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테러와 호주의 성숙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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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정부의 대 ISIS(이라크-시리아 이슬람무장국가) 공습 지원으로 호주 내 테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Gettyimages>

 

필자는 현재 호주의 브리즈번에 살고 있다. 이 나라에서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고 곧 떠날 사람이지만, 최근 호주를 상대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IS(이슬람국가)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호주 토니 애벗 총리가 IS와의 전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이래 벌써 수 차례의 테러 위협이 있었다. 시티(중앙 도심지)에서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다가 테러 위협이 있다며 대피하라는 지시를 받고 허둥지둥 자리를 옮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로 몇 차례 대테러 작전이 펼쳐졌었고, 그 과정에서 테러 조직원들이 대규모 검거되기도 했다. IS는 그 조직원들에게 호주 내 민간인을 무작위로 납치하여 참수하라는 지령을 내린 바 있다.

강경한 태도로 IS를 비판하는 호주 정부와, 이에 맞서 무작위 테러를 지시한 IS 사이의 숨막히는 긴장감이 이어지던 중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지난 15일 시드니 도심의 한 카페에서 무장괴한에 의해 테러 인질극이 벌어진 것이다. 범인은 인질로 하여금 건물 창가에 서서 이슬람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있도록 지시함으로써 본인이 이슬람 무장 세력의 추종자임을 밝혔다. 총 17명을 억류한 인질극은 16시간 가량 이어지다 인질범 사살로 종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2명의 인질이 인질범에 의해 피살되었고, 4명의 진압경찰이 부상을 당했다. 세계는 이 사건에 주목했고 호주 내 테러 공포는 더더욱 심해졌다. 현재까지의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인질범은 IS 소속 테러 단체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며, 본인의 극단적인 신앙심에 의해 자의적으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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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오전, 시드니 시내 금융중심가인 마틴플레이스의 린트(Lindt) 초콜렛 카페에서 IS 지지자로 추정되는 무장괴한에 의해 카페 종업원 및 손님들이 인질로 붙잡혔다. 용의자는 인질로 하여금 이슬람 율법이 적힌 깃발을 들고 있도록 하였다. <이미지 출처: 호주 Skynews 방송 캡쳐>

 

시드니 인질극 테러가 이슬람 극단주의자 ‘개인’의 소행이라는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영화에 나오듯 테러 단체에 소속된 무시무시한 악당이 벌인 일이 아니라, 같은 공동체 내에서 비슷비슷하게 살고 있는 민간인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자칫 호주 사회 내 이슬람 교도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를 불러올까 걱정스러웠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이러한 테러 행위에 반대한다. 인질범이 경찰과 대치중이던 당일, 44개 호주 무슬림 단체는 “무고한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어떠한 행위도 반대한다”라는 공동성명을 냈다. 이들은 “그런 모멸적인 행동은 호주인들의 선량한 의지를 파괴하려는 짓일 뿐이며,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이를 따르는 호주 내 무슬림들이 업신여김을 당하게 만들 뿐”이라며 인질범을 강력 비판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내에 만연했던 무슬림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가 호주 내에서도 똑같이 반복될까 걱정스러웠다.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법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부터 시작해서, 군중들은 공포에 의해 수많은 증오 행위를 반복해왔다. 그런데 호주 국민들은 예상을 뒤엎는 놀라운 반응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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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러 직후 호주 SNS 이용자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한 “#illridewithyou” 해시태그 캠페인. 이용자명 Sir Tessa의 트위터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캠페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미지 출처: 트위터 @sirtessa>

 

인질극이 채 종료되기도 전, 호주 네티즌들의 SNS에는 “#illridewithyou” (내가 당신과 함께 탈 거예요)라는 해시태그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질극이 벌어진 직후 처음 올라온 해당 주제어는 당일 밤 9시까지 약 12시간 동안 무려 2만 2천여 명의 이용자들에 의해 게시되었다. 인질극이 종료된 차일 새벽 2시 경에는 이미 집계가 어려울 정도로 널리 퍼진 상태였다. 이 해시태그 캠페인은 극단적인 무슬림이 저지른 테러에 의해 차별과 핍박을 받게될지도 모르는 다른 무슬림들과의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시작된 캠페인이다. 무슬림 이웃을 보호하고 또 이들을 지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호주 국민들은 이 캠페인에 동참했다.

이 해시태그 캠페인은 시드니에 사는 레이철 제이콥스(Rachael Jacobs)가 본인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부터 시작됐다. 레이첼은 페이스북에 인질극 소식이 처음 전해졌던 오전, 그녀가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당일 레이첼은 인질극 속보에 주목하며 기차에 탔다. 잠시 후 기차에 탄 그녀의 옆자리에 히잡(무슬림 여성의 머리 두건)을 두른 무슬림 여성이 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무슬림 여성에게 주목됐고, 무슬림 여성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겁을 먹고 조용히 히잡을 벗었다. 무슬림 여성은 곧바로 기차에서 내렸고, 레이첼은 그녀를 뒤따라 내렸다. 그리고 무슬림 여성에게 “다시 쓰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탈 거예요 (I’ll ride with you)”라 말했다. 무슬림 여성은 울음을 터뜨리며 레이첼을 끌어안았다. 레이첼은 그녀의 경험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아무 죄 없는 무슬림 이웃들이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볼 지 모르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걱정하며 얼마나 큰 압박감을 느끼는지 이야기했다.

이 글을 본 또 다른 시드니 여성은 본인의 트위터 ‘@sirtessa’에 레이첼의 이야기를 전하며, “당신이 마틴플레이스에서 373번 버스를 정기적으로 탄다면, 또 당신이 종교적인 옷차림을 하고 있다면, 외롭다고 느끼지 마세요. 제가 당신과 함께 탈 거예요”라고 썼다. 이후 “#illridewithyou”라는 주제어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며 해시태그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호주 국민들은 이 캠페인을 통해 성숙한 민주시민이 어떤 것인지 보여줬다. 호주 국민들은 무슬림들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누리는 종교적 자유를 보호하고자 노력했다. 또 무슬림들이 겪을지도 모르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경계했으며, 이번 테러 사건으로 인해 무고한 무슬림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에 공감했다. 테러를 저지른 것은 무슬림이라는 집단이 아니라, 잘못된 사상을 지니고 있는 개인이었다. 호주 국민들은 개인이 저지른 행위를 집단 전체의 성향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이러한 문화를 이룩한 호주 국민들이 부러웠다.

우리나라를 생각해보자. 외국인노동자가 범죄 행위를 저지르면 사람들은 범죄자 개인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 집단 전체를 싸잡아 비난한다. 일부 몰상식한 여성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들은 한국 여성 전체를 비하하는 김치녀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다. 특정 지역에서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이 마치 그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집단적 문제인 양 지역차별 발언들을 서슴지 않는다. 이 말고도 무수한 사례들이 존재한다. 개인의 문제를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켜 비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개인의 인권과 존엄은 한 집단에 대한 부당한 증오에 의해 무시당하기 일쑤다.

호주 토니 애벗 총리는 호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민간 무슬림에 의해 자행된 이번 테러로 인해 호주 내 무슬림들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애벗 총리는 “이번 인질극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개인이 저지른 것이지 이슬람이라는 집단이 저지른 것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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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와 다원주의를 강조하며 시드니 테러로 인해 무고한 무슬림들이 억압 당하는 일이 없도록 당부하는 토니 애벗 호주 총리. <이미지 출처: iMBC>

 

시드니 테러에 반응하는 애벗 총리와 호주 국민들에게는 원칙이 있었다. 개인의 잘못을 집단으로 확대하지 않는 것. 지극히 당연한 것인데, 이를 부러워하는 현실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번 일을 통해 호주 국민들은 자유와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했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다원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언젠가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성숙한 문화를 이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