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평등이라고? – “한국은 정말 여성 차별이 심각한 나라일까?”에 부쳐

ⓒ 위키백과

 

 

 

자유주의의 카드 뉴스 “한국은 정말 여성 차별이 심각한 나라일까?”를 보았다. WEF 통계의 오류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었다. ‘여자라서 안 되는’ 건 이제 옛날 이야기다. 대입과 공직, 사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 여풍이 거세다. 불과 40년 전인 1975년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가 만들어 졌다. 여공에서 버스안내양에서 창녀로 추락한 영자의 삶과, 대학을 졸업하고 남자들과 똑 같은 월급을 받는 나의 삶 – 조금 일찍 태어났다면, 운이 없었더라면, 내게도 영자와 같은 불행이 닥치지 않았으리란 보장은 없다.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54년 “슬픔이여 안녕”을 발표하며 스타가 되었다. 당시 숏컷을 하고 사브리나 팬츠를 입었던 그녀의 스타일은 작품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이제는 코르셋도 A라인 스커트도 수많은 선택지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살 만한 세상이다.

 

 

ⓒ 곽정은 트위터

 

 

그런데 좀, 억울하다. 사회 시스템과 별개로 한국인의 성평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성 문제를 얘기할 때에 언급 되는 선진국 국민 중 어떤 이들도 남과 여의 고정 역할에 한국인들만큼 완고하게 굴지 않는다. 어느 방송인이 주말에 일터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가 “이렇게 예쁜 공주님들도 일을 하러 가느냐”는 소리를 듣고선 SNS에 불쾌함을 표한 일이 있다. 그 때에 대다수 누리꾼의 반응은 이러했다; ‘마흔이 다 된 여자가 립서비스를 받았으면 고마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예쁘다는 칭찬 들었다고 자랑하는 것 아니냐’. 그 여성에게 아무런 사심이 없는 상태에서 감히 말한다. 고마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자랑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지하철 1호선이나 종로 지역의 노포 등에서 쉽사리 목격할 수 있는 한국 중장년 남성들 특유의 걸걸함을 고려하여 덕담(?)으로 들어 넘길 수도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공주 발언 자체가 후지다는 걸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공주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 barbiekorea.co.kr

 

 

나는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바비인형이 생각난다. 여자가 비행기도 조종하는 시대에 여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덕담이 ‘공주’류의 외모 칭찬이라는 거,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예쁜 여자는 일을 안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잘난 남자 시중 들기? 나는, 본인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답시고 “이 녀석… 역시 까칠하구나, 후훗.(머리를 쓰다듬으려 하다 저지당한다)”이나 “오빠가 네 맘을 다치게 했네, 어떻게 달래줄까”라 말하는 남자를 한국인들 외엔 본 일이 없다. 업무 상 동남아 고객을 자주 접한다. 그들은 종종 초면인 여자에게 “한국 여자들은 다들 성형을 한다던데 넌 어디를 고쳤냐”와 같은 황당한 질문을 하곤 한다. 이들의 ‘돌직구’를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은, 내가 한국남자 특유의 ‘고자세’에 의해 강한 면역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동남아 국가들 중 1인당 GDP가 만 불을 넘는 나라를 찾아 보기가 힘들다. 겉으로는 개도국들보다 적어도 세 배는 잘 살면서도, 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그들과 비슷한 지점에 머무르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SNS시대를 ‘자기 전시의 시대’라 바꾸어 말할 수 있을까. 일상의 전시가 보편화될수록 남자는 어떠해야 하고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는 선입견이 단단해져 간다. 여자 이야길 실컷 했으니 남자 편에도 서 보겠다. 성평등은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남자들은 얼마나 많은 선입견에 얽매여 있나.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만 하고, 늦지 않게 결혼하여 번듯한 가정을 꾸려야 하며…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친구의 베이비시터 노릇을 하는 남자들을 많이 알고 있다. 곧 크리스마스다. 전국의 숙박업소가 문전성시를 이루리라. 그 날을 위해 거금을 들여 특별한 이벤트와 데이트 코스를 준비하고 있을 남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어쩌겠나, 너무도 많은 여자들이 남자에게 무엇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도를 매기는 것을.

 

 

ⓒ 한국경제

 

 

 

 

그래도 좀 봐달라. 아직까지는 여성이 약자이다. 얼마 전 삼성그룹에서 R&D분야 최초의 여성 부사장이 탄생했다. 언론은 “배터리와 결혼한 여자”의 업적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배터리와 결혼했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으론 씁쓸한 문구이다. 남성이 개인의 삶과 직업적 성취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반면, 여성에게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이 사회생활의 고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택한 모든 국가에 완벽한 민주주의가 구현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등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해서 모든 불평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에 통계 외의 다양한 정서적인 기준을 언급하듯이, 성평등에 대해서도 좀 더 다면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해방 후 70년, 우리의 경제 수준이 세계 10위권을 맴돈다. 그러나 아직은 한국이 진주 목걸이를 한 돼지임을 증명하는 일화가 수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제는 안과 겉의 성숙을 동시에 이루어야 할 것이다. 성평등 문제의 성과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하자. 양성의 자기 반성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옷이 날개라고들 하지만, 스타일의 완성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서 비롯된다. 좋은 제도만큼 좋은 의식이 자리잡기까지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