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냐? 잘 지내? 남친은?

busy

“바쁘냐?”

“잘 지내?”

“남친은?”

4년 남짓의 직장생활. 위의 ‘삼단질문’을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50회 가량 들었다면 믿겠는가.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저런 질문을 하고, 또한 영혼없는 대답에 “ㅋㅋㅋ”를 남긴 후 사라지는 이들이 내게 관심이 있어 그러는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저 심심해서, 한가해서, 할 일이 없어서 메신저 스크롤을 내리다가 걸려드는 이름에 더블클릭을 하고 습관성 질문을 물총같이 쏘아대는 것일 뿐. 그 물총질이 국제적으로도 뜬금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삼단질문을 영어로 바꾸어 보자.

“You busy?”

“You doin’ good?”

“How’s ur boyfriend?”

이것 참 싸가지 없다. 태도만이 문제가 아니다. 내게 왜 남친의 안부를 묻는 것인가? 니들 아는 사이 아니잖아. 그렇다면, 왜 모르는 사람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가? 둘이 나 몰래 썸이라도 타냐. 천천히 생각해 보자. 우리네 관심사는 항상 타인의 신변잡기를 향하고 있지 않은지. 사실 “남친은?”이 차라리 다행이다. 생전 본 적도 없는 남의 남자의 상태를 두고 “오빠는?”이라 질문하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니. 그러니까, 누가 니네 오빠란 거니.

한국인의 행복은 남에게 놓여 있다. 나는 하나인데 남은 너무도 많다. 그래서 행복이 풍전등화이다. 학창시절의 경쟁은 귀여운 수준이다. 성인으로 진입한 이후 시작되는 진정한 물적 경쟁, 어느 회사에 다니고 무슨 차를 타며, 어떤 옷을 입고 어디 가방을 들며, 어디에서 얼마나 큰 결혼식을 하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조리원 동기’들과는 얼마나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지, 아이에게는 무슨 옷을 입히는지, 그 아이는 몇 살 때 어학연수를 가게 되는지… 평생을 남 눈치 보다 관으로 들어갈 판이다. 단순히 일상 영역의 문제라 할 수도 없다.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를 기억한다. 귀빈이 부대에 오는 날이면 청소를 열심히 하다못해 각자 칫솔을 들고 타일 사이에 낀 때까지 닦았단다. 초등학교 때랑 똑같다. 장학사가 오는 날엔 전교생이 청소대행업자가 되곤 했잖은가. 이런 쇼맨십이 기업에도 만연함은 물론이다. 아재식 상명하달, 보고를 위한 보고, 변태적인 집단주의에 물든 술자리(ex. 잔돌리기), 그러나 회식 다음 날에는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해야만 성실한 일꾼으로 인정 받는다는 괴이한 믿음. 옆 팀이 늦게까지 남는다는 이유로 덩달아 뒤로 밀려나는 퇴근 시간. 이것이 국가의 차원으로 확대될 때에 ‘국뽕’이 탄생한다. 지긋지긋하다, 보여주기 위한 삶. 삼단질문을 멈추어 달라. 쇼를 강요하지 말라. 부디 나만은 내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해 달라.

individual

아는 일본 분이 질문해 왔다. “한국 생활을 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느 정도까지 간섭을 해야 예의일까요? 남의 생활엔 역시 관심이 가지 않지만, 한국인들은 그러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어쩌면 삼단질문에 50원 어치 정도는 호의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한국인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어느 정도 공유하는 걸 ‘정’이라 여기니 말이다. 그런데 예의의 선이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나와 남 사이의 중간 지점에 희미하게 그어져 있지 않겠는가. 그 희미함이 지나친 까닭으로 한국인 사이에는 정 또는 간섭이 피어날 터이다. 다이어트로 숨겨진 턱선이 드러난다면, 예의의 선은 개인주의로 드러난다. 일본 분께 말씀 드렸다. “그냥 지금 하시는대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에게, 또 왕에게 종속되었던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였을 때에 근대가 왔다. 한 인간은 내면에서 자아를 각성하지만, 그를 통해 타인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무게의 자아가 존재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똘레랑스’다. 알제리 독립전쟁을 지지한 사르트르를 두고 드골 대통령이 “놔두게, 그도 프랑스야.”라 한 이유는, 사르트르에게서 이념의 껍데기를 벗기고 개인을 인지한 그의 성숙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말의 모양새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오해를 사지만 개인주의자는 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히 남을 위하게 된다. 아시아의 운명은, 이 관념을 서구로부터 이식받는 것이었다. 알려진대로 일본은 국가주도의 근대화를 시행했다. 개항을 하고, 인재들을 서양으로 보냈다. 한국은 개항에서부터 고통을 겪었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인지했을 때에 일본은 이미 제국의 야욕을 부리고 있었다. 한국은 다수의 열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식민지를 겪고, 해방조차 남의 손을 거쳐 얻었다. 이후 전쟁과 급속한 산업화를 거쳐 현대가 왔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인이 개인을 성찰할 시간이 있었는가.

이 사회에 여전히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눈치보기와 패거리주의가 만연한 것도 너무도 아픈 근대를 보내야 했던 과거에 기인한다. 일본인이 궁금해했던 ‘무례’의 기원은 뿌리내리지 못한 개인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결단에는 명암이 있겠으나 개인주의의 수혜로 일본은 자신을 고민할 수 있었다.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1900년에 문부성 장학생으로 런던에서 수학했다. 그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작은 동양인으로 소세키는 자아와 타아를 탐색하게 된다. 일본 밖에서 일본의 모습을 보고, 서구적 근대의 답습을 피하여 진정한 자기본위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1)’권력은 자기 개성을 타인에게 무리하게 강요하는 도구’이며, ‘금력은 개성을 확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유혹하는 도구’이다. 우리는 아직도 남의 개성에 젖어들기를 자처하고 있다. 그 변변찮은 유혹에 너무 쉽게 자신을 내어 주고 있다. 다만 동화(同化)가 굉음을 내며 이루어 진다면, 이질성의 충돌 또한 그 못지 않게 시끌벅적하다. 단언컨대 3일만 인터넷을 끊으면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길을 잃는다. 그만큼 시시각각 크고 작은 설전이 발생하는 한국이다. 조심스레 말해 본다. 남성연대, 여성주의와 메갈, 롤리타와 소아성애 등 근간의 무수한 논쟁이 개인주의의 태동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를 고민하는 주체가 ‘우리’에서 ‘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maxresdefault

어려운 현실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어떤 살 길이 있는가. 모든 난관의 타개에 자기본위의 근대화, 즉 개인주의의 확립이 전제되어야 한다. 개인의 행복이 전체의 행복이다. 너도 나도, 우리도 국가도 결국 개인이라면 어찌 자립하지 않으랴! 이를테면 나는 어디를 나와서 어디에 다니는, ‘안 팔린 크리스마스 케익(이십대 후반의 여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에게는 당신 고유의 세계가 있으리라. 그리고 한국은 ‘김치’와 ‘강남스타일’의 컴플렉스를 떨쳐 내고야 말 것이다. 끝으로 개인주의자가 자신의 안위만을 탐하지 않음을 설명해야겠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을 침해당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서야 한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가톨릭에 모함당한 칼라스를 적극 변호하여 그가 처형 당한지 3년만에 무죄와 복권 선고를 얻어 냈다.(*2)칼라스 사건) 남의 명예에 기꺼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는 프랑스 지성인사가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또 다른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그것이 전체의 화합을 이끌어 낸다. 칼라스의 복권 이후 볼테르는 어느 수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당신의 의견이 싫지만, 당신이 계속해서 의견을 낼 수 있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3)르 리슈 원장에게 보낸 편지)

주)

1) <나의 개인주의>, 나쓰메 소세키 저, 김정훈 역, 책세상, 2004

2) 가톨릭에 의해 모함당한 칼라스가 처형당하고 가족들까지 박해당한 사건. 이를 볼테르가 적극 변호하여 칼라스 사망 3년 후 그의 무죄를 이끌어 냈다.

3) 사실 이 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Evelyn Hall의 <The friends of Voltaire>에 실린 문구가 와전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혹은 1770년 볼테르가 르 리슈 대주교원장에 보낸 편지에 해당 문구가 실제로 있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기본 정신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문구라 생각하여 후자의 설에 기대어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