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보수의 테러 옹호는 진짜 보수를 욕보인다

토크콘서트테러

​▲ 사회적 물의를 빚어온 재미동포 신은미와 통합진보당 황선의 종북 논란 토크 콘서트는 지난 10일 인화물질 투척 테러로 인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이미지 출처: 뉴시스>

토크 콘서트에서 벌어진 테러 행위를 비판하는 칼럼에 생각 외로 많은 반발이 있어서 놀랐다.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종북 사상을 뻔뻔하게 전파하고 다니는 신은미와 황선에 대한 증오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수라는 이름을 내걸고서 18세 고등학생이 음주 후에 자행한 테러 행위를 옹호하는 여론은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더군다나 테러를 비판했다고 해서 ‘종북 콘서트’를 지지하는 것이라 판단하고, 빨갱이 운운하며 애국보수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진보주의나 보수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그저 패션(Fashion)으로써 정치 유행에 가담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보수주의는 기본적으로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와 안정, 그리고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이념이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칭해지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의 저서에서도 잘 드러나듯, 보수주의의 기원은 바로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경계”다. 감정에 쉽사리 흔들리는 인간은 종종 불합리한 판단을 한다. 이러한 실수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체계에서 일어날 때 그 대가는 막대하다. 따라서 보수주의는 불완전한 인간의 판단보다는, 역사를 통해 발전되고 개량되어 안정을 이룩한 시스템을 더 신용한다. 개인 혹은 집단의 섣부른 판단으로 그간 쌓아왔던 체제와 가치를 뒤엎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보수주의의 기본 스탠스이다.

특히 ‘법’은 보수주의가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 규범이다. 감정적인 인간을 인간 스스로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성의 도구이자 제도적 기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을 통해 악을 멀리하고 사회 안정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존중하는 법 그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법 개정 절차라는 정당한 과정을 거쳐 바꿀 수도 있다. 만일 누군가가 법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이를 거부하는 초법적인 행동을 한다면, 이는 보수주의적 가치관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 이는 보수주의의 기본 중 기본이다.

에드먼드버크

​▲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칭해지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 1797). 보수주의의 이름을 내걸고 테러 행위를 옹호하고 있는 패션보수들은 에드먼드 버크가 제시한 보수주의적 가치관을 욕보이고 있다. <이미지 출처: 뉴데일리>

 

이번 오모군의 토크 콘서트 테러 행위는 보수주의적 가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신은미와 황선의 종북 강연이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었을지언정, 오모군이 스스로 정의의 심판자가 되어 그들에게 인화물질을 투척할 권리는 없다. 더군다나 그 과정에서 신은미•황선이 아니라 관람객이 다치게 되었다. 이러한 무법 행위를 옹호한다면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의 근간은 흔들리게 되고, 자유민주주의적 이념은 후퇴하게 된다.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법을 위반하면 범죄다. 애국이라는 숭고한 목적이 테러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 땅에서 종북 찬양 토크 콘서트가 열리도록 가만 내버려둔 정부의 탓이 크니, 직접 나서서 이를 처단한 오모군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주장도 간간이 보인다. 보수를 자처하며 진보를 그리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무정부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일부 진보 세력이 펴는 논리가 바로 이 논리다.

토크 콘서트는 이미 여론에 의해 몰매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수단체들의 반대시위로 행사가 무산된 경우도 있었고, 최근 종북 혐의로 경찰 조사 소환이 통보되기도 했으며, 이에 불응하자 사법당국은 출국 제한을 명령하기도 했다. 이렇듯 종북 논란 토크 콘서트는 법이라는 사회적 규범 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점에서 일부 보수들이 오모군의 테러를 윤봉길 의사의 거사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이는 정당한 법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제와 맞서 싸운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범 수준으로 비하하는 것이다.

소위 “패션진보”는 진보를 자처하며 아무런 논리 없이 그저 모든 것을 정부 탓으로 미루는 이들을 칭한다. 인과관계를 떠나서 그저 정부를 비판함으로써 깨어있는 시민이 된 양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까닭에 진보의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 보수는 ‘멋’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패션진보를 혐오한다. 그런데 이번 토크 콘서트 테러를 옹호하는 몇몇 보수를 바라보며, 비단 “패션”으로 정치적 스탠스를 가지는 것은 진보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패션진보를 조롱하며 그릇된 지적 우월감을, 백색테러를 지지하며 왜곡된 애국적 우월감을 느끼는 “패션보수”들도 만만치 않다. 가짜 진보가 판치는 세상에서 가짜 보수들이 판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