아니라 경제 피해도 상당했는데, 이 테러 행위로 재난극복 연방 원조액 111억 달러, 테러 보복 및 응징을 위한 긴급 지출안 400억 달러, 세계무역센터 건물 가치 11억 달러 외에도 각종 경제 활동 및 재산상의 피해를 더해 계산이 불가한 금액 손실이 있었고, 국제 금리의 급하락, 세계 증권 시장의 대혼란 등으로 이어졌다. 훗날 우리는 이 사건을 9.11 테러라 부른다.

9.11 이후, 테러에 대한 엄청난 공포가 미국 전역을 광기로 물들인다. 제 43대 미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급히 애국법(Patriot Act)을 제정한다. 이 애국법은 9.11 이후 범국민적 분노와 복수심에 힘입어 단 6주만에 서둘러서 통과된다. 문제는 이 애국법이 ‘외부의 적’에 대항해 분노와 증오로 뭉친 공화당, 민주당원들이 지지한 초당파적 법률이라는 것이다.

‘외부의 적’에 대한 적개심은 서로의 의견을 상호견제하던 양 당의 정치인들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애국법의 위헌 가능성과 반민주성, 그리고 그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테러와의 전쟁”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법률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것을 미국 전 국민이 도왔다.

애국법저서

▲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악”에 대한 기록을 모아 편집한 Alia Malek​의 저서, Patriot Acts​.

 

충분한 고려를 거치지 않고, 분노와 공포라는 국민적 감정에 의해 서둘러 통과된 애국법은 이후 수많은 문제를 낳는다. 애국법에 의해 자유 발언은 범죄 취급 당하기 시작했고, 영장 없는 수색이 허가되며, 타당한 이유 없이 도청이 자행되었다. 심증만으로 사람을 가둘 수 있고, 단지 의심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자유를 박탈 당한 이들에게 적법한 법적 절차나 심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애국법은 특히 외국인들의 권리를 철저히 뭉갰는데, 법을 철저히 준수한 사람 조차도 단순히 특정 견해를 말하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에서 추방당할 수 있고, 사상 규제법으로 미국에 들어오는 것 조차 거부당할 수 있게 되었다. 애국법이 불러온 각종 문제들에 대한 소송이 걸릴 때마다, 미 대법원 (Supreme court)은 고문, 감금 등을 금지하는 수많은 판례들을 뒤엎고 애국법을 지지하거나 심지어 애국법에 대해서 만큼은 면책특권까지 부여한다.

애국법만평

▲ 애국법에 의해 일어나는 만행들을 풍자한 만화. 애국법이라는 가위가 미국 권리장전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

 

그러나 애국법은 미국 자유민주주의 퇴보의 시작에 불과했다. 9.11 테러 이후 테러리즘에 대한 공포와 중동 국가들에 대한 적의로 가득찬 미국은 “적”에 대항하기 위해, 한 세기 전 그들이 자유와 정의의 이름을 내걸고 싸웠던 독재와 탄압, 폭력의 정권과 같이 변해가기 시작한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가 인류에 위협이 되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라크를 침공한다.

그러나 2002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거나, 이를 개발하려 한다는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는 없다’라는 UN 사찰단의 발표가 있었다.​ 부시 행정부는 결국 “잘못된 전제”로 이라크 전을 시작하고 갖가지 비인도적인 행위들을 자행한다. 부시 대통령의 승인 하에 아부 그라이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 정권의 그것을 연상하게 하는 끔찍하고 체계적인 고문과 포로학대가 실시되었다.

1949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에 의해 전쟁 포로는 고문할 수 없는데, 이를 회피하기 위해 미 정부는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을 “적의 전투원(Enemy combatant)”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바꿔 제네바 협약을 완전히 무시한 채 잔인하게 고문한다. 부당한 납치, 감금, 고문, 처형, 강제 심문 등으로부터 소중한 인권을 지키기 위해 쓰여진 미국 헌법의 조항들을 무시하기 위해서, 미 정부는 쿠바의 관타나모 만에 수용소를 세운다.

미국 영토가 아닌 쿠바에 설치된 수용소는 미국 헌법에 제한을 받지 않은 채 갖가지 범죄 행위들을 주관한다. 증거가 있어서 잡혀온 것이 아니라, 증거를 찾기 위해 잡혀온 죄수들을 수용소에 집어넣고 감금, 고문, 처형하는 것이다. 심지어 관타나모 수용소에 임시 법정을 만들어서, 민간 재판소나 군사 법정 등에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증거들로 (삼중 전언, 강요된 증언, 심증 등) 용의자를 평생 구금하거나 사형까지 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고문에 견디다 못한 수많은 죄수가 자살을 시도해왔고, 이 사실이 한 관리자의 양심 선언으로 인해 미디어를 통해 외부로 유출된적이 있는데, 미 정부는 이를 “조작용 자해 행위”(Manipulative self-injurious behavior) 내지는 “미국을 상대로 한 비대칭 교전행위”(An act of asymmetric warfare waged against us)라 표현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러한 비인도적인 행위들에 대한 언론의 질문이 있을때면 미 정부는 마치 말장난이라도 치듯 교묘하게 혐의를 부인했는데, 특히 관타나모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에 대한 언론의 질문 세례에 제 46대 미국 부통령이자 부시 행정부의 실무자였던 딕 체니(Richard Bruce Cheney)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죄수들은 열대 지방에 있으므로 잘 먹고 잘 지낸다, 필요한 것은 다 갖추고 산다”라는 언급을 할 정도의 뻔뻔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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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로 Ali Shallal al-Qaisi가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고문 당하고 있다. ​본 사진은 미 정부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불러오며 유명 주간지 The Economist의 표지가 되기도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자민 프랭클린이 말했다. “찰나의 작은 안전을 위해 근본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이는 둘 다 얻을 자격이 없다.” 많은 지성인들이 미국의 2001년 애국법 시행과 그 이후 벌어진 각종 반민주적 행위들은 “테러리즘이 조장한 반이성적인 공포로부터의 작은 안전을 위해 인간으로서의 자유를 포기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적에 대한 공포와 증오가 미국 사회의 자유 의식과 민주주의를 좀먹었다. 그리고 이는 아직까지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9.11 테러 이전의 미국 정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상호견제를 통해 여론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일 없이 균형을 이루었고, 이를 통해 구축된 토론의 장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동력이었다. 민주적 토론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논의는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촉구했고,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을 통해 더 나은 의견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동력을 얻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이 균형적 여론은 테러에 대한 적개심으로 한데 뭉쳤다. 분노와 공포를 그 중심으로 하는 집단은 이성적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의 애국법 사례는 자기반성 없이 감정으로 하나된 집단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니체가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