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의 ‘선비질’을 바라보며

선비

​▲ 고고함의 상징이었던 선비가 인터넷 하위 문화에 의해 조롱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이미지 출처: 한국경제>

 

요즘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신조어 중 하나가 “선비질”이라는 단어다.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래된 이 신조어는 협의적으로는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달려드는’ 꽉 막힌 행동을 칭하고, 광의적으로는 윤리와 도덕, 논리와 이성을 내세우며 다수의 사고방식에 딴죽을 거는 행위를 일컫는다. 선비질을 하는 사람이 도덕적 혹은 이성적 목소리로 다수를 비판하면, 그 의견이 합리적이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를 “씹선비”라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단어로 폄하하는 것이 요즘 인터넷 문화다.

이 신조어는 색깔이 강한 특정 커뮤니티 싸이트에서 자주 사용된다. 커뮤니티 집단 내의 ‘놀이문화’에 동조하지 못하고, 이를 훈장질하는 이에게는 어김없이 씹선비라는 낙인이 찍힌다.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을 칭하던 선비라는 단어가 어느새 부정적이고 모욕적인 말이 되었다. 혼자만 고고한 체 하는, 위선 떠는 사람들을 저격하는 말이 된 것이다.

선비질

​▲ ‘진지 빨며’ 선비질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그림. <이미지 출처: 엔하위키 미러>

 

그런데 이를 가만 생각해보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정 커뮤니티 싸이트의 이용자들이 그들만의 “놀이문화”라고 주장하는 행위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온 패륜 행위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억압된 저열한 본능을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 놀이문화라는 이름으로 배설하는 것이 일부 커뮤니티 싸이트에서 보이는 작태다. 이들의 놀이문화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집단 내부에서만 허용되는 “위악”의 일종이며, 기존의 인륜적 가치에 크게 어긋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뚤어진 놀이문화를 도덕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것이 위선이라며 힐난받을 일이란 말인가?

일베 놀이문화

​▲ 대표적인 커뮤니티 싸이트 중 하나인 ‘일베’의 문화는 “젊은 세대가 사회적 금기를 깨는 가학적 놀이”라고 전문가들에게 평가되고 있다. <이미지 출처: 경향신문>

 

사실 씹선비와 선비질이 유독 경멸의 대상이 된 배경에는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와 오늘의 유머(이하 오유)가 있다. 진보 성향 커뮤니티인 오유 유저들은 보수 성향이 강한 일베 유저들을 비윤리, 부도덕한 집단이라며 강력히 비판해왔다. 일베의 놀이문화를 사회악이라며, ‘일베충’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일베 회원들을 집단적으로 멸시했다. 양 커뮤니티 간의 신경전이 극에 치닫던 무렵, 오유 회원 간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회원 간 강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오유강간사건피해자

▲ 오유 강간 사건의 피해자가 작성한 글. <이미지 출처: 오늘의 유머>

 

​이 사건은 그간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일베를 비판해왔던 일부 오유 회원들의 이중성을 드러낸 오유의 치부였다. 일베 회원들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놓치지 않고 맹렬히 비판했으며, 오유 회원들의 표리부동을 비꼬기 위해 그들을 ‘강간하는 씹선비’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 일베에게 씹선비라는 말은 이중적인 진보세력에 대한 비난과 증오의 단어가 되었다.

결국 씹선비는 이중성에 대한 혐오가 만들어 낸 단어인 셈이다. 일베 회원들은 자신들을 오유 회원들과 비교하며, 자신들에게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일부 오유 회원들의 이중성에 대한 혐오는, 진보 세력의 이중성에 대한 혐오로 발전하고 이 가운데 일베 회원들은 스스로를 애국보수라 칭하며 그들만의 정의감에 취하기 시작한다. 당시 이중적인 진보, 종북세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인터넷 세력이라는 자부심의 발현이었다.

수년 간 억눌려왔던 인터넷 보수의 목소리를 배출해내는 역할로써 분명 일베도 나름의 순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대선 당시, 방문자 211 만 명에 달하는 일베 회원들의 ‘화력’은 상대 후보를 까내리기 바쁜 네거티브 공방전에 “팩트체킹”이라는 새 흐름을 부여해 선거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난 추석, 수많은 일베 회원들이 광화문 거리로 뛰쳐나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롱하는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은 일베식 애국보수적 가치관의 하이라이트였다.

광화문 모임 당시 그들의 표면적인 논리는 정당했다. “종북세력에게 빼앗긴 광화문 광장을 애국심으로 되찾자”. 실제로 당일 일간베스트 게시판은 스스로의 애국심에 감격했다는 어조의 글들로 도배되었다. 방식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일베 회원들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위해 한 데 모여 나름의 정의를 실천했던 셈이다.​

문제는 일베의 유일한 순기능이었던 ‘팩트체킹’은 대선 이후 사라져버렸고, 이런 비뚤어진 형태의 애국보수적 행동들만 남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베 회원들의 위악 행위는 점점 더 그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부도덕한 그들의 놀이문화는 그 편협함과 자극성을 점점 키워가며 어린 학생들에게 잘못된 가치관을 심는 등 심각한 사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광화문 모임 바로 다음날, 일베 회원들은 여 친척의 신체를 도촬한 사진을 게시판에 공유하며 열광했다.

일베도촬패륜문화

▲ 추석 연휴 동안 일간베스트에 올라온 여 친척 도촬 사진들.

 

어제는 종북세력에게 빼앗긴 광화문 광장을 돌려달라며 모였던 자칭 애국보수들이, 오늘은 서로의 친척 여동생 도촬 사진을 돌려보며 시시덕거리는 것이다. 애국보수를 외치며 자신들의 행위가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패륜 행위를 저지르는 일베의 문화는 과연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이중성”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일베라는 거대한 집단은 모순적이다. 애국보수를 외치며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악 행위를 즐기는 놀이문화를 공유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위선은 꾸짖는다. 진보세력에 대항할 때는 선비질을 하면서, 시시덕거리고 놀 때에는 말종질을 하고 있다.

거침없는 폭력적 발언, 저급한 본능의 표출, 반사회적 행위들을 통한 쾌감 추구 등 집단 내의 “위악”은 찬양받고, 이를 비판하는 이성적•도덕적 목소리는 “위선”으로 배척당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임을 알아 인터넷의 익명성에 숨어 저지르는 집단적 위악 행위들을 비판하는 것은 분명 옳은 행동이다. 이를 비판하는 이가 위선적이건, 가식적이건 간에 말이다. 도대체 위악이 위선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부도덕이 당당하고, 도덕이 매도당하는 사회는 무언가 잘못된 사회다.​

상대의 지성을 조롱하고 도덕성의 추구를 헐뜯는 ‘반지성주의’는 한국 인터넷 문화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작금의 병적인 인터넷 하위 문화가 이성적 시민들에 의해 개선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들이 외치는 자기반성의 목소리다.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선비질’하며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와 맞서 이를 고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필자가 선비질이라는 단어를 불편해하면서도, 기꺼이 스스로 씹선비가 되어 입바른 소리를 하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