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년세대의 주변인들 – 고졸, 조기 유학생, 탈학교 경험자

주변인 경험

 

나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단 하루도 다녀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까지는 한국에서 다른 친구들과 별 다를 바 없이 다니다가, 건강 문제로 중학교를 졸업한 뒤 1년 정도를 쉬게 되었다. 그 후, 한 살 많게라도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갈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할지 고민을 하다가 영국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 그나마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얼마 못 가 학교를 중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몇 년간은 이곳저곳을 떠돌며 학교 밖 청소년으로 보냈고,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은 뒤 한국 나이로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한국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물두 살에 한국에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솔직히 적응이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나 내가 입학한 학교가 서울 시내에 있는 통학 학교가 아닌 지방의 벌판 한가운데 세워진 기숙형 학교이자 교대-사범대라는 특수성을 가진 곳이어서 더욱 그랬다. 학교 친구들 중 해외 경험이 있거나 학교 밖 청소년으로서의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고, 다들 초.중.고 시절 내내 우수한 성적을 받아가며 학창시절을 보냈던 모범생들이었다.

 

그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한국의 소위 명문대생이라는 이들의 일면을 볼수 있었다. 물론 학교마다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내가 다녔던 학교의 학생들의 모습만으로 한국의 일반적인 명문대생의 상을 그릴수는 없을것이다. 다만 내가 대학신문사 기자 활동을 하면서 다른 학교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다른 학교 학생들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를 비롯하여, 한국의 명문대에 진학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략 다음의 세 부류로 나눠볼수 있었다:

 

  1. 시골이나 지방 중소도시에서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자란 경우. 대개 그 지역에서 명문으로 알아주는 고등학교를 나옴. (비평준화 지역인 경우가 많음) 집안과 지역사회에서도 ‘지역의 재원’으로 늘 띄워주었던 사람이라 자의식이 강하고 남들 위에 서려고 하는 경향이 강함.
  2. 서울, 수도권, 광역시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사교육 잘 받고 공부 잘해서 특목고나 자립형사립고를 나온 경우. 보수적이며 극성인 학부모들이 대부분이라 집안에서 압력을 있는대로 받고 자라 인성의 성장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음. 또, 모든 것을 결과로만 평가하는 부모들이기에, 명문대를 진학하니 더욱 기고만장해짐.
  3. 중산층 또는 중하층 출신으로서 일반고등학교에서 상위권 성적을 받아 명문대에 진학했는데, 본인의 꿈이 있다기보단 사회나 부모님이 희망하는 경로를 그냥 따라가려는 경우. “내가 다른 것 가진 건 없어도 명문대생이긴 하지”라는 마인드.

 

솔직히 이런 친구들이 나 같은 주변인들을 쉽게 이해하거나 포용해줄 것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청소년기에 해외 생활 또는 학교 밖 생활을 통해 자유로움을 경험해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하고 한국의 중, 고등학교 생활을 묵묵히 견뎌내고 터무니없이 어려운 입시의 관문을 통과 – 그것도 우수한 성적으로 – 한 사람들의 마인드 사이에는 어쩔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이런 ‘승자’들에게 비명문대생, 전문대생, 고졸, 중졸에 대한 배려를 바라는 것이 헛된 일이라는 건 말할것도 없을터. 이미 명문대생, 비명문대생을 가릴 것 없이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 학교 단위로, 심지어 같은 학교 내에서도 정시모집 입학자와 수시모집 및 특별전형 입학자, 편입생을 구분할 정도로 촘촘한 수준까지 짜여진 위계 속에 있다.

 

그나마 이러한 차별도 대학생끼리의 차별이다. 대학을 아예 가지 않거나 못한 20대의 이야기는 사회의 공론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이것은 물론 대학 진학자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이기도 하나, 이전부터도 이른바 청년담론이라는 것은 일부 엘리트 대학생들의 영역이었던 점도 영향을 미친다.

 

사실, 우리가 386세대라고 부르는 이들에 대한 이미지 – 대학에 소속은 되어 있지만 공부는 안 하고 매일같이 데모를 하거나 학교 잔디밭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며 시국토론을 하는 모습으로 대표되는 – 도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20대 청년들의 극히 일부의 모습만을 반영하고 있다. 1980년대의 대학 진학률은 그다지 높지도 않았거니와 대학에 갔다고 하여 꼭 모두가 저런 모습으로 대학생활을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1960년대 출생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국제시장>이 그렸던 것과 같은 식의 삶을 살았을 확률이 더 높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노동자나 영세자영업자가 되었을 테니까.

ⓒ 솔모

 

 

고졸: 청년 담론에서조차 소외되는 이들

 

우선 나는 이 글에서, ‘고졸’이라는 단어를 단순히 말 그대로의 고졸만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닌, 고등학교 중퇴자, 중졸, 혹은 그 이하 학력 집단과 대학 중퇴자, 전문대졸까지도 포함 가능한 비유적 함의로서 사용한다는 바를 밝힌다. 즉 한국사회의 표준적인 청년상인 ‘4년제 대학생’이라는 조건에 미달하는 모두를 지칭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이른바 평범한 대학생들을 경험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군 복무를 대신한 사회 복무(얼마 전까지 ‘공익 근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또래 집단을 통해 좀 풀리기 시작했다. 사회 복무를 시작할 시 1개월 간의 훈련소 생활과 이후 사회 복무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평범하게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쭉 나와서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다. 내가 만난 훈련소 동기들과 이외 사회복무요원들 중 대략 4분의 1쯤은 중, 고등학교 때부터 해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여 해외 대학에 다닌 유학생들이었고, 절반 정도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직업교육을 받거나 취직을 했거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사회의 표준적인 생활을 영위하는(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또래 집단을 벗어나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을 만나니 숨통이 트이는듯한 느낌이었다.

 

반면 현역 군 복무를 하는 친구들의 경우, 자신의 동기나 선.후임들은 거의 다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다 온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대에 가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본다는 말은 한참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한국의 현 20대에 해당하는 청년세대가 상당히 균질한 교육수준을 가진 집단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통계를 보아도 대학 진학률은 90%에 육박하는 세대이다. (오히려 최근 몇 년 사이에 조금 줄어들어 70~80%선을 기록하고 있다.)

 

확실히 일찍부터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세상 물정을 더 잘 아는듯 보였다. 알바를 하면서, 사업을 하면서, 또는 ‘열정페이’만 받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일을 배우면서. 내가 본 고졸, 중졸 친구들 중에는 알바를 하며 근근이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 관련 활동(노래나 밴드 등)을 계속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고, 일찍부터 미용사, 요리사, IT컨설턴트, 사무직 등을 지망하여 직업교육을 받거나 이미 그 분야에 취업하여 자리를 잡은 경우도 있었다.

 

비숙련 서비스업이 아닌, 숙련이 필요한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 1,2년은 박봉을 받으며 고생하지만, 경력이 4~5년 정도만 되어도 요즘 웬만한 대졸자들도 받기 힘든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그럭저럭 살만할 정도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창업을 한 친구들은 각자가 맞이하는 운명이 극명하게 갈렸다. 동대문 시장에서 일을 배우다가 인터넷 쇼핑몰을 차려서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있고, 술집을 열었다가 그동안 벌었던 돈을 다 날리고 빚을 지게 된 사람도 있었다.

 

어찌됐든 한국사회의 소수라고 할 수 있는 대학 미진학자들 사이에서도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다. 아니, 오히려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삶의 다양성을 추구할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봐야 한다. 대학에 간 친구들은, 중고등학생 때 ‘대학 입학’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을 바라보고 관성적으로 생활했듯이,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또다시 관성적인 삶을 살게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회구조가 강제하는 것이지만,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진로와 인생에 대한 뚜렷한 생각을 갖지 못해 스스로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투항하는 면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반면 대학에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친구들은 자신의 뜻을 밀어붙이기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경우가 많았다. 설득 정도가 아니라 투쟁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부모와 대립했던 경우들도 있었다. 이들은 적어도 진로 문제에 관한, 자기 인생에서의 한 가지 자율성을 쟁취했고, 또 주체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여 승리한 귀중한 경험 한 가지를 얻은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게 되자, 나는 한국의 청년세대 담론이 청년의 조건을 ‘4년제 대학생’으로 설정해놓고 있는 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대학생이 아닌 20대는 청년이 아니라는 건가? 그러나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건 주류사회로부터의 낙인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이 개인의 소신에 의한 선택이건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못 간 것이건 말이다. 담론이라면 무릇 이러한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고려해주는 관점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그동안 한국사회의 주류적 서사는 대졸의 서사였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았음에도 그들의 서사는 늘 주변화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 대학 진학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자 그 서사는 더욱 정당화되고 강고해졌다. 명문대와 비명문대 출신의 차별이 있지만, 그 간극은 중졸, 고졸과 대졸 사이의 간극보다는 훨씬 적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심지어 예전에는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 미진학자의 서사도 최소한 하위 서사로라도 어느 정도 공유될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하위서사조차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한국의 소위 진보진영은 대학생 중심성이 강한 면이 있다. 대학생 중심의 한국 운동권은 대학에 다니지 않은 노동자들을 자신들도 모르게 타자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소위 보수진영에서는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이나 자영업자 같은 사람들의 서사를 상대적으로 더 수용해준다. <국제시장>이 바로 그들의 서사이다. 그러는 사이 진보 운동판에서는 출신 대학교를 매개로 파벌이 형성되고 학생출신들이 현장 노동자 출신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사회단체의 활동가들 중에는 이론에 빠삭한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고졸 이하의 노동자 출신들이 있는데, 이들끼리 술자리를 할 경우 이론을 잘 모르는 노동자 출신들이 대화에서 소외되곤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하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또래 친구들을 많이 만나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각자의 이야기와 삶이 있었지만 이제 수적으로도 절대적인 소수자가 된 상황 때문인지 이들의 서사는 사회에서 유의미하게 인식되지 못하는듯하다. 웬만한 대학생들은 대학 미진학자를 접하기가 쉽지 않은 사회가 되었다. 또 만날 기회가 있다고 한들 일상생활과 생각의 층위가 너무 달라 공감을 하기도 쉽지 않은 면이 있다. 재미있게도, 나는 사회복무를 하던 고졸 친구들이 의외로 조기유학을 경험한 해외 대학생들과 말이 잘 통한다는 것을 목격할수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또래들이라면 말이 안 통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탈진영 세대’로서 나의 세대를 재정의하는 한 작업에 그 세대의 당사자로서 동참하고 있다. ‘탈진영’을 위해 필요한 것들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회의 20대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돌아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호관계적인 측면과 거시규범적인 측면 모두에서 말이다. 학력 또한 마찬가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20대의 이야기는 어디에 실릴수 있고 누가 들어줄수 있을까. 솔직히 소위 진보진영에 속하는 20대를 위한 대안 매체들 – 이를테면 <미스핏츠>, <20’s Timeline>, <직썰>, <청년좌파> 등 – 은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거의 실어주지 않는다. 정당들도 마찬가지여서 청년들을 위한 정책 아젠다로서 고려되고 있는 것들은 ‘반값등록금’ 같은 대학생 중심의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고졸 청년은 담론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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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유학생: 주변인 아닌 주변인?

 

조기 유학생들의 경우, 대체로 사회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왔다는 점과 대학교까지의 정규 사회화 코스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일반적으로 주변인이나 소수자로 고려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벗어나서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삶을 영위했다는 점은 더더욱 이들을 한국 청년담론의 고려 대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이 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문화적 규범보다 서구의 문화적 규범이 훨씬 익숙한 이들은 한국 기성사회의 위계질서와 충돌을 빚곤 한다. 또한, 기업이나 학계나 각종 단체에서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는 한국 대학 출신의 중간관리자들은 유학생 출신에 대한 견제심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곤 한다. 비단 유학생 출신으로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유능함을 입증받아 한국 업계로 스카우트된 사람들도 견제를 받는다.

 

한국은 외국인들을 수용해 온 역사가 짧은 데다 조직과 사회 내의 균질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외국인들은 물론 해외에서 생활한 한국인들에 대해 아직까지 배타적인 편이다. 특히, 유학생이나 해외 거주자 출신 한국인들은 토박이 기득권으로부터의 견제에다 토박이 기층민중으로부터의 질시라는 이중적인 편견에 포위되곤 한다. 여전히 적지 않은 한국 서민계층에게 해외 거주 경험이나 유학 경험은 일종의 특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종종 한국의 상류계급이 보이는 병역 기피나 탈세 등으로 인해 ‘검은 머리 외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나쁜 편이다. 미국이나 여타 선진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한국에서의 경제적 이권은 다 챙겨간다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까지 조기 유학생들은 하나의 특권층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특권층이라 부르기 민망해지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한국의 많은 중.상류계급 부모들은 자녀를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키우려는 기대에 조기 유학을 보냈는데, 그들 중 많은 수가 졸업을 하는 시점이 되자 해외와 한국 모두에서 취업하기 어려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불과 7~8년 전만 해도 해외 유학생들은 외국어 구사의 이점과 국제적 경험을 희소가치로 인정받아 사회 각계에 비교적 쉽게 진출할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유학생의 수가 많아져 희소가치가 떨어지고, 기존의 유학생 출신 취업자들 중 생각만큼 업무능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문화적, 정서적 차이로 인한 조직 내 적응능력 문제가 대두되고 경기까지 나빠지자 조기 유학생들 역시 한국의 다른 청년들과 별 다를바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니 해외에서 취업하기를 희망하는 유학생들이 많지만, 외국은 외국대로 2008년 이후 금융위기의 여파가 지속되는데다 자국민 우선의 정책을 펴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가 않다.

 

이렇게 되면 조기 유학에 들어갔던 엄청난 비용은 고스란히 손해가 되는 꼴이지만, 이건 그야말로 본인이 선택한 것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한국 내에서 입시지옥을 거쳐 대학 교육까지 성실히 받은 사람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수 없다는 것은 철저히 구조적 문제인 것이 맞지만 조기 유학은 선택의 자유가 있는 계층 출신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조기 유학을 선택할 당시의 개인이 미처 고려할수 없었거나, 고려를 했다 하더라도 본인의 능력 밖에 있는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은 웬만한 중상층에게조차 시련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기 유학생 출신 백수들은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

 

토박이(?) 한국인 청년백수들의 취업도 극히 어려운 판에 이들을 위한 제도적 대책까지 마련하는 거야 무리라고 쳐도, 이들 귀국자들이 한국사회에서 수행할만한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한 사회의 고민은 필요하다. 조기 유학생들이 갖는 잠재력과 재능 역시 토박이 한국청년들의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하며, 이들에게도 그러한 재능을 썩히지 않도록 하는 기회가 부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스라이크가 대변하고자 하는 세대(1985~1995년생)에서 그 수가 많은 조기 유학생 집단은, 잘 활용된다면 한국사회의 다양성을 높여주고 한국사회에 활력과 건강함을 불어넣는데 도움이 될수 있는 그룹이다. 평균적으로 볼 때 조기 유학생 그룹은 한국에서 쭉 학교를 다닌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외국인과 타국의 문화, 성소수자와 같은 소수자 집단, 심지어 앞에서 밝혔듯 고졸 집단에 대해서도에 대해 관용적이다. 또한 주류적 규범에 대한 순응을 강조하는 한국사회의 풍토로 인한 몰개성화 경향에 맞서 개인주의의 가치를 사회 곳곳에 서서히 뿌리내리게 하는 데 도움을 줄수 있는 잠재력도 갖고 있다.

 

물론 한국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과 동시에 조기 유학생 스스로도 자신들이 한국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30대가 될즈음이면 그 속에서 만만치 않은 비율을 차지하게 될 집단인데, 앞으로 이 그룹이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자리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탈학교 경험자: 사회적 표준으로부터의 이탈의 경험

 

탈학교 경험자에 대해서는 짧게만 언급하겠다. 이 집단은 사실 고졸이나 조기 유학생보다도 훨씬 소수에 속하기도 하고,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닐만한 시기에 학교 밖에 있다가도 대학에 진학하여 다시 주류사회에 어느 정도 동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경우도 상당하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탈학교 경험자들은 대학이나 사회의 여타 다른 조직 내에서 자신의 개성을 어느 정도 살리는 모습을 보인다. 적어도 일반적인 대학생들보다는 앞으로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찾으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고 그것을 찾으면 소신대로 그를 위해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가끔은 이들 중 아예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직업교육을 받아 목수가 된 경우도 있고 성년이 되자마자 인권단체 활동가가 된 경우도 있다. 아직까지 청년세대 전체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이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탈학교 경험자의 비율은 옛날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과연 한국 주류사회가 이들이 갖는 개성을 받아주고 활용할수 있을만큼의 역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건 대안학교 출신들도 마찬가지로 겪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세상의 혁신은 주변부로부터

 

주변인들은 종종 세계사의 큰 변화를 일으킨 주역이 되기도 하였다. 주변인으로서 자란 경험은 역으로 주류로서 살아온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특별한 장점으로 변하기도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 된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원래 삶 자체가 그러했기에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이 이미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익숙한 것이다.

 

특히 상업의 영역과 학문의 영역에서 그러하다. 한 사회의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 사회와 다른 사회를 잇는 중개자의 좋은 자질 중 하나를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경향이 있다. 주변인들은 다른 나라나 이질적 사회문화집단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인들은 이미, 자신이 태어나 자라서 살아간 사회의 주류적 규범을 배워야만 생존할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업과 무역은 주변인들에게 금력을 통해서나마 출세와 인정을 얻을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왔다. 그런가 하면 비상업 영역에서는 주변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인간사회에 대한 통찰의 중요한 원천으로 삼았던 학자들이 있었다. 또한 주변인들은 출신에 따른 차별이 비교적 덜했던 과학기술계에서 그들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중세의 중동 세계와 유럽 세계의 대표적인 주변인 집단은 유대인이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무대가 되었던 압바스 왕조(750~1258) 하에서는 유대인을 비롯한 소수종교 집단에게 관용이 주어졌는데, 유대인들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의 보존과 철학, 문학, 과학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같은 시기 카톨릭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은 가혹한 차별과 멸시를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이 더러운 일이라 여겼던 금융업에 종사해야만 했다. 금융업은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기피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그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한편 유럽인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으로 인식시켜준 이는 에스파냐나 포르투갈 출신의 귀족이나 군인이 아닌, 몰락한 제노바 상인이었던 콜럼버스였다. 제노바는 15세기 중엽까지 번영했던 이탈리아 북서부의 항구 도시로, 멸망한 비잔틴 제국과의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이 곳 출신인 콜럼버스에게 풍부한 상상력이나 모험정신은 자신의 주변인적 인생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한편 주변인의 덕택으로 아메리카에서 금은보화를 확보하여 번영을 누리게 된 에스파냐는 자국 내의 주변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상업, 농업, 제조업 등에서 많은 재능을 가진 유대인, 무슬림, 개신교도들은 에스파냐를 탈출하여 네덜란드 같은 곳으로 이주하였다. 어떠한 종교적 지향도 허용되었던 네덜란드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주변인들의 포용을 통한 사회의 다양성을 강대국이 되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근대와 현대에 들어서도 주변인 집단에 대한 관용을 베푼 나라들이 상대적으로 성공을 거둔다. 특히 미국은 유럽 구세계에서 차별받던 집단을 포용하여 큰 성공을 거둔 경우에 해당한다. 애초 시작부터가 영국에서 박해받던 비국교 개신교도들의 이주였고, 유럽에서 출신 신분으로 인한 차별을 받던 이들이 미국에 와서는 자유롭게 경제 활동과 사회적 활동을 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나치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이 대거 미국에 건너왔는데, 아인슈타인과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같은 사람들도 여기에 끼여 있었다. 이들의 자유로운 학술 연구활동은 훗날의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는다.

 

또한 주변인들은 주류사회의 규범과 구조에 대항하여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은 인쇄노동자 출신의 독학자였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계급적으로는 부르주아 출신이었으나 소아마비를 앓았던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를 안고 살았고, 여성이었으며, 러시아령 폴란드 출신으로 독일제국에 귀화한 이민자였다.

 

바쿠닌이 그랬던가. 사회변화의 주역은 주류사회에 포섭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소수자라고. 앞으로 한국사회의 생존과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변화의 주역은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청년세대 내부의 주류가 아니라 고졸, 조기 유학생, 탈학교 경험자 같은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소위 청년담론을 이야기한다는 매체들의 논조는 “우리 대학생들은 등록금 마련하느라 빚지고 생활비를 위해 알바해야 하고 학점관리하고 스펙쌓느라 고생은 무지하게 하는데 취직은 너무도 어려워서 살기가 힘듭니다”에서 더 나아가질 못한다. 이것은 나온지가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라 이것에 대해 기성사회나 선배 세대가 해줄수 있는 대답 또한 뻔하다.

 

너무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가 나아갈 길, 그리고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은 우리세대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다. 기성사회나 선배 세대는 적절한 답을 제시해줄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지만, 그러한 교육열의 결과가 생존을 담보하지 못하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고졸’은 새로운 생존의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조기 유학생들과 탈학교 경험자들은 사회에서 제시하지 않는 다른 경로를 통해 자신들의 생존과 인생의 주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더 적극적일 것이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삶에 대한 자신감을 찾는 일이, 변혁을 추구하는 사유에 우선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진보연하기 전에 주체성을 튼튼히 하자. 피해의식만 호소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