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원화를 사용하기 위해 해외를 나가시는 분들, 예컨대 여행이라들지, 공무원 해외 순시, 어학연수 및 조기유학 등을 다녀오신 분들 중 선진국의 피상적인 모습만 보고 부러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선진국의 좋은 점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려는 자세는 바람직하지만, 마치 그 나라는 천국이고 우리나라는 지옥이라는 식의 묘사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답답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2015년 IMF 기준 구매력 고려 1인당 GDP는 3만 6천 불로 일본에 이어 28위이다. 인구가 극히 적은 소국을 제외하고 제일 높은 나라는 5만 5천 불 규모의 미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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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참조 : https://en.m.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GDP_(PPP)_per_capita

우리가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독일, 영국, 스웨덴 등이 다 4만 불대에 있고, 뉴질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우리 아래에 있다. 그리고 이런 ‘고소득 국가’라고 해도 한국보다 삶의 질이 몇배씩 좋고 그런건 아니다. 명목 GDP가 8만 불인 스위스도 막상 가보면 빅맥세트 하나에 1만 3-4천 원하고, 한식당 가서 김치찌개 하나 먹어보려고 해도 3만 5천 원정도 한다. 8만불을 벌어도 물가가 워낙 높으니, 실질적인 소득 가치는 지표가 보여주는 것보다 낮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가 성장하여 명목 GDP가 쑥쑥 올라도 그에 따른 물가상승률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우리의 삶이 그다지 나아질 리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미 물가를 고려한 우리의 소득은 영국,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양극화 문제를 꺼낼 분도 계시겠지만, 토마 피케티 열풍에서 보인 바와 같이 양극화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고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대략 십 년 전쯤, 미국에 다녀와 모기지론 예찬을 하는 분들이 많았던 걸 기억한다. 미국은 돈이 조금밖에 없어도 너도나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고,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기 때문에 30년 정도 길게 보고 상환하면 된다고. 우리나라같이 중산층이 서울에 집 한 채도 못 구입하는 곳에 비하면 미국은 훨씬 좋은 곳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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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분별한 모기지론 때문에 세계경제가 망할 뻔했다. 거칠게 얘기하자면, 2008년 금융위기는 개인의 신용등급 혹은 소득을 고려하지 않은 불량채권들을 서로서로 돌려먹다 결국 폭탄이 빵 터져버린 결과다. 물가가 비싼 선진국에서는 그만큼 주택의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고, 개인의 소득 수준에 맞지 않게 무리하게 대출을 해준다면 그것은 해당 사회가 잘못된 것이다.

혹자는 또 연금을 가지고 부러워한다. 유럽이나 호주 같은델 가면 연금이 있어 노인들이 행복한 삶을 꾸리고 있다고. 어느 정도 맞을 수도, 혹은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현재 유럽의 노인세대는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연금제도를 충실히 이행했고, 그만큼의 출산율이 따라와 줬기에 현재의 연금수령이 가능한 것이다. 헌데 몇 년 전 이탈리아 연금 민영화 대란에서 보여줬듯이, 그 제도 역시 영구적이진 않다. 지금 20-30대인 우리가 연금을 수령하는 2040-50년대에는 그 어느 나라도 연금을 제대로 지급한다고 자부할 수 없다. 지난달 그리스 의회는 구제금융 요건 충족을 위한 연금지급액 삭감안을 통과시켰다.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덴마크나 네덜란드에 다녀오신 분들은 그 많은 자전거 대열에 놀란다. 그들은 참으로 친환경적이어서 국회의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출퇴근은 다들 자전거를 애용한다고. 그래 거기까진 좋은데, 그 피상적인 것만 보고 온 공무원들이 우리나라 지천에 깔아 놓은 자전거 도로는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세금낭비 이런 세금낭비가 없다. 뭐 자전거 애호가들은 좋을 수 있겠지만, 현재 대부분 마모되고 요철이 많은 그 자전거 도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다지 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연간 유지/보수비용만 더 들뿐이다.

덴마크에서 가장 높은 산은 유딩스코호이 언덕인데, 해발 170m이다. 한반도 남쪽 제일 높은 지리산은 1,915m이고 남산은 262m이다. 지금 눈을 들어 창문 밖 아무 동산이나 찍어보시라. 우리나라에선 대략 동네 뒷산도 다 100m가 넘는다. 일단 지리적인 관점에서 덴마크는 자전거 타기 딱 좋은 평지이고 우리나라는 아니다. 덴마크의 기후를 보자면, 위도가 중강진보다 높은 55도 대임에도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12월 평균온도가 2.2도, 8월 평균온도가 17.2도다. 정말 연중 자전거 타고 다니기 딱 좋은 날씨다. 반면 우리나라같이 겨울에 꽁꽁 얼고, 여름에 전 국토가 40도 언저리를 넘나드는 날씨에는 일상에서 타고 다니기 쉽지 않다.

(상기 모든 데이터는 여기 참조 : en.m.wikipedia.org/wiki/Denmark)

마지막으로 덴마크의 자동차 취득세는 180%고, 부가세는 25%다. 3천만 원짜리 소나타가 가뿐히 5-6천만 원을 넘어간다. 그리고 높은 주차요금, 보험비, 유류비를 고려하면 보통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하기 어렵다. 혹시 여기서 우리도 이렇게 자동차세를 올려서 자전거를 이용하자고 하시는 분은 없길 바란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해발 1백 미터를 넘나들며 자전거를 타라고 하는 것, 그것이 지옥 아니겠는가.

출근길이 다 끝나간다. 주제가 뭐였더라. 아, 천국. 지구 상에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뭐 우리나라가 아주 잘나고 살기 좋은 나라라고 이야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헌데 내 돈을 써가며 잠시 잠깐 그 선진국의 인프라를 이용해본 것만 가지고, 그 나라 사람들과 대화해본 몇 마디를 가지고 사대주의에 빠진다면 곤란하다. 디테일하게 분석해서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은 들여오고, 맞지 않는 것은 적절히 걸러내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 봤으면 좋겠다.

몇 년 전 북유럽 설계사로 연봉 1억과 함께 이직했다가 1년이 채 안되어 돌아온 선배가 생각난다. 아내와 애 둘이 있는 그 선배에겐 아무리 연봉이 1억이 되더라도 50%대에 육박하는 최고세율과 높은 물가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유럽에서 근무할 때 도시락을 싸다니던 연봉 수천만 원짜리 아저씨들이 언뜻 떠오른다. 선진국이란 말은 다른 말로 물가가 어마 무시한 곳이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