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군대에서 전역하던 날 몹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부대원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지휘통제실로 가서 전역을 신고했는데, 이제 그냥 집에 가면 된다는 거다. 이후 행동지침이라든지, 예비군 제도는 어떻게 운영되고, 참가하려면 뭘 어디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언제 어디서 몇 번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건만 전역식만 그럴싸하게 치르고 전역 이후에 대한 교육은 없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기분으로 사회로 나갔고, 주변 전역자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겨우 예비군 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 어느 지인은 이미 오래 전에 전역하고서 예비군을 몇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아직 이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에 도움을 얻을 친구나 선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싶다. 예비군 동대에서 전화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을까?

예비군 네이버 검색

이미지 출처: 네이버 검색 화면 캡쳐

한국의 공공 서비스가 대개 이 모양이다. 이것저것 많기는 한데, 서비스를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제도적 절차는 어떻게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그것이 서비스의 기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시기별로 다양한 공공 서비스를 거쳐가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행해지는가를 고민해보면 한숨이 나온다. 각각의 서비스는 자신들의 일에만 집중하고, 그 일이 종료되는 시점에 서비스 이용자들을 무책임하게 다음 단계로 떠넘겨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얼마 전 한 설문기관에서 20대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사회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사회초년생들이 납세, 연금, 보험 등의 제도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 관해 질문했고 이에 대한 답변을 영역별로 나눠 분석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돈과 얽힌 각종 사회 제도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를 올바로 처리하고 있는 20대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절대다수는 부모에게 의탁하거나, 나몰라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세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사람도 여럿 있었다.

사회초년생

ⓒ 위키트리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단순하다. 이에 관하여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로 나아가 실제 삶과 부딪쳤을 때 혼란스러워 하지 않도록 교육하는 것이 12년에 걸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기본방향이어야 한다. 최소한 기본 교육서비스가 끝난 시점인 고등학교에서는 기본적인 납세 문제를 처리하는 방법 등에 관해 가르쳐줬어야 한다는 말이다. 졸업 이후 당장 법적으로 성인이 되어 사회로 진출하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가 그렇게 하고 있다. 세금 신고를 실습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본인이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복지 제도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는 과제를 내주기도 한다. 물론 이런 교육들이 완벽한 준비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대학 입학 또는 취업에 맞추고 있는 우리나라 고등학교에 비하면 훨씬 낫다.

당장 사회로 진출한 청년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배운 적도 없고, 자세히 가르쳐주는 곳도 없다. 적금에 대해서들 이야기하는데, 금리니 뭐니 뭐가 유리한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주택청약통장 같은 건 잘 들어본 적도 없고, 당연히 CMA ELS는 뭔지도 모른다. 내가 내고 있는, 내지는 내게 될 세금은 어떤 것이 있고, 또 여기서 공제를 받거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건  뭐가 있는지는 한참을 공부해도 헷갈린다.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은 더욱 막막하다. 개인사업자니 뭐니 복잡한 절차들이 너무 많다. 그나마 대학이라도 다니면 도와줄 선배나 지원센터가 있는데 어린 나이에 당장 사회로 나가 벤처를 하려는 친구들은 앞이 캄캄하다. 세무서나 은행을 찾아가 물어봐도 한계가 있다.

혜택을 주는 서비스가 있어도 찾아먹지 못하는 것이 많고, 반대로 제대로 알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것도 허다하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내보냈으면, 이 막막한 사회초년생들을 교육하고 도와줄 시스템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대상자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다 알아서 잘 하는 사람도 많다고? 물론이다. 똑똑한 청년들 중에는 이미 재테크에 맛이 들려 돈 굴리며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회 공공서비스란대중을 위한 것이다. 알아서 똑똑해지기를 요구하는 건 부당한 처사다.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복지다. 별 게 아니다. 지금 당장 한국에 필요한 복지는 바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제도와 공공 서비스에 대해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이러한 제도를 통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의 구축이다. 전반적인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는 거다. 자꾸 겉으로만 그럴싸한 복지를 무분별하게 늘려대는 것보다,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제도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더욱 증진시킬 것이다. 서비스나 제도를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부처와 부서의 구색 맞추기에만 급급하면 개인과 사회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유리될 것이다. 개인이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나 인프라에 의지하기 힘든 상황은 후진국의 특징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