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네트워크’와 오늘날의 매스미디어

*본 칼럼은 영화 ‘네트워크’ (시드니 루멧 1976作)에 관하여 쓴 영화 소개 칼럼입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필자는 영화를 잘 모른다. 영화를 공부해본 적도 없을뿐더러, 영화의 작품성을 논할 수준의 안목을 갖추지도 못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화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악당을 무찌르거나, 자동차로 변신하는 로봇들이 지구를 구하는 부류의 영화로, 다소 유치하더라도 보는 즐거움만 있으면 행복해하며 보는 편이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이며, 따라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름의 영화 고르는 기준이다. 말하자면 너무 난해하거나 심오한 영화는 질색이라는 거다.

지금부터 소개할 영화, 시드니 루멧 감독이 1976년에 내놓은 <네트워크>도 처음에는 보기가 망설여지던 작품이었다. 필자보다 늙은 고전 영화는 어딘가 부담스러운 감이 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무려 40년이라는 세월을 건너 이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의 메시지에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 초능력자들이 나오거나, 변신 로봇들이 나오는 영화는 아니지만, 참 “통쾌한” 영화다. 고전이라 칭해지는 영화가 반드시 따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영화다.

네트워크 포스터

​▲ 시드니 루멧 감독이 1976년에 내놓은 영화, 네트워크. 매스미디어를 풍자한 작품으로 감독의 비판의식이 잘 담겨있다. 본 영화가 내놓은 명대사들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영화 “Network” 포스터, Sidney Lumet, 1976>

 

<네트워크>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방송국 ‘UBS’의 앵커인 ‘하워드 빌’은 뉴스 시청률이 떨어지자 방송국으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는다. 그 충격에 하워드는 마지막 방송 도중 자살하겠다고 선언한다. 하워드의 자살예고는 엄청난 이슈가 되었고, UBS의 시청률은 크게 증가한다. 이에 UBS는 ‘하워드 빌 쇼’를 만들고, 쇼는 연이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하워드는 괴로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매스미디어의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했다. 매스미디어가 수익을 위해 인간을 어떻게 착취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시드니 루멧 감독은 40년 전 당시 매스미디어의 문제점들을 포착하여 영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70년대 매스미디어를 과장•풍자하여 영화 속에 담았는데, 그 모습이 오늘날과 놀라우리만큼 흡사하다.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철학을 잃었다.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그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각자의 입장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돕는, 그래서 사회를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겠다는 수 세기 전의 저널리즘 정신은 시대착오적인 농담으로 전락해버렸다.

미디어들은 그 이익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 언론이 갖춰야 할 도덕성이나 윤리의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타인의 고통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고, 필요에 의해 대중의 적을 만들어내며, 사생활 보호의 권리를 박탈하고, 미디어에 노출된 이들을 착취하고, 섹스와 폭력을 상업화하며, 이익을 위해 싸움을 부추기고, 사회의 혼란을 유도한다. 대중매체 간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더욱더 자극적인 컨텐츠를 만드려 하다보니, 그 품격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이제는 그런 저급함이 대중적 유행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매스미디어의 토사물 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이 구역질 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 가슴 속 깊은 곳에 있는 인간다운 면모가 죽어가고 있다. 영화 <네트워크>는 가슴을 파고드는 대사들로 이러한 현실을 지적한다.

“당신이 바로 TV야.

고통도, 기쁨도, 이제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지.

삶이 진부한 놀음일 뿐이라고 생각해.

사고, 전쟁, 살인, 죽음… 당신에겐 그저 한 잔의 맥주와 똑같아.

일상의 모습은 유치한 코미디와 같지.”

시청률을 위해 더욱 자극적인 방송을 끊임없이 강요받던 하워드 빌이 결국 이성을 잃고 전국 방송에서 외친다. “I’m as mad as hell, and I’m not going to take this anymore!” (나는 지금 미친 듯 화났다.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다!) 이 방송을 보던 전국의 사람들은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와 함께 분노했다.

분노하는 빌하워드

​▲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대중매체의 저급함에 분노하는 극중 주인공 하워드 빌. <이미지 출처: 영화 “Network” 스틸컷, Sidney Lumet, 1976>​

 

지난 2014년은 유독 사건사고가 많은 해였다. 돌이켜보면 이러한 사고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얻고자 했던 수많은 매체들이 있었다. 사고 희생자들의 보험금을 계산한 매체가 있는가 하면, 자극적인 내용을 위해 허언증이 있는 인물과 인터뷰를 주도한 매체도 있었다. 대중의 호응을 위해 음모론에 은근슬쩍 편승하는 몇몇 매체들의 뻔뻔함은 기가 찰 정도였다.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사고로부터 막 구조된 어린 학생에게 친구의 죽음에 관해 묻는 일도 있었다. 슬픈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찍듯 오열하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클로즈업 해 잔잔한 음악과 함께 트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소리칠 차례가 아닐까? 한낱 미디어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해 하워드 빌처럼 분노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영화 <네트워크>. 오늘날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당신이라면 찬사를 아끼지 않을 영화다. 하워드 빌이 그러했듯, 필자 역시 “미친 듯이 화가 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기에”, 이 영화를 당신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