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원리주의자

대학에서 토론을 할 때는 회장이나 몇몇 운영진이 찬반을 임의로 배치하고 돌아가면서 토론을 한다. 단순히 내 생각을 풀어내는 입씨름이 아니라 정말 CEDA, 의회식,칼포퍼 방식 등 정식으로 토론이라는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으로 학회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재밌는 건 원래 생각이 찬성이었던 사람이 반대 입장에서 2주 정도 토론 준비를 하면 반대 입장과 찬성 입장 사이를 기우뚱 기우뚱 하게 된다.

더 재밌는 건 30분 정도 상대와 치열하게 입씨름을 하고 나면 급격히 반대 입장으로 기울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상대에게 공격받으면서 오히려 나의 신념이 굳어지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대부분 자신의 논리가 명징한 이성에 기반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감정에 먼저 지배되고 난 후 이성적 마무리 공사가 이뤄진다. 내가 왜 좌파인지, 왜 우파인지 생각해보면 대게는 자신의 배경과 경험이 그 출발점이다.

운동권의 많은 전향자들이 어느날 하이에크와 미제스를 읽고 프리드먼을 알면서 전향했을까? 전향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어떤 사건(천안문사태, 소련붕괴)에 충격을 받거나 같은 진영의 행패에 넌더리가 나서 돌아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처럼 미군부대 앞에서 미국인은 물론 장교로 파견된 이탈리안, 독일인, 영국인과 베트남, 필리핀 여자들과 중국인 노동자들을 오래 보며 자란 사람의 다문화에 대한 생각과 한국인이 99.9%인 동네에서 자란 사람의 생각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내가 성장 배경이 다른 사람들에게 “다문화도 포용 못하는 미개한 것들, 너희는 다 등신들이야.”라고 시비를 걸어봤자 유아기적 자존감 쌓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sns에서 화제가 됐던 ‘나라가 망해도 1번을 찍는’ 울산 아주머니에게 가해진 폭언을 생각해보자.

뉴스타파

ⓒ 뉴스타파

실질적이고 위협적인 남북대치를 경험하고 반공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세대, 동시에 주어진 환경과 경험을 극복할 고도의 교육혜택을 받지 못했을 뿐인 사람에게 가해진 깨시민들의 폭력과 자유 원리주의자들의 폭력은 다를 바 없다. 예를들어 난 기독교인이다. 난 이주민 등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반대하는 글을 여럿 썼지만 신앙의 영역에 머무는 신념이 있는 나에게 “넌 왜 동성결혼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 안해?”라고 하는 건 곤란한 요구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신념에 기반한 한계선이 있고, 그 한계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존중을 해주는 게 매너 아닐까?

신체적 방어능력이 없는 이에게 가하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충분한 교육적 혜택을 받지 못한 정신적 약자에게 행해지는 고압적인 언사, 그게 폭력이다. NL이나 낡은 공산주의자들에 대해선 좌우를 막론하고 그 허무함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졌지만, 여러 곳에서 암약하는 자유 원리주의자들의 패악질도 유치하기 짝이없다. 강준만 교수의 ‘싸가지 없는 진보론’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진보의 몰락이 싸가지 없는 태도에서 기인했다는 말이다.

강준만

ⓒ 싸가지 없는 진보 표지

이는 보수와 우파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오히려 NL과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치적 실험이 실패한 경험이 있기에 한국사회에서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자유 경쟁을 무한히 신봉하는 원리주의자들은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올라본 적도 없기에 자신들이 선민이라는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그들 주장의 근간은 ‘나의 소유권이 100% 나에게 귀속된다’이다. 그러면 세금을 내는 행위는 이 명제를 부정한 노예적 행동인가? 그 행동이 꼭 100% 완벽한 소유권에 반하는 행동인가? 아직까지 해답을 찾지 못한 공공재의 과소공급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면허가 국가의 횡포라며 의사면허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면 인간이어서 갖는 태생적 한계인 정보비대칭성은 어찌 해결할 건가? 문명발전을 위해 더 좋은 방법을 포기하고 ‘자유’라는 가치만을 위해 인간이 희생해야 하나? 신념을 위해 실리를 포기하는 것, 이게 바로 도그마 아닌가?

장기매매 같은 몇몇 상생거래(쌍방이 합의한 거래)가 엄격히 제한되는 이유도 그게 ‘비인간적’이라서도 있지만 장기라는 재화(라고 한다면) 특성상 정보비대칭이 매우 심해서 자유로운 시장에서 거래하는게 매우 곤란하다는 문제도 있다. 즉, 100% 완벽한 자유가 인류 복지를 증진한다는데 대한 수많은 반론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상이 이 문단의 요약처럼 단순하지도 투박하지도 않다. 많은 학자들이 평생을 받쳐 자유를 연구한 결과들도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는 연구들도 수많은 연구가 있다. 그들의 강경한 주장은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듯 ‘범인’들에겐 생경한 주장이고 감정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이다. 이는 차분히 토론해야할 논제이지 고압적으로 무지한 이들을 계도하는 완장이 아니다.

이 협소한 지면을 빌려 재산권과 경제발전의 관계와 철학적 함의를 토론하려는게 아니다. 그들의 주장도 반론가능하고 반례가 존재하며 그들이, 또한 어느 누구도 100% 맞을리는 없다는 것이다. ‘자명한 명제’라는 건 참 재밌는 말이다.너무 당연해서 이게 어떻게 틀릴까 싶은 유클리드의 공리조차도 현대물리학으로 보니 사실이 아니었고, 심지어 뉴턴역학조차도 시대에 따라 왕좌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단지 인간의 사고에 불과한 ‘인본주의’라는 ‘ism’에 기반한 “자명한 명제”를 100% 옳다고 선언하는 태도가 이른바 자유주의자가 가질 태도인가?

한국경제

ⓒ 한국경제

현실정치에서 저 사악한 누진세가 미워죽겠다고 하자. 이번엔 자유주의자께서 통크게 양보해서 인두세로 합의를 봤다고 치자. 그러한 합의를 현대 민주주의 절차를 거쳐 통과시킬수있는 지도자가 지구상 70억 명중에 있을까? 철의 여인 대처도 결국 그 앞에서 무너졌다. 정말 90%의 국민들이 아직 덜 계몽되서 누진세라는 합법적 강탈을 하고 있는 것인가? 본인들은 그럼 합법적인 방법으로 누진세를 폐지키킬 방책은 있을까?

과연 효율과 합리를 우선순위로 내세우는 보수-우파들이 ‘가짜’, ‘사이비’라서 복지와 증세논쟁에서 그들처럼 강경하지 않은걸까? 자유 원리주의자들은 인간이 극도로 합리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정작 본인들은 생각이 다른 타인을 미개인으로 취급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인류가 합리적일 거라는 전제를 품고 사고한다는 게 아이러니다.

결정적으로 가장 큰 모순은 이들이 인간 자유확대와 궁극적 인간해방을 역사 발전의 당연한 귀결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자유 원리주의자들은 역사의 방향성과 법칙을 믿고, 그에 따른 결과를 믿는 역사주의의 낡은 굴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며 본질적으로 파시스트나 맑시스트들과 다를 바가 없다.하버드, MIT의 학자들과 노벨상 받는 천재들이 왜 정부개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연구하느라 평생을 바치는지 생각해보자. 그들에게 미제스, 하이에크 같은 현자가 있듯, 저 반대편에도 수없이 많은 현자들이 있다.

그들의 제2 롯데월드만큼 높은 학문적 성취 앞에서 겸손해지기도 하면 좋겠다.  몇 줌 되지도 않는 우파 자유주의자도 원리주의적 기준과 다르다고 찍어내고 나면 그들의 고고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지 궁금하다.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레 자가증식하고 불어나는 정부의 규제와 크기, 파킨슨 법칙까지 비판하지 않고는 못배길 만큼 화나는 일들이 많고 좌파들에게 ‘여지’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런 태도는 그런것을 함께 비판하는 사람들한텐 그닥 도움이 안된다.

세금의 과도한 누진성에 대해 토론하는데 갑자기, ‘아니 당신은 자유주의자면서 그럼 세금을 늘리는데 동의하는겁니까!’라고 하는데 누가 세금 나쁘다는 생각을 안하나.  나도 자유주의를 지지한다. 하지만 우리는 심시티가 아니라 피가 도는 사람들끼리 살아가는 얘기를 해야하고 결국 타협점을 찾아 예컨대 ‘그래 그럼 세금 더내자, 대신 중산층도 공평하게’라고 주장을 하는거다. 당신들보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보이면 “너는 진짜 자유주의자가 아니다.”라며 맹렬히 물어뜯고 자신들은 우월하다고 선포하는 작태. 자신은 ‘현실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극악한 이상주의자가 되버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극과 극은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그런 ‘싸가지 없음’은 자유 원리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시민들이 깨어있지 않아서 미개하고 투표를 안한다고 믿는  ‘깨시민’들과 완전히 닮아있는 것이다. 우파와 좌파는 서로를 공격하기 이전에, 공론장에서 싸가지 없는 태도로 전위대를 자처하며 팀킬을 일삼고 끝없이 갈등을 폭발시키는 자유 원리주의자와 깨시민들을 격리하는 내부 단속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