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화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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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핑턴포스트

사육사가 원숭이에게 돌을 준다. 돌을 사육사에게 돌려준 원숭이는 상으로 오이를 받는다. 몇 번 같은 일을 반복한 원숭이가 갑자기 상으로 받은 오이를 밖으로 던진다. 왜일까? 바로 옆에서 자신과 같은 일을 한 원숭이는 오이보다 맛있는 포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일에 차별 대우를 받으면 원숭이도 화를 낸다. ‘쟤는 저거 주고, 나는 왜 이거 줘?’ 간단한 이야기다.

 

구의역 사고의 핵심은 불평등이다. 차별적 임금과 인력 구조가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차별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차등 성과가 아닌 불합리한 차별을 의미한다. 일하지 않는 사람이 가져가는 보상과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는 사람이 가져가는 일 말이다.

 

은성 PSD는 이 차별과 불평등의 온상이었다. 은성 PSD는 기본적으로 수리업체다. 무언가를 스스로 기획하기보단 하청을 받아 수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다. 그렇다면 회사의 인력 구성은 현장 수리공이 대부분을 이뤄야하며, 회사의 자본 역시 이들에게 집중적으로 투자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은성 PSD는 서울 메트로 임직원의 ‘대피처’였다. 퇴직 시기가 되면 은성 PSD의 관리직으로 내려가 메트로에서 받던 임금의 80%가량을 보장받는다. 고용승계, 임금승계, 복지승계 온갖 승계를 받았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만일 은성 PSD가 메트로만큼 큰 회사라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는 규모가 큰 공기업이며 높은 연봉을 받는다. 은성 PSD가 아무리 커봤자 1000만 서울 시민의 발만큼 클 수가 없다. 결국 서울메트로에서 받던 연봉의 80%를 보장해주고, 정년을 지켜주려면 누군가의 임금을 착취하는 수밖에 없다. 고용승계를 받는 메트로 직원들은 대부분 관리직이니, 결국 현장수리공의 임금이 줄어든다. 수리업체에서 400만원가량 받는 관리직을 위해 현장수리공이 착취당하는 구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철밥통

ⓒ 채널A

CBS의 보도에 따르면 현장수리공의 평균 월급은 180~220만원선이다. 죽은 김군의 월급은 15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일을 했다. 실습생을 직원처럼 채용해 일을 시키는 건 불법이다.

 

결국 메트로 정규직 직원의 고용승계, 임금승계, 복지승계를 위해 비정규직 청년이 희생된 상황이다. 정규직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나 같은 노동자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득권이 아니라고 볼 순 없다. 이와 같은 구조에선 정규직의 고임금과 고용안정성은 비정규직의 것을 빼앗아야만 나온다. 나의 행운은 남의 불행을 빨아먹고 자란다고 누가 그랬던가. 은성PSD의 정규직이 누리고 있는 현재는 같은 회사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를 ‘후려쳐서’ 나온다.

 

구의역 사고의 배경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있는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본 기득권은 노동자를 착취한다. 노동 기득권인 노동귀족은 비정규직을 착취한다. 결과적으로 이 불평등한 노동시장 안에서 정규직은 고임금, 고용안정성을 가진 노동귀족이다. 연말정산 파동만 봐도 그러하다. 상위 30%에게 세금을 물리는 일인데,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말한다.

 

기득권은 이미 이권을 중심으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며, 조직은 자신들의 잇속에 밝다. 반면 비정규직 청년, 하청 청년, 주변부 노동을 하는 청년은 조직화되기 어렵다. 카르텔을 형성할만한 이권이 없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기득권의 고임금은 청년들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만든다. 가진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미래 세대는 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구의역 사고를 보면서 나는, 혹시 노동시장의 기득권들이 청년세대를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불평등은 원숭이도 화내는 일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기득권들은 청년세대가 불평등에도 화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지금의 청년세대는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인걸까. 나는 구의역 사고를 보면 화가 난다. 당신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