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교과서보다 중요한 문제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조금 복잡한 심경이다. 나는 현행 교과서의 ’좌편향‘을 사실로 믿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동의한다 할 수 있겠다. 다만 그 방법이 꼭 국정화가 되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시간을 두고 방법론을 고민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국정교과서 국민선호_이데일리

ⓒ 이데일리

그러기에는 정부의 반공의식이 강했다. 정부가 말하는 교과서 국정화, 즉 ’좌편향 교과서 바로잡기’는 이석기 내란음모 척결에서 통진당 해산으로 이어져 넘어온 이른바 ’반공 쓰리스텝‘의 완성이다. 철 지난 아젠다다. 좌우 기성세대의 이념싸움에 바탕을 둔 ’어른들의 잔치’라는 말이다. 보수 기성세대가 종북세력에 품은 오래된 증오가 ‘불통의 여왕’ 박 대통령을 만나서 일사천리로 해소되고 있는 구도다. 종북은 존재한다. 규모가 부풀려졌을지언정,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나도 종북이 싫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 건으로 좌우 청년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 모습이 무척 아쉽다. 우리세대에게 중요한 건 이런 ‘철 지난 아젠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만 하더라도 ‘대우조선해양 부실사태’와 같은, 청년세대의 미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문제가 존재한다.

매일경제

ⓒ 매일경제

국내 플랜트 업계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양플랜트‘와 같은 사업 분야 다각화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2012년을 떠올려 본다. 당시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건설 플랜트 기업의 초봉이 5000만 원에 이르렀다.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압도적인 수치였다. 성과급도 엄청났다. 이제는 여러 가지 판단 착오에 의한 부실이 드러났다. 불과 몇 년 만에 국내 중건설 업계가 전체적인 ‘좀비화‘ 상태에 다다랐다.

문제는 이것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태도다. 포트폴리오 다변화의 단 꿈에 빠져 낙하산 인사 놀이에 한껏 행복해 하던 기성세대가, 적자가 터지고 회사가 존폐 위기에 놓이자 세금으로 이를 해결하겠단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구원을 위해 4조 2천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분노를 감추기 어려웠다. 실컷 해 먹고 놀다가 망할 거 같으니까 국민 세금을 가져다 쓴다고?

난 헬조선이니 수저론이니 다 안 믿는다. 그걸로 투덜대는 순간에도 ‘노력충’들은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래도, ‘기회균등‘ 차원에서는 노력충에게 배신만 때리는 나라가 아니다. 낙하산 인사가 있다 해도 그건 소수의 생리이고 노력충에겐 여전히 범대중적인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해방 70년이 된 지금까지 그런 비정상적인 행태가 활개 치고 있다는 건 좀 실망스럽지 않은가.

우리 세대로 말할 것 같으면 솔직히 기성세대가 벌여 놓은 ‘보기 좋은 떡‘에 어렵게 편승하여 맡은 일을 다 해 왔을 뿐이다. 일을 벌인 주체는 기성세대이다. 일차적인 책임도 그들에게 있다. 문제 해결은 기성세대를 위시한 공동의 협업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그런데 어떤 ‘속임수‘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불편한 진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문제에 직면하기를 회피하고 피같은 나랏돈에 손대겠다는 어르신들을 보는 게 실망스럽다. 물론 그 빚은 고스란히 청년들의 어깨에 올라올 것이다. 정치의 역할은 국가의 발전적인 미래 구상에 있다. 반면 지금 정치권은 교과서를 수단으로 한 이념싸움에 바쁘다.

헬좆커버

경제는 어디 있는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 국토를 시끄럽게 하던 노동개혁은 어디 갔는가? 당신의 아들 딸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 기업? 기업은 이미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분야를 정리해 가고 있다. 통일? 북녘의 지하 자원? 통일 비용은 어쩔 건가? 요즘 유행하는 말, ‘헬조선’은 다른 게 아니다. 경제가 노년기에 접어 들고 있다. 더 이상 크지 않는다. ‘노오력의 배반‘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근절되지 않는 부정부패, 가장 중요한 ‘먹고사니즘‘을 외면한 정쟁의 연속은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기현상이다. ‘헬조선’은 차라리 중진국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를 의미하는 말이 되어야 한다.

이 ‘악의 구도’를 뜯어고칠 수 있는 건 청년들이다. 기성세대의 자정능력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것으로 판명 되었다. 우리가 나서야 한다. 이제는 이념전쟁 같은 ‘어른들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판을 벌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