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포비아’를 바라보며

너일베충이니이미지

​▲ 일베 회원들에 대한 극단적 적의가 만들어낸 단어, ‘일베충’. 일베에 대한 사회의 병적 혐오는 시민들의 자유 발언을 침해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이미지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너 일베충이니?’>

 

참 피곤한 세상이 도래했다. 사회에 만연한 일베 혐오가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억압하는 세상이다. 일베가 절대악으로 취급되는 현 사회분위기에서,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다. 행여 보수 의견을 내비쳤다가 일베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침묵을 지키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렇다고 잠자코 논리 없는 정부비판들을 듣고 있자니 복장이 터져나간다.

​애당초 일베를 만든 것이 바로 이런 억압이었다. 감성에 호소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넷진보는 전염병처럼 쉽게 번져나간다. 아무 논리가 없이 무조건 반정부를 외치는 것만으로도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정부라는 존재는 본인 삶 모든 문제의 제일원인으로 탓하기 딱 좋은 제물이다.

​진보의 목소리가 창궐한 인터넷은 정치적 가치관이 다른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 다섯 명이 모였는데 네 명이 똑같은 의견을 내면, 다른 생각을 지닌 한 명은 조용히 있을 수 밖에 없다.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주위 사람들이 본인의 의견에 반대할 것이라 생각하면, 아무리 타당한 의견이라도 스스로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보수의 목소리는 침묵의 나선 속에서 오랫동안 숨죽여왔고, 로마제국의 박해시대에 기독교도들이 카타콤으로 숨어들었듯, 보수는 인터넷의 음지로 숨어들었다.

​인터넷 하위문화의 특성상,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깨부수는 일탈행위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기존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니까. 패륜문화라 지탄받는 일베의 반사회적 놀이문화는 그들이 음지 속에 숨어듬으로써 탄생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베와 관련된 모든 것에 극단적인 혐오감을 표현하기 전에, 무엇이 일베를 만들었는지 생각하고 이를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베에 대한 극단적 혐오, 이른바 ‘일베포비아’는 보수와 일베가 더욱더 음지로 들어가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경상도 출신의 한 연예인이 본인의 SNS에 사투리를 썼다가 일베 말투 논란에 휩싸여 경위 설명에 나섰다. 모 개그 TV 프로그램에서는 부엉이로 분장한 개그맨을 출연시켰다가 일베 의혹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정말 이상한 세상에 살고 있다. 일베포비아가 만들어 낸 각종 사회적 금기들이 시민들의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 마다 행여 본인의 말이 일베의 그것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정부의 입장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빨갱이라고 잡아가던 공안 시대와 지금 이 시대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단지 억압의 주체가 정부에서 군중이 되었을 뿐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고 해야겠다. 단지 일베가 하는 행동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성과를 비판할 자유를 잃었고, 촛불시위의 불합리성에 대해 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겁을 먹게 되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말, 생각, 행동의 자유까지 억압받고 있다.

​일베의 동시접속자 수는 평균 2만 명을 넘어가고, 월간 평균 방문자 수는 최소 400만 명을 넘어간다. 이미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해진 집단이다. 이런 거대 집단을 음지 속에 계속 가둬두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오히려 부작용만 생길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일베포비아’를 버리고, 일베가 음지에서 나와 건전한 보수의 목소리를 내는 커뮤니티로 변화할 수 있게끔 유도할 때가 아닐까?

무조건적 배척보다는, 일베의 일부 반사회적 놀이문화에 대한 비판과, 정치적 견해의 수용이 함께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보수에 대한 온라인상의 억압이 일베라는 카타콤을 만들었고, 일베에 대한 사회적 배척과 혐오가 그들을 더욱 어두운 곳으로 몰아냈다. 어쩌면 일베를 키워낸 것은 우리의 편협한 시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