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규제가 답이 아니다.

한국 영화 시장은 크다.  나라 크기에 비하면 큰 게 아니라 그냥 크다. <인턴>은 매출 천만 불이 넘는 해외국가가 한국과 일본뿐이다. 일본 매출액은 1400만 달러 규모고, 한국 매출액은 일본의 2배 가량인 2410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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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규모가 작은 영화였고 적극적으로 해외마케팅도 안했는데 이정도나 팔렸다. <인턴>이 특별한 케이스인 것도 아니다. 영국제작사 ‘워킹타이틀’이 제작한 <어바웃타임>은 영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가장 높은 매출액을 기록했다.

 

<인터스텔라>의 해외 매출액 14%가 한국에서 나왔다. 약 6900만 달러로 1위 중국의 1억 2200만 달러에 이은 2위다. 참고로 3위는 영국이었다.

 

영국뽕 맞는 영화, 킹스맨 역시 정작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잘 팔렸다. 매출액이 영국의 2배 규모(한국이 4700만 달러, 영국이 2400만 달러)였다.

 

명량보다 제작비가 많이 든(약 260억 원) 작품인데 ‘다양성영화’로 분류가 된 <비긴어게인>도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갔다. 이처럼 꽤 많은 해외 영화들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한국에서 많은 매출을 기록한다. 헐리우드의 관점에서 바라봐도 한국은 커다란 영화 시장이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잭 블랙이 “한국 영화 시장은 크고 중요하다.”고 말한 게 립 서비스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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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데일리

 

 

중국은 해외 영화를 선별적으로 개봉하고, 일본은 신작을 늦게 개봉하며 이상한 애니메이션이 뜬금 없이 차트 상위를 차지한다.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할리우드에게 가장 매력적인 아시아 시장은 한국이다. 실제로 동아시아 매출 중 한국 시장이 중국에 이은 2위인 경우가 많다.

 

중국이 어느 분야든 압도적인 걸 감안하면 한국의 영화시장은 기형적으로 크다. 괜히 톰아저씨가 방한하는 게 아니고, 데드풀이 설날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은 영화를 왜 이렇게 많이 보는 것일까. 쉽게 말해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단순히 ‘싸다’고 말할 게 아니다.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나오는, 세계 S급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경로가 영화말고 더 있나?

 

2시간가량 투자해서 세계구급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경로는 영화뿐이다. 결정적으로 지역과 상관 없이 어디서나 편하게 볼 수 있다. 지역과 서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문화콘텐츠에 있다. 고퀄리티의 공연/뮤지컬/연극 등의 콘텐츠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CGV는 전국 각지에 없는 곳이 거의 없다. 곳곳에 깔려 있으니까 접근성도 좋고, 콘텐츠 지불가격도 퀄리티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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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외전 포스터

 

이제 최근 한국영화 시장에서 흥행에 성공한 <검사외전>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설날 연휴 중 스크린의 75%가량을 검사외전이 차지했다.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이라고? 배급은 쇼박스다. 단순히 ‘대기업 수직계열화로 인한 독과점’이라 말하기엔 어폐가 있다. <검사외전>이 이렇게 스크린을 많이 가져간 데에는 이 외의 여러 요소가 들어있다.

 

1) 전년 동기에 비해 관객수가 20%가량 줄었다. 올해 1월 총 관객수가 1700만 명가량. 작년 1월은 2300만 명. 약 25%가량 줄었다.

2) 경쟁작들이 망했다. 오빠생각, 로봇소리 다 망작으로 평가받고, 캐롤은 설날 연휴용 콘텐츠가 아니다. 작품성이 좋다고 해서 극장이 틀어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설날 연휴라는 대목에.

3) 나름 잘만들었다. 뻔한 문법의 영화지만 볼만한 영화다.

 

한국영화가 흥행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대기업 독과점 때문이라는 소리다. 그런 논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만은 없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말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규제로 영화 시장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하는가? 내가 극장주인이면 매년 대목에 관객 텅텅 비는 <로봇,소리> 같은 영화를 틀고 있으면 눈물날 것 같다. 영화를 거는 극장도 시장의 플레이어다. 안 되는 작품을 억지로 걸어야 할 의무를 가진 자선사업자가 아니다.

 

<검사외전>의 높은 좌석점유율은 배급 이전에 쉽고 재밌는 대중 영화를 찾는 관객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연휴 시즌에는 가벼운 영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가. 자, 그럼 저예산독립 혹은 다양성영화는 가만히 있어야 할까?

 

시장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으니 가만히 있으라, 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화 배급사와 투자사가 스크린 숫자에 애걸복걸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극장 매출이 영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014년 기준 한국 영화산업 매출이 1조 6천억가량인데, 이중 80%가 극장매출이다. 다른 나라 같은 경우 50~60%가량을 차지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물론, 미국과 한국은 영화콘텐츠를 소비하는 경로가 다르다. 그래도 넷플릭스가 세계 영상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려드는 것을 보면 한국영화계도 2차 시장(극장이 아닌 다른 경로)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어쨌거나 온라인 VOD시장은 스멀스멀 커지고, DVD-블루레이 시장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저예산영화나 다양성영화의 경우 극장 시장에서 규제를 통한 인위적인 활로를 찾는 것보다는, 새롭게 확장되는 2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지 않을까.

 

헤비급 선수들이 싸우는 링에 오르면서 나에게 맞는 룰을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웰터 급은 웰터의 링에서, 플라이 급은 플라이의 링에서 싸워야 한다. 멀티플렉스 시스템이 아니었던 과거에도 다양성 영화는 어려움을 겪었다. 오히려 멀티플렉스가 득세한 지금, 다양성영화가 흥행하거나 알려질 경로가 더 늘어났다.

 

<비긴 어게인>, <워낭소리>와 같은 다양성영화가 흥행하고 뉴스를 장식하는 시대는 멀티플렉스 시스템이 정착 된 지금이지 1990년대가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고, 영화 시장 역시 변하고 있다. 그러한 변화가 꼭 다양성영화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수들이 음원으로 홍보를 하고, 콘서트와 굿즈로 돈을 벌려는 것처럼 다양성영화도 극장 상영을 넘어 스트리밍과 VOD 서비스 등 매니아들이 돈을 쓰는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언제까지 대기업의 횡포라는, 의미는 있지만 변화의 가능성은 매우 낮은 슬로건으로 영화 시장의 룰을 바꿔달라고 시위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참고로 2차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콘텐츠의 퀄리티는 쓰레기라 불릴 수준이다.최고 화질이 고작 720P인 경우도 많다. 오디오 품질도 낮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아직 우리 영화계가 2차 시장을 제대로 공략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다양성영화를 보기 위해 굳이 예술영화관을 찾는 매니아들은 품질 좋은 스트리밍 서비스나 VOD에도 돈을 쓸 것이다. 장르를 막론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을 때 시장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