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노동개혁 정신을 기리며

지난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동안 애도물결이 일었다. 고인의 정치적 공과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는 이 시점에 YS의 가장 큰 업적인 ‘개혁’에 관해 이야기할 필요를 느낀다.

김영삼 서거 이데일리

ⓒ 사진공동취재단

YS는 구조개혁에 가장 성공한 대통령!

나는 마거릿 대처의 구조개혁은 왜 성공했는가, 남미 국가들의 구조개혁은 왜 실패했는가를 책으로 쓴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YS가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구조개혁 의지가 가장 강했고 구조개혁에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확신한다. YS는 한국경제를 IMF 관리체제로 몰아넣은 오점도 남겼지만 그의 개혁정신은 기릴만하다고 믿는다.

YS는 1983년 23일간의 단식투쟁으로 민주화에 불을 지펴 1987년 6·29 민주화선언을 이끌어냈고, 결과적으로 ‘문민정부’를 탄생시켰다. YS는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공직자 재산 공개를 실현했다. YS는 전두환·노태우 두 군 출신 전직 대통령을 단죄하여 ‘역사 바로 세우기’ 주춧돌을 놓았다. YS는 ‘빅뱅’으로 불린 마거릿 대처의 금융개혁 같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여 한국경제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졌다.

YS는 취임과 함께 ‘세계화’ 기치를 내걸고 한국경제를 과감하게 개방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 문턱에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당시 김대중 대표가 이끈 야당은 한국의 OECD 가입을 얼마나 거세게 비판했던가. 정권 말기에 YS는 노동개혁을 추진하여 노동시장 유연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DJ의 억지’ 때문에 노동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글의 목적은 YS의 노동개혁을 이야기하려는 데 있다.

 

DJ의 억지로 백지화된 YS의 노동개혁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 선진국들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관심이 쏠려 노동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마거릿 대처가 1979년 정권을 잡고 구조개혁 차원에서 노동개혁에 성공하자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이 이를 따랐고, 이를 지켜본 OECD가 1990년 <구조개혁의 진전>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여 회원국들로 하여금 영국, 뉴질랜드, 아일랜드를 벤치마킹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것이 그 계기다. 일부 좌파들은 이를 놓고 지금도 ‘신자유주의 망령’이라며 호되게 비판한다.

YS는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YS는 선구자적인 감각으로 경제 개방을 뜻하는 ‘세계화’ 구호를 외쳤다. 그 일환으로 YS는 정권 말기 무렵인 1996년 4월 ‘신 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여 노동시장 유연화 계획을 세웠다. YS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설립하여 일차적으로 노동관계법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개정의 주요 내용은 ‘변형근로시간제와 정리해고제 입법화, 파업 요건 강화, 무노동무임금 법제화,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이었다. 야당과 노동계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YS의 신한국당은 1996년 12월 16일 이들 법안을 단독으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아시아뉴스통신 김대중

ⓒ 아시아뉴스통신

당시 김대중 대표가 이끈 평민당은 기를 쓰고 반대 투쟁에 나섰다. 노동계가 합세하여 총파업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를 버티지 못하고 YS는 노동관계법 개정을 백지화시켰다. 그 후 1997년 중반부터 동남아로부터 금융위기 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자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환율 방어에 안간힘을 쓰다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자 한국경제는 1997년 12월 3일 IMF 관리체제에 들어가고 말았다. 

IMF는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구조개혁을 요구했다. YS는 DJ에게 대통령직을 미리 인계했다. DJ는 IMF의 요구에 따라 만반의 준비를 갖춰갔다. DJ는 1998년 2월 정권 인수와 함께 경제·정부·사회·미래부문에 걸쳐 ‘국민의 정부 품질혁신을 위한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여기서는 노동·기업·공기업·금융개혁으로 일컫는 ‘4대개혁’ 가운데 하나인 노동개혁을 이야기한다.

 

DJ의 노동개혁은 한국 노동시장을 경직시켜!

 김대중 정부가 내세운 노동개혁의 주요 내용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사회적 합의체 도출, 사회안전망 구축’ 세 가지였다. 이 가운데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는 목표이고, ‘사회적 합의체 도출’은 목표를 추구하는 절차이며, ‘사회안전망 구축’은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격의 보완장치였다. 여기서는 ‘사회적 합의체 도출’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이야기한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사회적 합의체’로서 1998년 1월 10일 ‘노사정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전문가들은 노사정위원회는 노동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 요인이 되리라 보고 거의 모두 입을 모아 반대했지만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끝내 이를 발족시켰다. 노사정위원회란 노·사·정 및 공익이 참여하여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그런데 노사정위원회는 그 실체가 조합주의(corporatism)로, 다양한 이익집단들을 정책 결정에 참여시키고, 이들 이익집단들의 합의를 통해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같은 성격을 지닌 노사정위원회는 합의 도출은커녕 노동시장만 경직시키고 구조개혁을 어렵게 만들었다. 한 예로, 민노총은 1998년 노사정위원회 첫 모임에만 참석했을 뿐 외곽을 돌면서 지금까지 노조의 정치세력화만 부추겨왔다. DJ의 4대개혁은 성공하지 못한 개혁으로 평가받는다. DJ는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 장관 이상으로 대접해줬는데, 표밭이 노동자·농민이라고 믿었던 DJ가 사회·경제정책 결정에 민노총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치세력화된 노조는 당연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구조개혁을 막아선다.

뉴시스 노동개혁 반대 민주노총

ⓒ 뉴시스

 

정리해고법은 고용보호를 강화시켜 정규직 해고를 어렵게 만들어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한 후 1998년 2월 6일에 60개항의 사회적 합의사항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 또는 집단해고를 허용하는 법과, 28개 업종에 한정된 근로자파견법을 도입했다. 이 법이 도입된 1998년 OECD는 회원국들의 고용보호를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한국은 정규직 해고가 어렵기로 OECD 회원국 가운데 포르투갈에 이어 2위로 밝혀졌다. 정규직 해고 관련법은 그 후로 바뀐 것이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3~26조와 관련 시행령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가 도입한 정리해고법은 정규직 고용보호만 강화시켜 노동시장 유연화 아닌 노동시장 경직화에 기여했다. 근로자파견법 도입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기여했지만 민노총의 파워에 밀려 28개 업종에 한정되고 말았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김대중 정부의 고용보호와도 관련되는 이야기. 한국 노동시장은 규제가 약하기로 김대중 정부에서 123개국 가운데 58위였는데 그 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157개국 가운데 143위로 악화되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가 심하기로 박근혜 정부에서 157개국 가운데 15위다. 상당 부분 DJ의 노동시장 경직화의 기여라고 봐도 된다. 

YS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노동개혁을 추진하여 경제 활성화를 꾀했던 YS의 노동개혁 정신을 기리며 이 글을 쓴다.

 

 

※본 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노동개혁 정신을 기리며” <자유경제원/ 박동운 단국대 교수>를 수정, 편집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