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을 쓴 민중, 복면을 벗은 시민

11월 14일 광화문에서 일어난 ‘민중총궐기’ 의 폭력사태 이후 발의된 이번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개정안, 일명 ‘복면금지법’ 을 두고 특정성향의 단체나 논객들은 연일 복면금지법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뉴시스 복면

ⓒ 뉴시스

이 법의 실효성 여부나 개인적 견해를 차치하고, 이 논란이 명백한 불법 폭력시위를 전 국민이 목도한 뒤에 벌어지는 것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폭력시위에 대처하는 한국 경찰의 나약한 공권력, 그리고 그에 대한 더 나약한 존중, 불법을 행하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낮은 준법정신, 그리고 그런 행위를 유력자들이 두둔하고 나서는 이 참담한 현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 부조리는 ‘시민’들이 스스로를 ‘민중’이라 규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먼저 ‘민중’ 과 ‘시민’ 의 정의를 살펴보자.

‘인민’ 이란, 북괴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 우리에겐 공산전체주의적 배경을 담은 단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실은 ‘자연인’ 을 칭하는 가장 폭넓은 개념이다. 영어의 ‘people’ 과 가장 유사한 단어. 고대 중국에서 ‘인’ 이란 지배계급, ‘민’ 이란 피지배계급을 의미했다. 공자도 ‘인’ 과 ‘민’ 을 구분하여 썼다. 人은 사랑의 대상이었고 民은 다스림의 대상이었다. (節用而愛人 使民以時; 예산을 절약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백성을 부릴 때는 그 시기를 맞춰 한다; 논어 학이편) 청나라 후기의 근대화 시기가 되어서야 이런 구분이 무너지고, ‘인민; people’ 의 개념이 등장한다.

그런 연유인지, ‘민중’ 은 피지배의 요소가 가미된 표현이다. 국어사전에서는 민중을 “피지배 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 으로 정의한다. 불특정의 저소득층, 하층민, 노동자계급, 교육받지 못하고 힘없는 비자본가의 군집이 바로 민중이며 민초다. 민중은 약하고 교양 없으며 못 배웠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또한 민중은 그 자체로 ‘공동체’ 의 의미가 있다. 계급과 무리 전체의 모임, 뜻을 함께 하고 행동을 함께 하며 책임도 나눠 지는 하나의 단위이기 때문에 집단 중 일부가 자신들이 벌인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한 사람에 대한 탄압은 곧 민중 전체에 대한 탄압이라 주장하고 또 저항한다.

이에 비해 ‘시민’ 은 훨씬 더 좁은 의미가 된다. 시민은 누군가의 위에도, 아래에도 속하지 않는 평등한 존재다. 시민의 권리(right)는 천부적이기 때문이다. 시민은 자신의 시민의 역할을 “자각” 하고, 권리에 대한 “책임” 을 진다.

시민의 기본 단위는 평등한 개인이다. 존 로크의 견해에 따르면 권리는 곧 개인이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따라서 권리의 행사는 곧 그 개인의 책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시민’ 의 어깨에는 반드시 책임이라는 요소가 무겁게 지워진다. 시민은 다른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모든 시민은 자기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하는 미국의 수정헌법 상의 시민권(citizenship)에 대한 해석에는 반드시 법치라는 원칙(be subjected to the laws of the government)이 포함된다. ‘시민’ 의 정의를 사법권 내에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는 것이고, 법에 따르는 것이 시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공식 스피치를 시작할 때 미국인들을 “인민(people)” 이 아닌 “시민 동지 여러분 (fellow citizens)”으로 칭하는 것은 이런 ‘시민의식’ 과 무관하지 않다.

cagle 시민들

ⓒ Cagle

이렇듯, 스스로를 ‘민중’ 으로 규정하는 것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포한다. 특권(Privilege)을 누리고 싶을 뿐, 권리(Right)에 따르는 의무는 수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소요사태의 총책임자가 도주하여 체포에 저항하면서,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국가가 국민을 죽이고 있다” 며 또 다른 ‘상처받은 민중’ 의 궐기를 선동하는 것을 보면 그런 왜곡된 사고가 여실히 드러난다. 피지배계급이고 노동자이며 비자본가인 민중은 법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약하기 때문에, 그런 민중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추궁은 즉시 멈추고 그와 무관하게 민중의 요구를 들어주어야만 한다는, 극도로 타락한 ‘민중의식’ 이다.

또한, 현대사회에서 이 ‘민중’ 이라는 집단의 구성원들은 실제로 못 배우고 힘없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 지도부는 상당한 교육수준과 재력, 권력을 쥔 사람들이다. 그러나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 오면 달라진다. ‘우리는 너무나 약하고 못 배운 집단이니 우리 말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직 이런 무식하고 폭력적인 방법밖에 없다’ 고 강변하기 시작 하는 것이다.

‘복면’ 이라는 것이 갖는 상징이야말로 그런 ‘민중’ 이라는 언더도그마의 가녀린 주인공의 정체성이다.

군중 속에 숨어 폭력을 자행하고도 익명성을 무기로 그 행동에 책임을 지지는 않겠다는 의식이자, 나는 책임 있는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민중’ 이고 ‘군집’ 일 뿐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실제로 11월 14일 있었던 시위에서 폭력행위가 확인된 시위대의 74%, 세월호 1년 시위에서 불법을 주도한 시위대의 90%가 얼굴을 가렸다는 사실은 ‘복면’ 의 상징성과 불법행위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막기 위해 얇은 손수건을 입 주변에 둘렀다는 변명은 설득력이 없다)

뉴시스 민중총궐기

ⓒ 뉴시스

다른 나라는 어떨까. 각 언론이 논란에 발맞춰 선진국의 집회 중 복면 착용 금지 사례를 제 나름의 시각과 잣대로 분석하며 경쟁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서 복면 금지법을 따로 두는지, 아니면 가중처벌조항을 두는지의 여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그리고 아마 대부분의 후진국도) 불법행위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엄정하게 대처한다. 선진국 경찰은 폭력시위가 벌어질 때는 반드시 압도적인 무력으로 진압을 하며, 경찰이나 시민의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대상을 완벽하게 무력화 시킨다. 야당 정치권이 그를 빌미로 자국 행정부를 격렬히 비판하거나 지도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 나는 경찰을 때리더라도 경찰은 나를 때리면 안 된다는 주장은 심지어 시위대 스스로도 웃을 일이다. 이는 이들의 사고는 개인이 스스로 벌인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민의식” 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개인의 얼굴은 곧 개인의 정체다. 시민은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그를 통해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진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시민’ 이 ‘민중’ 이라는 복면 뒤에 숨는 것은 우리 낮은 준법정신과 무너지는 공권력의 근원이며, 한국사회의 발전과 혁신을 저해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다. 저들은 하루 빨리 ‘민중’ 이라는 복면을 벗고 한반도 역사상 가장 부강하고 영광된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한국의 책임 있는 ‘시민’ 으로 살아가야한다.

‘시민’ 의 요구는 ‘시민’ 으로서 ‘시민’ 답게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