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외면하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

얼마 전까지 외국에 있었다. 유학을 위해 결정한 외국행이었지만, 그리 유복한 집안이 아니었기에 일과 공부를 같이 해야만 했다. 죽어라 돈을 벌어봐야 학비와 생활비로 쓰고 나면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그러나, 비록 주머니에 든 돈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나날이었다. 젊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기대에 부풀 수 있었다.

친구들과 몇 리터씩 들어있는 싸구려 박스와인 하나 사서 음악 틀어놓고 신나게 마시던 기억이 난다. 한국인의 잣대로 따지면 평생 고만고만하게 비정규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른바흙수저친구들이었지만, 다들 나름대로 행복한 젊음을 보내고 있었다. 그 낙관적인 자세에 나까지 기운을 얻곤 했다.

그리고 한국에 왔다. 간만에 뒷고기에 소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이런 구질구질한 거나 먹어야 하냐면서 인상 팍팍 쓰며 소주를 들이키는 친구 놈을 보고 있자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부모 돈()으로 대학다니는 놈이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이상한 피해의식에 젖어있고, 스스로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꼈다. 다들 헬조선, 헬조선 거리는데, ‘에라 헬조선이 별 거냐,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까지 서로서로 어떻게든 끌어내려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바로 헬조선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버넷 만평

ⓒ 실버넷 만평

사실 그렇지 않은가? 청년들이 힘들다고 값비싼 스마트폰으로 SNS에 불만을 토로하는 그 순간에도, 수많은 노인들이 차디찬 거리를 누비며 폐지를 줍고 다닌다. 미안하지만 절대적인 고통량만 놓고 봤을 때사회적 약자들은 청년들이 아니다. 청년들이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냥 냉정하게 비교해보자는 거다. 힘든 그 순간에도 나름 누릴 거 누리며 세계에서 독보적인 대한민국 청춘 특유의 화려한 소비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피해의식에 젖어있는지 모르겠다.

자꾸 다들 ‘구조적 문제’를 이야기하며 “헬조선 ”이나 “흙수저”라는 단어를 정당화시킨다. 좋다, 구조적 문제는 분명 존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오오력’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왜 그 ‘노오오력’의 주체는 항상 타자가 되는가? 사회구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에 의해 직간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으며, 또 이를 정확히 지적할 수 있는 청년세대가 그 ‘노오오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성 정치인들에게 모든 걸 떠넘길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사회 개선을 위해 시사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청년의 수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여왔다면 애초에 정치권이 이런 식으로 청년들을 외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맨날 힘들다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여나 야나 적당히 구슬리며 표만 받아내고 선거가 끝나면 등을 돌리는 식이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청년여론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힘들다면, 여기에는 구조적인 원인 뿐만 아니라 반드시 개인적인 원인도 존재한다. 정신적 혹은 육체적 나태와 같이 개인별로 문제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기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오오력’은 철저히 거부하고, 자꾸 구조 탓만 하며 피학성애자 마냥 스스로를 비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학대하는지 모르겠다. 내 탓은 하나도 없고, 전부 사회 탓이란 말인가? 정말 웃긴 건,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 지적을 하면 “너 노력충이지? 그래 노오오력이 모자라서 그렇다는 거지?” 따위의 말장난으로 비겁하게 도망친다는 거다.

제발. 거시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와, 미시적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삶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결국 개인적인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둘 다 같이 시도해야지, 자꾸 본인 삶에서 자신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된다. 사회가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지금 경쟁력 있는 진로를 택한 건지, 내 능력과 적성에는 맞는 건지, 내가 고칠 수 있는 단점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보고 ‘현상유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 아닐까? 현재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을 구르지 않으면 추락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젊은이들이 이런꼰대스러운 이야기를 더 많이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그냥 듣기 싫다고, 젊은이의 현실을 몰라서 하는꼰대’스러운 소리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리니까. 노력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낙관을 이야기하는 젊은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독립을 빨리하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며 조금씩 삶의 성취를 이뤄본 젊은이치고 노력을 폄하하는 사람 못 봤다. 나 역시 성실하게 흘린 땀의 가치를 믿는다. ‘노오오력해봐야수저이동은 안 된다고 하는데, 그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대박을 칠 수 있는 기회는 한국이 비교적 높다고 본다.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렇게들 혐오하는노오오력이란 걸 하면, 조금씩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고, 전진시킬 수 있다는 거다. 죽는 소리 안 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명백한 진리다. 왜 자꾸 이를 부정하려고 드는지 모르겠다. 사회 전체가 이를 부정하면 진짜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원동력조차 잃게 된다. 이런 말에 토를 다는 사람들이 정말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고생 다하면서 애썼는데도 삶이 너무 힘들어서네가 뭘 아냐는 식으로 말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꼭 평범한 환경에서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뻔뻔하게노력충 비하를 옹호하고, 흙수저들 편에 서는 척 위선을 떨더라고. 웃기지 마라. 나는 지금 <이게 다 너희들이 노력 안 해서 그래>라는 미친 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 힘들지만, 이렇게 노력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거야>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진짜 흙수저들에게 그 삶의 원동력을 빼앗는 당신들을 비판하는 거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한테 자꾸 힘빠지는 소리 할 때가 아니다. 같이 힘내자고 말하는 게 그렇게 못마땅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