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잘못된 재벌관

본 칼럼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 “샤오미 맞서려면 삼성 도와야.”> 기사를 보고 작성한 것입니다.

 
기업은 국가가 아닌 소비자에게 복무한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부국강병과 산업보국이 아니다. GM의 존재이유는 우수한 탱크제작이 아니라 좋은 자동차 개발로 소비자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모든 기업은 관료들의 간택이 아닌 소비자들이 ‘1원 1표’로 행사하는 소비자 민주주의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삼성이란 기업을 존경한다. 그러나 그 존경은 ‘국가대표 삼성’이 아닌 뛰어난 기술개발과 제품생산 등의 기업성과와 소비자만족에 보내는 존경이다. 만약 삼성이 쓰레기를 찍어내서 휘청거린다면 국민이 아닌 소비자의 손으로 생사를 결정하는것이 맞다.

 

 

기업이 소비자에 대한 복무를 더 이상 효과적으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면 퇴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를 국가가 나서서 ‘돕는다’? 무슨 이유로?

 
이종걸 의원에게 기업이란 국가의 지엄한 시스템 내부의 도구에 불과하다. 마치 운동선수는 ‘개발’되어서 금메달을 따와 국가의 영전에 바치는 것이 임무인 것처럼 기업도 국가에 복무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삼성이 무너지면 경제가 무너지니까? 무너진다. 맞다. 그러나 현상황은 그와 다르다. 멸망의 시점이 아닌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하여 혁신의 자극을 받아 재도약을 시도할 시기다. 이때 무슨 국가가 나선다는 말인가? 혁신을 방해할 뿐이다. 또한 혹여 무너질 위기가 오더라도 이는 국가가 돕는다고 막을 수도 없다.

 

구조적으로 퇴출될 기업은 돈을 쏟아부어 살아날 리도 없으며, 무엇보다 관료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도전에 성공한 이유는 그 당시 공무원 중 아무도 반도체가 뭔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뭔지 몰랐기에 손을 못댔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공무원이 기업을 살려낸다? 차라리 수지침으로 에이즈를 고치는 게 빠를 것이다. 이런 인식의 사람이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주장한다. 재벌문제의 핵심은 재벌이 매우 크다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국가와 커넥션을 이뤘다는거다. 즉, stx, 웅진, 동부는 망해도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준공기업과 ‘특별한’ 재벌들은 망하게 두지 않는다.

 
절대 망하지 않는 갑 of 갑인 국가가 또다른 갑인 기업을 보듬어주고 상생하는 것이 바로 재벌문제의 핵심이고, 이 연합체가 재벌의 실체이며 둘 사이의 해체가 재벌개혁의 본령이다.

 
이종걸 의원과 같은 인식 하에서 경제민주화는 관치경제의 이음동의어다. 자신들이 나서서 더욱 호되게 ‘혼쭐’내주고 재벌들이 덜덜 떨며 고개를 박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이 상인 나부랭이들을 혼쭐 내주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수탈과 상납은 기본이다
홍길동일거라 생각하고 환호하지만 이들은 홍길동이 아니라 김대감님이 엣헴하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대기업과 공생하는 민-관 복합체 재벌의 일부일 뿐이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는 소비자의 ‘1원 1표’에 기업의 생사를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삼성에겐 샤오미보다 이종걸 의원님의 온정과 손길이 100배는 무서울 거다.

 

기업이 자유롭고 공정한 무대에서 경쟁하게 내버려 두는 것.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망할 기업은 망하고, 성공할 기업은 성공하게끔 시장의 원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

정치권과 정부에서 어설픈 관심으로 재벌과 기업을 길들이며 떡고물이 떨어지길 바라지 않는 것.

이것이 진짜 경제민주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