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하이라인 파크에서 박원순 시장님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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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하이라인 파크. 모두 뉴욕에서 직접 산책을 하며 찍은 사진들이다.)

 

뉴욕 하이라인 파크 –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1. 뉴욕에 왔다. 오늘도 바쁜 자유 미디어 팀원들을 뒤로하고, 매일 내 원고를 기다리는 출판사의 사정을 알면서도, 매주 출연하는 CBS 라디오 방송도 미루면서까지.
그러니까 놀 때 놀더라도 최소한의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다.
쇼핑하고, 공연 보고, 클럽 다니면서 춤 추기 바쁜데 굳이 하이라인 파크를 찾아간 것은 괜한 부채의식을 청산하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2주 전 라디오 방송에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다.
지상파 라디오를 통해 공식적인 의견을 냈으니 기회가 왔을 때 현장을 둘러보는 게 양심적인 방송 꿈나무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걸었다.
뉴욕 맨해튼 첼시에 있는 하이라인 파크를.

 

2. 맨해튼은 지구에서 고층 빌딩이 가장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일 것이다. 3km에 달하는 하이라인 파크를 걸으면 미드 타운 바로 아래 동네인 첼시를 종단할 수 있다.
오른편으로는 허드슨 강과 뉴저지가 보이고, 왼편으로는 맨해튼의 빌딩숲이 보인다.
이런 지형적 특수성에 오래 된 철도 위의 공원이라는 빈티지한 감성을 갖췄고, 바로 아래로는 맨해튼 서부를 관통하는 자동차 도로가 자리잡고 있다.
반면 공원화 사업을 추진 중인 서울역 고가도로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서소문이라는 위치, 박정희 시대 고가도로의 애매한 상징성, 교통난에 대한 대비 부족, 무엇보다 인근 지역 상인회와 주민들의 집단적인 반발.
낙후 된 고가를 공원으로 만든다는 점을 제외하면 동일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3. 그럼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반대하느냐?
원래는 그랬었다. 지난 방송에서도 반대편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직접 하이라인 파크를 걸어보니 박원순 시장이 왜 ‘꽂혔는지’ 이해가 됐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공원이자 산책로였고, 뉴욕이라는 도시에 또 하나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여하는 상징물이었다.
서소문이라는 배경이 관광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 대체 도로 확보가 어려워 교통 체증이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도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으로 만드는데 찬성하게 됐다.
지금 서울이라는 도시에 필요한 것은 고층 빌딩이 아니라 더 많은 광장과 공원이고, 또한 서브 컬처 씬이 숨쉴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역 고가가 공원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과 달리 직접 걸어본 하이라인 파크가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이기도 했고.
그러나,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지지하게 됐어도 방송이나 공식적인 채널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면 여전히 박원순 시장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진영이나 당파가 다르기 때문은 아니다.
절차적 정당성, 그리고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 때문이다.

 

4. 한국 사회의 비극은 보수나 진보나 ‘박정희 모델’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진보 진영은 박정희를 증오하지만, 그가 확립한 시스템을 혁신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자신들이 제2의 박정희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바탕으로 국민이나 반대 진영의 동의를 얻지 않고 ‘옳은 일’이라는 명분 하에 불도저식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
이것이 바로 박정희 모델이다.
개발도상국에게는 박정희 모델이 필요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고속도로를 건설한 것, 맨땅에서 중공업을 육성한 것 등 앞만 보고 달린 결과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
그러나 2015년의 대한민국에 여전히 박정희 모델이 필요한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됐고, 이제는 ‘빨리 가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경제적으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는 나라라면,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고 최대한 합의를 도출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바쁘다.
반대 진영의 의견은 묵살하고, 같은 진영 내부의 반론은 배신으로 여기며 집토끼를 지킨답시고 중도층의 마음은 신경쓰지 않는다.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박정희 모델을 극복하지 못했으니 2015년의 양식 있는 시민들은 정치를 혐오하는 게 당연하다.

 

5. 다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으로 돌아오면, 박원순 시장은 2017년까지 공원화를 마무리 짓겠다고 천명했다.
국토부와 경찰은 교통 체증 증가와 주민 반발 때문에 관련 법안 해석을 서로에게 미루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상인회와 주민회는 서울시가 말로만 소통을 내세울 뿐, 토론이 아니라 일방적인 주장만 한다고 입장 표명을 했다.
실제로 몇 차례 공청회 일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었고, 상인들과 주민들이 참여한 설명회는 서울시의 입장을 통보하는 자리였을 뿐 소통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고 한다.

 

6.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골목이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도로명 주소를 받아들인 것, 맨해튼 하이라인과는 여러 조건이 다름에도 고가도로 공원화를 추진하는 것.
외국의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적 발상까지는 이해해줄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고가도로 공원화는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체 언제까지 국가와 사회의 주인들이 무시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박정희 모델을 답습해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니 시민들은 잔말 말고 따라오라는 정치 지도자들의 오만함을 언제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왜 2017년까지 무조건 사업을 완수하겠다고 시기를 못 박아 놓았어야만 하는지 의문이다.
2017년에는 대선이 열리고, 대선 전에 반드시 자기 이름으로 사업을 완성하겠다는 욕심이 엿보인다.
대선과 상관 없는 사업이라고 해봐야 누가 그 말을 믿을까.
모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천천히 진심을 다해 소통하며 시민들을 설득했다면, 공사 완공 날짜를 일방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지역 주민과 상인회가 이처럼 강하게 반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사업 완료 시점은 늦춰지겠지만, 공원이 1~2년 늦게 완성된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업, 옳은 정책이라도 사회적인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 된다면 우리는 영영 박정희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가 사회는 실종되고 국가는 과잉된 기형적인 모습의 오늘이 아니던가.

 

7. 아마 이 글은 인기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선명한 글을 좋아한다.
누구를 지목해서 멋지게 띄워주거나 맹렬하게 비판하는 글을 원한다.
결과에 찬성하면서 과정에 반대하는 글, 1과 2가 아니라 3은 왜 없냐고 묻는 글은 기계적 중립이라는 단어로 레이블링하고 넘어간다.
무엇보다 글이 길기도 하고.
어쨌든 조금이라도 읽기 편하라고 요약을 해보겠다.
하이라인 파크를 직접 방문해보니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 기대감을 갖게 됐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개발도상국도 아니고, 결과가 좋을지라도 사회적 합의 없이 굵직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기는 지났다.
보수와 진보 모두 보스가 되고 싶은 사람들만 있지, 리더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8. 전임 시장들, 그리고 현재의 대통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과 야당, 심지어는 진보정당의 주요 정치인들까지.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보다는 독단적이고 영웅적인 결단을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구시대의 인물들이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인물들이 필요하다.
추구하는 결과가 달라도 과정을 함께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여당과 야당의 거물들이 하나 같이 포스트 박정희를 탈피할 생각을 못한다는 게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9. “내가 혼자 열 걸음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독선적 영웅이 아니라 “함께 한 걸음을 내딛자.”는 평범한 정치가를 보고싶다.
그런 정치가들을 등장시키고 키우는 것의 절반은 시민들의 몫이다. 나와 다른 편이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지지해주고 존중해 줄 때, 비로소 새 시대의 인물들이 떠오를 것이다.

 

10. 또 다른 정치인이 뉴욕을 방문한다면, 그들이 이뤄놓은 멋진 결과만 보고 따라하려는 게 아니라 서구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지에 더 주목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