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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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총궐기 본부

 

 

정치인은 욕을 먹고 산다.

뭘 어떻게 해도 욕을 먹는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욕을 먹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굳건한 지지 기반이 있다는 전제가 충족되면, 계속해서 논쟁을 유발하고 욕을 먹으며 안티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야기 된다는 것, 소비 된다는 것, 뜨겁게 지지하는 사람들만큼 뜨겁게 증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의 가치를 올린다.

모두가 좋아하는 소리는 정답인 동시에 하나마나한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 정답을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아쉽게도 그들 대부분은 논쟁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의 학자로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 케이스의 대표적인 정치인이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손 전 지사를 흠모하지만,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그의 한계를 극복할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보다 욕을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박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한다. 국정의 모든 이슈 중심에 대통령이 버티고 서있다. 대한민국은 박 대통령을 열렬히 사모하는 사람들과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들로 양분 된 것 같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사안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설 자리가 별로 없다.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뭉칠수록 지지자들도 더욱 단단하고 뜨겁게 뭉친다. 어설프게 중도 노선을 추구하며 화합이나 통합을 꾀하는 대신 반대자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지지기반을 강력하게 구축하는데 애쓴다.

국정의 초점은 정권 재창출이 아니라 레임덕 방지에 맞춰져 있다. 퇴임 이후에도 특정 지역과 계파의 맹주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역설적으로 욕을 하면 할수록, 싫어하면 할수록 지지기반은 더 강고해질 것이다. 동시에 분노가 과해서 저지르게 되는 실수들이 부각되면 무당파층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

11.14 시위에 대해서 특별히 논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건조하게 이후의 여론 추이를 예측하자면, 들끓는 sns 타임라인과 달리 11월 3주차 국정 지지율은 유의미한 차이 없이 유지 될 것이다. 어쩌면 소폭 상승할 수도 있다. 참고로 16일 발표된 2주차 지지율은 1주차에 비해 소폭 하락했다. 언론들은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과 유승민 의원 부친상 빈소에 조화를 보내지 않은 영향으로 분석하고 있다. 주말 시위 이후 이번주의 국정 지지율은 23일에 발표 된다. (+ 편집자 주 : 이 칼럼이 발행되기 전 23일 국정 지지율이 발표됐다. 필자의 예상대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했고, 새정연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이만큼 욕 먹는 것을 잘 활용하는 정치인도 없었지 싶다. 사실 안티와 팬을 양분해서 바라보면 극성 지지자들을 의식해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박 대통령이 직접 극우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교과서 국면에서 혼을 거론하며 부적절한 표현을 꽤 했지만, 대체로 심하게 극우적인 위험 발언은 새누리당 내 다른 의원들이나 영남지역 공천을 바라는 관계자들의 입에서 주로 나온다. 물론 여야를 막론하고 그런 식으로 말 거칠게 하는 의원과 관계자들은 대부분 특정 정권 치하에서만 쓰이는 소모성 인물로 길게 보면 정치인생이 그리 평탄하지 않아진다.

범야권의 정치인 중에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욕을 잘 활용했었다. 반대 세력을 부각시키며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안티들의 지나친 분노로 인한 실책(탄핵 시도)을 발판 삼아 국면을 바꿔놓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심각한 레임덕에 시달렸고, 퇴임 시기부터 서거 전까지 지지율이 무척 낮았다.

글 서두에 언급했듯 안티를 활용하는 정치의 전제조건은 굳건한 지지세력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구 민주당 세력과 창당 주도 세력과의 갈등, 그로인한 호남 민심의 이탈 등 굳건한 지지세력이 무너지면서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반대 세력을 자극하는 안티 활용 정치는 대단히 절묘한 수이면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이도저도 아닌 정치인보다는 확실한 안티와 확실한 팬을 가진 정치인이 더 큰물에서 놀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여당 내부에서 문재인을 위험군으로 견제하는 관계자는 드물지만 대다수가 박원순을 경계한다. 여당 지지자들의 여론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여당 지지자들은 문재인을 싫어해도 증오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원순은 증오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박원순이 문재인보다 위험한 상대가 되는 것이다. 서울시장이 되며 일약 전국구 인지도를 얻고, 적지 않은 팬덤을 거느리게 된 박원순은 시의마다 노련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박원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한 지지기반으로 안티의 정치를 시작한 이재명은 잠시 반짝하더라도 오래가지 못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직접 극단적인 언어를 말하지 않고, 그 밑의 의원과 관계자들이 행동대장 노릇을 한다고 했는데 마찬가지로 박원순 시장은 반대 세력의 증오를 받되 극단적인 언어로 그들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시장의 롤은 이완영 의원 정도이다. 이완영 의원도 시위 국면에서 선진국이라면 총을 쐈을 거라는 강경한 발언으로 극우 세력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고, 잠깐은 반짝 뜨겠지만 오래 가기는 힘들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박원순 시장의 경우에서 보듯, 당사자가 직접 극우 또는 극좌적인 강경 발언을 하지 않으면서 열성 지지층과 안티를 양분시키는 게 핵심이다. 극단의 민심을 자극하는 강경한 발언은 거물 밑의 행동대장들의 몫이다. 그러니 안티의 정치는 어려운 수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존재 자체로 상대편의 심기를 자극하며 적과 아군을 선명하게 구분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티를 활용하는 정치가 쉬운 일이었다면 누구나 다 유력 대선후보가 됐을 것이다.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교과서 추진으로 한 차례 위기를 겪었다고 생각된다. 아군을 단단하게 결집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국정 교과서의 경우 보수 세력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였었다. 시장주의를 신봉하는 경제적 보수들은 국정 교과서 추진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보수 세력의 결속력은 약해지고 진보 진영의 응집력은 강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공산이 컸다. 국정 교과서 국면이 지속됐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안티 세력은 점점 커지고, 지지세력인 팬층은 분열 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말처럼 레임덕에 불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11.14 민중총궐기가 다시 박 대통령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경찰의 과잉진압 논란이 있고, 쓰러진 사람에게 물대포를 직사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지만, 어쨌거나 ‘폭력 시위 반대’는 보수 세력은 물론이고 중도층까지 하나로 모이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다.

새정연 국회의원들이 시위 현장의 폭력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경찰의 진압만 비판하는 것도 악수(惡手)다. 국정 교과서 문제로 분열하던 보수 세력의 여론이 11.14 이후 ’폭력 시위 반대’라는 큰 틀 아래에서 다시 합쳐졌고, 오랜만에 단단하게 뭉쳤던 진보 진영의 여론은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적하는 부류와 공권력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부류로 갈리고 말았다.

지지율 여론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할 것이고, 사람들은 더 이상 국정 교과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대신 시위에 대해서만 갑론을박을 벌일 게 분명하다. 안티 활용의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굳건한 지지세력, 아군의 여론이 조각조각 갈라지는 것이다. 기반이 약해지면 그동안 반대급부로 덩치를 키워온 안티 세력에게 잡아먹힐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교과서 추진으로 촉발한 위기를 민중총궐기 덕분에 수월하게 넘겼고, 계속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안티 활용의 정치를 이어나갈 것 같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그토록 염원하는 TK 물갈이에 성공한다면, 그로 말미암아 퇴임 이후 TK 지역의 맹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정치적 기반을 확보한다면 설령 정권이 바뀌어도 아주 오랫동안 박 대통령이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는 보수를 자처하는 동시에 친박이라는 계파를 싫어하지만, 호불호를 떠나 지금의 정계에서 박근혜 대통령보다 정치를 교묘하게 잘 하는 인물을 떠올리기 힘들다. 대통령으로서 행정과 통치를 잘 하느냐는 저마다 판단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좁은 의미의 정치를 놓고 보면 야당에도 여당에도 박 대통령을 이길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박근혜 대통령을 조롱하면 당장 속은 시원하겠지만 계속해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거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정치를 주시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반면교사를 얻은 듯 한 단계 발전한 안티 활용의 정치가 임기 말, 퇴임 후까지 성공적으로 계속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무척이나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