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행은 나를 즐겁게 합니다

구경꾼

▲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의 일부. <이미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독일어에는 특정 감정을 지칭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상반되는 두 단어, 고통을 뜻하는 Schaden과 기쁨을 뜻하는 Freude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인데, 이는 타인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고서 느끼는 기쁨을 뜻한다.

승승장구하던 이의 갑작스러운 불행을 바라보며, “고소하다!” 혹은 “쌤통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당신도 이 샤덴프로이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이 악의적 희열을 인간의 다양한 성격 중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샤덴프로이데가 모든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

2006년 독일의 한 연구팀이 뇌 스캔을 통해 샤덴프로이데의 생리적 현상을 포착했다. 이는 일본의 신경과학자 히데히코 타카하시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는 2009년 사이언스지 (Science)에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순간의 뇌의 반응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잘코사니

▲ 시기심을 느낄 때 활성화하는 배측 전측대상피질 (좌측), 샤덴프로이데를 느낄 때 활성화하는 뇌 배면 선조체 (우측) <이미지 출처: Scienceon>

 

타카하시는 피실험자 성인 남녀 19명을 뇌 촬영장치에 넣고, 가상의 인물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가상의 인물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위치에서 한 순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을 들려줄 때 피실험자들의 뇌 배면 선조체에서 화학물질이 분비되는 것을 포착했다. 선조체란 뇌에 있는 줄무늬 모양의 조직으로 만족감을 식별하고 감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로서 타인의 불행, 고통, 실패를 보고 느끼는 즐거움, 즉 ‘샤덴프로이데’는 우리가 원초적으로 느끼는 쾌락 중 하나라는 것이 밝혀졌다.

키보드워리어

​<이미지 출처: 엔하위키, “키보드워리어”>

 

부, 권력, 명예를 지니고 있던 인물이 몰락의 길에 서면, 사람들은 이 추악한 본성에 의해 환호한다. 대상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며 원초적 만족감을 느끼고, 그간 대상에게 느껴왔던 시기심에 대한 보답으로서 그의 파멸을 한껏 즐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가십, 비리, 음모, 실패담 등 미디어에 의해 이슈화 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체를 헐뜯고 힐난하는 것이 마치 바람직한 일인 양 착각에 빠져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선천적으로 선하건 악하건 간에, 우리에게 타인의 불행에서 희열을 느끼는 역겨운 습성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추악한 기쁨을 자제하고, 또 고쳐나가려고 노력하는 사회보다는, 오히려 이를 더욱 북돋우는 사회에 살고있다.

샤덴프로이데를 느끼게 함으로써 이슈가 되는 소식들. 문화의 성숙을 위해서 한 번쯤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