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천천히 망해가는 이유

알다시피 한국의 업무 환경은 갖가지 비효율로 가득하다. 불필요한 서류업무, 의미없는 절차상의 작업들, 형식을 위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프로젝트들, 하다못해 할 일이 더 이상 없는데도 연차가 낮다는 이유로 제 시각에 퇴근을 못하고 야근을 하는 흔하디 흔한 사내 부조리까지. 나는 이런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러한 ‘모순’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밥그릇을 쌓은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거다. 공인인증서, Active X, ISP와 같이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기만 하고 전혀 효율적이지는 않은 한국의 결제시스템들. 그런데 여기에 딸린 금융결제원 및 업계의 밥그릇 때문에 설치할 파일과 거슬리는 팝업들이 점점 늘어나며 복잡해질지언정 없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제도적 모순이 누군가의 돈이 되는 거다. 이와 유사한 예는 정말로 수없이 많다.

마사토끼

<이미지 출처: 웹툰 작가 ‘마사토끼’ 트위터 캡쳐>

공공기관들이 속속 도입한 VDI 망분리 시스템도 경영평가에 1점 숟가락 얹어 각 기관장의 모티베이션을 창조해낸 국정원과 관련 시스템 개발업체의 밥그릇 때문에 그전이라면 1분이면 끝났을 간단한 업무소요시간을 30분 넘게 늘려놓는 과부하와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더 복잡해졌으면 복잡해졌지 없어질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는 것.

486 운동권 사교육 강사들의 밥그릇, 이제는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 산업으로 자리잡은 시민단체 시위전문 조직업자들의 정기적 도심시위 밥그릇, 사회 수요에 비해 쓸모없이 비대해져만 가는 인문사회계 교수들의 밥그릇, 무능한 철밥통 교사들의 밥그릇.

어떤 사안으로 일단 밥그릇이 생기면 어떻게 그 일의 프로세스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더 많은 인력과 돈을 쏟아붓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같다. 자리와 예산을 늘리기 위해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더 복잡하게, 더 먼 길을 돌아서 처리하게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무슨 위원회를 장착하고, 규정 요강 지침을 장착하고, 프로토콜을 장착하고, 일몰제랍시고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별도 지침이 생기고, 이 일몰제가 유지되고 있는데 또 다른 일몰제 적용지침이 생기고, 이걸 가져가 붙이고 저걸 가져다 붙이고.

그러니까 그냥 일관된 줄기 하나면 될 시스템에 그 자리를 거쳐가는 간부가 자기 업적을 남기고 싶어 생색내려고 실무자를 닦달하고, 실무자도 뭔가 했다고 보여주고 보고하고 싶어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 한 명 거쳐갈 때마다 쓸모없이 복잡한 군더더기 가지가 다닥다닥 붙어 몇 년간 사람들이 몇 명 그 자리를 거쳐가면 그 원래의 줄기는 형체도 희미한데 잔가지만 무성한 가시덤불이 되어버리는 게 한국인들이 하는 ‘일’이란 것의 일반적 결과물이더라.

이데일리 포토 서울시

ⓒ 이데일리

일을 해서 부가가치가 생기는 게 아니라 일만 더 늘리는 것이다. 몇 년 전에만 해도 한 사람이 하던 일을 지금은 다섯 사람이 하게 되었다. 예컨대 간단하게 한 사람이 잠시 의자에 올라가서 전구를 갈면 되는데, 밥그릇을 늘리려니 의자를 잡고 있는 사람이 생기고, 그 의자 다리를 하나씩 잡는 다른 네 명을 만들고, 그 네 명을 감독하는 사람을 만들고, 그 네 명이 준수해야 하는 기괴한 프로토콜들을 만들고 하는 식이다. 결국 정작 본질적 업에는 하루에 30분도 안 쓰는데 곁가지 일들과 절차적 프로토콜을 위해 7시간 30분을 쓰게 만들어 15명 분의 관료제 자리를 더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래놓고, 쓸모없는 일늘리기에만 능한 사람에게 “이야, 이렇게 일을 체계적으로 만들어놓고 두툼한 보고서도 만들어내다니, 역시 자네는 유능한 기획통이야” 따위의 말을 한다.

이쯤되면, 어쩌면 20대들이 스펙만 뛰어난 바보라서가 아니라, 선배세대는 상대적으로 일이 심플할때 딱 핵심만 집중해 처리할수 있었던 것을 그들이 수십년간 시스템을 엉망으로 꼬아놓았기 때문에 그 와중에 핵심적인 것을 잘할 수 있다면 오히려 이상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알고보면 30대에 현대건설 사장이 된 이명박은 지금의 20대들보다 실무를 할때 자원은 적었을 지언정 온갖 곁가지 일들에 뒷다리는 덜잡혔을 것이란 말씀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이명박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들의 선배는 1시간 일할때 50분을 본질을 고민할 수 있었다면 지금의 20대들은 5분을 본질 고민, 55분을 쓸모없는 곁가지와 절차 고민을 해야 하는 셈 아닐까. 비유하자면 인터넷 쇼핑을 할때 그냥 카드비밀번호만 넣고 땡하던 시대의 사람과, 온갖 잡프로그램을 창을 닫았다 열었다 하며 깔아야 하고 비밀번호는 또 기호 숫자 알파벳을 섞어 30일마다 교체해 가면서 12자리 이상으로 두가지 설정해 인증서 하나 뜰때마다 박아야 하는 사람의 쇼핑에 드는 시간과 효율이 같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헛소리는 진지하게 듣지 말고 무시해야 하며, 상식적으로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절차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단 만들어지면 조직이라는 살아있는 생물은 무섭게 세포분열을 하고 증식해서 아무런 생산성 없는 일이 어느새 그 조직원들을 위해 거대한 의미가 되고, 생산성 있는 분야에서 만들어낸 자원을 헛되이 빨아먹기만 하는 기생세포들이 되더라. 그리고 그것을 혁신이니 고도화니 하는 이름으로 부른다.

결국 이런 확대일로의 과정은 절대 비가역적 양상을 띄게 되는데, 불편한 사람은 짜증을 내고 말지만, 거기 밥그릇이 걸린 사람들은 필사적이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