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는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다.

굳이 정치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없고, 선을 지키며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사실 오프라인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정치 이야기를 할 일은 생각보다 훨씬 드물다.

그러니까 극좌이건 극우이건, 유별난 정치적 신념을 가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안 된다. 누구나 정상이 아닌 구석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법이다. 그 부분이 하필 정치적 신념이라고 해서 상종 못 할 사람으로 취급하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다.

그 신념으로 인해 사회적인 매너를 못 지키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만큼 심각한 수준의 정치병 환자들은 보통 알아서 격리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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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문제적 인물들은 따로 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를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다.

남이 볼 때는 쌍팔년도 도덕 교과서에 등장할 것 같은 사람이지만 본인은 자신이 아주 열려있고, 게다가 자신의 도덕적 기준이 사회의 상식이라 믿는 그런 사람.

이런 사람이 외국물까지 좀 먹었으면 “선진국에서도 이 정도 규율은 지키는 게 맞거든?”이라는 무기까지 추가 되어 사방에 피곤함을 퍼트리고 다닌다.

이렇게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사람들은 오늘도 여기저기 정의의 총알을 난사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총질은 진짜 심각한 문제,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물어야하는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로는 향하지 않는다.

다들 알다시피 홍대 대로변 삼계탕집 위에 으리으리한 규모의 안마시술소가 대놓고 영업 중이고, 강남대로 길바닥은 오피와 룸 찌라시로 가득하다.

권력자들은 펜션을 잡아놓고 난교를 즐기며 영상을 찍는데 처벌도 안 받는다.

올바른 사회 구현에 대한 열망이 넘치면 총구를 조준할 곳은 넘친다.

그럼에도 정의의 사도들은 어린 여가수나 사진작가, 개그맨과 SNS 논객들을 주요 타겟으로 삼는다.

실제로 사회를 바꾸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고, 스스로 책임을 지거나 변화 할 여지도 없이 손쉽게 마녀사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유를 소아성애 유발범으로 몰아붙여 손가락질 하고, 미소녀 사진을 찍는 로타 작가님과 그 팬들을 롤리타 컴플렉스 전도사로 매도하면서 이들은 싸구려 위안을 얻는다.

“나는 오늘도 옳은 일을 했다. 올바른 사회를 위해 내가 이만큼이나 앞장서는 지식인이다.”

 

ⓒ 방송인 겸 웹툰 작가 김풍 개인 sns

 

 

올바른 사람들이 엄한 예술가들이나 2015년을 2015년 답게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총알을 난사하는 일은 흔한 풍경이다.

따지고 보면 그들의 비난 자체를 비난할 수만은 없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그에 따른 비난 또한 자유로운 표현의 범주 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총알을 쏘는 이들이 호불호를 표시하고 비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적당함이라는 단어를 모른다.

아이유의 음원을 폐기하라고 서명 운동을 하고, 멀쩡한 사진전을 열지 못하게 압력을 넣는다.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발간된 책에 학문적 반론을 하지 않고, 대신 도서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대응한다.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비판하는 것, 그리하여 대중들이 스스로 해당 음악과 사진, 도서를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것 까지가 넘지 말아야 할 마지노 선이다.

그 선을 넘어 대중의 이름으로, 또는 국가의 이름으로 올바르지 않은 음악을 아예 유통하지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은 지긋지긋한 전체주의의 망령이다.

이 시대의 대중문화가 무엇인지 눈꼽 만큼의 관심도 없으면서 대중들 머리 꼭대기 위에 서있는 것처럼 훈계나 늘어놓는 올바른 지식인들.

입만 열면 정부를 욕하면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음악의 국정화, 사진의 국정화, 도서의 국정화를 열렬히 추구하는 모습을 볼 때면 우리가 아직도 선비의 나라 조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아무래도 이 나라를 망치는 건 어릴 때 못 놀아본 범생이들의 자격지심이 아닐까.

정치에서도, 사회와 문화 영역에서도 제대로 못 놀아본 사람들의 ‘올바름 강박증’이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시민들의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