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유럽 법제도를 모방한다해도 한국이 따라갈 수 없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역사/문화적 차이라고? 지식인들이 한참 돌려말한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과적 표현은 국민성이고 이과적 표현은 유전자다. 둘 다 같은 의미지만 이과적 표현이 더 참신해서 후자를 더 애용한다. 그러니까 유럽은 되는데 한국이 잘 안되는 건 순전히 유전자 때문이라는 거다.

 

 
복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최대한으로 누리고 싶지만 내 돈으로는 안 된다는 이기적유전자. 언제였던가. 현 정부를 극도로 혐오하던 후배와 몇 마디 나눴드랬다.

 

 

“그러면 복지해야겠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죠”

“그럼 정부가 증세하는 것은?”

“서민 등골을 빼먹는거죠”

 
대화가 끝난 후 본인 소유의 랜드로버를 끌고 유유히 사라지던 그녀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아메리카노

 
얘 말고도 많다. 우리 모두가 서민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 기득권에 분노했다. 누가 서민이고 누가 기득권인지도 모르겠다. 실체없는 분노였다. 논리적 정합성은 문제 되지 않았다. 그 분노 자체가 멋져서다. 평소 관심도 없던 사회 문제를 두고 아주 당연한 말로 기득권을 꾸짖는 행위 자체가 스스로 대견스러운 거였다. 논리를 찬찬히 뜯어보면, 담론에 껴들 능력은 안 되는데 있어보이고 싶어서 밑도 끝도없이 구조니 맥락이니, 논리 구조부터 엉켜있는 ‘논리구조맹’이 반. ‘사람이라면’, ‘인간이라면’, ‘니 아들이라면’, ‘니 엄마라면’. 시작부터 자격 들먹이며 도덕적 우위를 선점한 후 약자의 권위로 합리를 깔아뭉게는 ‘아가리천사’ 반.

 
논리구조맹과 아가리천사들이 실컷 떠든 후 내려오는 길에 박수받고 환호받고 희열을 느끼면 그게 그렇게 스스로 대견스러운 거다. 그들에게서 ‘분노’는 그렇게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됐다. 그렇게 걔들이 판을 이상한 쪽으로 키우는 바람에 결국 논의의 방향은 괴상한 대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버린 거다. 증세없는 복지라느니 사회적 기업, CSR 죄다 그런 구조 안에서 탄생한 기형아들이다.

 

 
나만 빼고 전부 악당이라는 잔혹 동화 속 이기적유전자들의 불평불만에 진이 빠지는바람에 나는 그렇게 기득권의 개가 됐고 그 조롱에 꽤 익숙해져버린 어른이 됐다.

 
그런데 걔들은 아직도 자신을 ‘캡틴 서민이카’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자기가 친구보다 잘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스타그램으로 알아차리고 여기에 무려 ‘사회구조적 모순’ 근거로 들며 무능의 책임을 외주화하는 애들이 말이다. 그런 논의는 ‘캡틴 아메리카’가 국방부장관과 해야할 얘기인데 말이다.

 

 

그렇게 기득권의 개가 되버린 나는 그저 ‘스타크 사’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며 소득세를 열심히 내고 있다. 이기적유전자들이 꿈꾸는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나는 소득세 열심히 내고 있다는 얘기다.

 

 
나도 증세를 반대한다. 걔들과는 다른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