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수의사를 아십니까?

1.

[2008년 광우병 시위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광우병 관련 자극적인 웹툰과 포스터, 나도 봤다. 행간에 악의가 흘러넘쳤기에 믿기는 어려웠다. 솔직히 무서운 마음도 조금 들었다. 전문지식이 없으니까. 그래서 진위여부가 궁금했다. 아마 ‘전문가 행세’를 해대던 말많은 사람들조차, 내심 ‘진짜 전문가’의 믿을 만한 식견을 기다렸으리라 생각한다. 다행히 과학자와 의사들은 인터넷상에 떠도는 온갖 그로테스크한 괴소문이 허위사실이라고 밝혀주었다. 단, ‘진짜 전문가’들의 태도란 아무래도 다소 방어적이기 마련인지라 – 그들의 발언은 객관적이고 신중했지만, 원인모를 갈급에 시달리는 대중에겐 탄산빠진 사이다 같았다.

[거짓선동의 영향력은 쉬이 사그러들지 않았다.]

 

2.

[광우병의 위험성이 분명한 사실임을 강력히 주장한 수의사가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했다. 우린 그를 각종 진보 언론 및 TV 토론회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는 보기 드물게, 확신에 찬 과학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의 정책국장이기도 했던 그는 미국산 소고기의 안전성에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산 소고기 수입 중단을 강력히 주장했는데, 그 주장은 국내 분위기 상 보통 다음과 같이 자동 번역되어 들리기 십상이었다. “당신이 인터넷에서 접한 무시무시한 내용은 결코 거짓이 아니야!”

학자적 양심을 지킨답시고, 가능성과 위험성과, 보균률과 발병률과, 장점과 단점과, 연구된 부분과 연구되지 않은 부분과, 자기가 아는 영역과 자기가 모르는 영역을, 이리저리 균형잡아 둘러대는 샌님들의 미적지근한 레토릭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의 발언은 광우병에 대한 입장 차이가 마치 주류학계와 비주류학계 사이에 존재하는 – 어떤 불공정하고 불가해한 억압적 갈등상황 때문에 생겨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광우병 문제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나 투쟁인 양 해석될 여지가 형성되었다.

[‘진짜 전문가’가 전에 없이 크고 또렷한 목소리로 우렁우렁 외친 것이다.]

 

3.

[광우’뻥’은 이불’뻥’차는 흑역사로 전락해버렸다.]

어느새 미국산 소고기의 상태가 정말로 어떠한지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지 않게 된 지 오래였고, 공론장의 양상은 광우병에 대한 찬반론 같은 것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질병 자체를 찬성과 반대로 나누어 가치판단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심지어는 신뢰도 높은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이 교묘한 오역을 통해 선동에 앞장서기까지 했다. 그렇게 전염성 강한 관념의 흑사병이 온나라를 뒤덮어버렸다. 시위의 끝물에 이르러서는 아예 ‘미국산 소고기’도, ‘광우병’도 사라졌다.

[실제 시위 현장엔 오로지 ‘이명박 OUT’이 적힌 피켓만이 남아 있었다.]

 

4.

[‘그땐 그랬지’ 대충 넘어가려는 자들에게 ‘그때 왜 그랬소’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대체로 ‘중요한 건 광우병이 아니라’는 첫마디. FTA가 어쩌고 검역주권이 저쩌고 하는 말은 부록이다. 허허, 그건 그런 게 아니란다. 통달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 뒤에 무슨 대단한 선의나 말못할 대의가 따로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마냥 – 짐짓 점잖은 표정을 짓는다. “미국산 소고기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국인의 뇌에 구멍이 뚫린다 = 미국소는 미친소라 더럽고, 한국인은 유전자 특성 상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메시지로 점철된 만화가 얼마나 많았나. 잡아떼기 민망할 정도로 최근이 아니던가. 이 루머야말로 인간광우병을 유발한다는 변형단백질보다 극악한 ‘뽕’이었건만. 그게 그런 게 아니면 뭔데?

백번 양보해서 그들 말대로 중요한 건 광우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FTA도 아니고 검역주권도 아니며, 그래, 그저 사람일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문득 궁금해진다.

[‘그때 그랬던’ 그 광우병 수의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5.

[그는 자살했다.]

당시 그의 별명은 “촛불 의인”. 한때는 여러 토론회와 시위장에서 불러주는 스타였지만, 시간이 흘러 그에게는 생활고와 지병만이 남았다. 꾸준히 광우병 관련 문제제기 활동을 한 것으로 보아 그에게는 나름의 진심과 신념이 있었던 것 같다. “캐나다 소고기도 위험하다”거나, “사람도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다”는 등의 글을 기고한 적도 있다. 허나 당시의 기억이 많은 이들에게 이미 좀 민망한 것이 되어버린 이상, 그의 발언 역시 이제는 ‘믿을 만한 진짜 전문가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당연히 공신력도 설득력도 미미해졌다.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들러리만 서느라 병원은 경영난에 허덕였고, 책도 쓰고 번역도 했지만 “촛불 의인”이라는 간판과 붕뜬 명예 이외에는 실속있는 성공이라 할 만한 것을 전혀 거두지 못했다.

대신에 – 광우병 수의사의 의로운 확언을 열심히 팔아먹던 언론은 그를 기반으로 많은 구독자와 돈을 챙겼다. 그가 순진한 정의감을 가지고 진실로 믿어 연구했을 전문지식은 정치적 야욕을 지닌 특정 세력에게 인용됨으로써 이용당했을 뿐이다. 그와 가까웠던 일부 언론은 짤막한 기사 몇 편으로 그를 배웅했다. 참으로 편리한 청산이다. 음모론이 취미인 자들은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며 끝까지 그를 제 정신승리의 도구로써 활용했다.

[그 죽음조차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잊혀졌다.]

 

6.

[사람을 함부로 돌멩이로 만드는 자는 누구인가.]

사람을 투석기에 장전하는 자는 누구인가. 미워하는 이에게 던지는 돌멩이처럼, 사람의 생명을 내던지는 자들은 누구인가. 투석기의 틀에 잘 들어가도록 사람의 장애와 상해와 죽음과 아픔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반죽하는 자는 누구인가. 사람의 영혼을 시멘트와 함께 거푸집에 부어, 적을 때리는 무기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순수한 이의 성정을 요리하여 일부러 위험한 자리에 내몰고는, 근거로 도구로 이용하고 또 추켜세워 박수치는 자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온몸이 구겨지고 꺾여 피고름으로 굳은 ‘인간 돌멩이’를 광장에 던져대며, 입으로는 그 돌멩이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말하고 염려하고 추모한다 지껄이는 저 세련된 악마들이 당신의 눈엔 보이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 글은 자유지기님이 자문을 구하며 보내주신 원문 소스를 가지고 수정 및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