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집회의 자유가 범죄의 자유가 되었는가

지난 14일 광화문 일대에서 있었던민중총궐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폭력의 등장 때문이다. 일부에서 예상했던대로 민중총궐기는 과격한 폭력시위 양상을 띠었다. 시위참가자들은 이미 쇠파이프, 망치, 장봉, 죽창, 새총, 횃불 등 갖가지무기를 들고서 현장에 집결했고 이무기들을 아쉬움 없이 활용했다. 경찰버스 주유구에 불을 붙여 폭파를 시도하려 했던 사람, 방패 사이로 힘껏 창을 찔러대는 사람, 방진 대오에서 이탈한 경찰을 끌고가는 사람 등, 일부 시위자들의 극단적인 행동에서는 그야말로살의가 느껴질 정도였다. 시위대는 공성전을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경찰병력을 공격했지만, 경찰들은 고작 물대포, 최루액 분사기 말고는 이에 맞설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두려움에 떨며 손에 들린 이 방패가 자신을 지켜내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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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일방적인 공격 밖에 없었던 전쟁이 끝나고 그 결과로 50여대의 버스가 파손되고, 100여명의 경찰관들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성향 언론과 정치인들은경찰의 과잉진압을 운운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 당시불법시위는 결코 용납치 않겠다고 엄중하게 말했던 문재인 야당 대표는박근혜 정부가 살인적 폭력진압을 자행했다는 궤변을 토해내기도 했다. “살인적 폭력진압이라니. 경찰들에게는 진압봉 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흉기를 휘둘러대는 시위대 앞에서 고작 방패 하나에 의지해 폴리스라인을 지켜냈다. 물대포와 최루액 분사기로 시위 대오를 무너뜨리는 수준에 그쳤던 경찰의 진압이살인적 폭력진압을 한 것이라면, 도대체 시위대의 행동은 뭐라고 표현을 해야하는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번민중총궐기를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53개 단체가 10만 명을 동원한 이 시위에내란선동죄로 감옥에 간 이석기 석방’, ‘국정원 해체’, ‘5.24 대북조치 해제 및 북한을 적대하는 정책 폐기등 어이없는 요구사항들이 섞여있었다는 사실은 일단 차치해두더라도, 이번 시위의 불법성과 폭력성에 강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 당당한 범죄행위 앞에 너무도 무능력한 공권력을 바라보며 절망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시위 한복판에서서울을 넘어 이 나라를 마비시키자”, “서울 모든 거리를 점령하고 청와대로 진격하라는 등 시위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경찰들은 이를 체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더 이상 이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민중총궐기 11대 요구안

ⓒ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일부에서는 이번 폭력시위를 옹호하기 위해 갖가지 궤변을 펼치고 있다. “경찰이 위헌 판결난 차벽을 세우는 불법 행위를 먼저했으니 시위대도 이에 대응한 것이다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미 시위 시작 전부터 갖가지무기로 무장하고서 집결한 시위대가 마치경찰의 차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논리부터 말이 안 되지만, 이 주장은 이미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차벽 설치는 위헌이 아니다. 차벽이 위헌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되는헌재 2011. 6. 30. 2009헌마406’의 판례를 살펴보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한 것은 시위가 없는 상황에서도 나흘 동안 차벽을 유지한 경찰의 행위이지, 차벽 설치 그 자체가 아니다. 판례 그 어디에도불법시위자의 이동을 막기 위해 차벽을 설치하는 것은 위헌이다라는 구절은 없다.

차벽

ⓒ 뉴시스

또 다른 궤변으로는 ‘3.1 운동, ‘4.19 혁명등을 운운하며 민중총궐기를 옹호하는 주장이 있다. 3.1 운동이나 4.19 혁명과 같은 정의로운 시위도 당시에는불법폭력시위로 분류되었으니 불법폭력시위라는 이유만으로 민중총궐기를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정당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법치주의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이루어졌던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굳이 폭력투쟁이라는 방식을 사용한 민중총궐기와 같은 선상에 놓는다는 것 자체가 궤변의 극치이자,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한 모든 이들을 모독하는 처사다.

어느 좌 성향 매체는 선진국에서 일어난 폭동 사진들을 나열하며, 마치 민중총궐기에서 있었던 폭력들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논조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물론 해당 폭동들을 선진국 경찰들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어떤 도구들을 사용했고, 얼마나 엄격한 태도로 범법자들을 대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었다. 이런 유치한 방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는 모습에 불쾌함이 느껴질 정도다.

미국 시위진압 인터넷 커뮤니티

<이미지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이번 시위를 옹호하고자 하는 이들의 인식 저변에는 군사독재 시절부터 넘어온시위에 대한 집착이 깔려있는 것 같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으로서 정당한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이를 국가의 폭력에 의해 억눌림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으니, 민주화를 이룩하고서 한 세대가 지난 오늘에도시위를 비판하는 의견자체에 반사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도저히 정당화 할 수 없는, 정당화 해서도 안 되는 불법 폭력 시위까지도 어떻게든 보호하고자 아집을 부린다.

민중총궐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절대시위 행위’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만일 경찰이 정당한 절차를 거친 합법 시위를 막으려 든다면 필자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민주시민의 신성한 권리를 위해 경찰에 맞서싸울 것이다. 그러나 민중총궐기는 ‘시위’라는 가면을 쓴 범법행위였다.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시위랍시고 애꿎은 전경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모습을 옹호하는 순간 스스로 세상 모든 시위의 정당성 그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감히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범죄의 자유’로 왜곡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법과 원칙이 바로 선 ‘정상적인’ 나라를 원한다. 강자와 약자, 권력자와 비권력자, 정부와 국민을 불문하고 공명정대한 법에 따라 행위하는 것이 법치의 기본이다. 이러한 법치주의가 지켜질 때만이 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있고, 이 나라 모든 이들의 자유와 권리가 지켜질 수 있다. 법을 소중히하고, 범죄를 비판하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가 당연하게 생각되지 않는 이 나라를 보며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